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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07. 2023

초여름 순천에 오면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1)

늦봄이라 생각했는데 초여름이었다. 오뉴월이라는 말이 왜 따로 있나 했더니 이 계절은 끝물의 봄 제철 음식과 막 들어서고 있는 초여름의 풍경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때였다.

세번째 순천방문은 비오는 풍경으로 시작했다. 비가 내려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고온의 날씨가 유지되면 이곳은 안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수증기로 꽉 찬 만두집처럼 동네를 둘러싼 산에서 뿜어나오는 운무로 뒤덮힌다. 특히 하늘이. 그럴 때면 산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 풍광을 조금더 가까이 보겠다고 음습한 나무터널을 지나 죽도봉 전망대에 올랐었다. 그 나무터널을 지날 땐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꼭 가지 말아야할 길을 가는 사람 처럼(이 나무터널을 지날 땐, 영화 곡성의 그 동굴을 떠올렸고 죽도봉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연스레 내가 좋아하는 빵집인 조훈모제과점에 들렀을 땐, 아 이곳이 곡성의 그 동굴과 같은, 나의 개미지옥은 조훈모제과점이구나 했다)  


비가 그친 후엔 최고온도 27도의 초여름 날씨가 한동안 이어졌다. 이 무렵에는 자연스레 참외가 땡겼고 중앙시장에서 한 소쿠리 산 참외를 매일 간식으로 깎아먹었다. 식당에 가면 시원한 매실차가 후식으로 나왔다. 초여름에 특히 맛있다는 농어는 여수수산시장에서 사다먹었다. 집근처 가파도생선구이집에서 영접한 제피열무김치는 이 한철 바짝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이 음식이 잘 맞았다. 향이 쎈 제피와 맛이 강한 고춧가루가 꼭 경쟁하듯 서로를 중화하는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햐얀 쌀밥과 잘 어울렸고, 그만큼 독특한 맛이었다. 먹다보니 향이 그렇게 쎄지 않은데 하면서도 그 향이 꽤 오래 입안에 남아 꼭 같이 나온 겉절이에서도 제피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희안하게 다른 반찬을 먹을 땐 느끼지 못했던 것이 겉절이에서는 계속 해서 계피향이 남는 것이었는데 사장님 말씀이 겉절이엔 제피를 넣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 동네엔 한 집 걸러 하나씩 팥죽과 콩국수집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별미로 자주 먹는 음식인 모양이었다. 철에 따라 온면을 팔지만 사시사철로는 냉국을 먹고 팥죽은 팥죽에 면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랫장 가는 길 동천변에 있는 장대콩국수집에서 콩국수를 시켜먹었다. 더워져서인지 식당 안은 이른 시간부터 붐볐고, 점심 때가 되자 대기자가 생겼다. 기본은 소금 베이스에 나왔고 비치된 설탕통에서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어먹는 시스템이었으며, 설탕통 안에는 작은 국자만한 숟가락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설탕을 콩물이 아니라 콩국수에 넣어먹는게 익숙지 않아 고민하다가 반쯤 먹은 후 숟가락(작은 국자만한, 국자라고 해야할지도) 가득 퍼서 넣어 먹었는데, 달아진다기 보다 텁텁한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 생각보다 잘 맞았다. 이 별미는 여름철마다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이 계절에는 모든 성장하는 것들이 생글거렸다. 숙소 앞 옥천에는 아이들이 물가에 뛰어들어 놀았다. 내가 지나갈 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좋니 라고 물어보면 시원하고 너무 좋다고 대꾸를 했다. 멀리서 그들을 찍을 땐 그 아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두 팔을 높이 들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길고양이와 강아지들은 괜시리 뽐을 내며 알은 척을 했다. 물고기 사냥을 나온 왜가리는 비가 올 때 유독 신이 나보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꼭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온 학생처럼. 팔뚝은 얼룩덜룩 검었게 그을렀고 하루종일 땀에 젖어 살았으며, 자주 꾸벅꾸벅 졸았다. 진짜로 1센티쯤은 자랐을수도.

 

그리고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초록초록한 색으로 칠해진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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