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비열하다기보다는 지질한 열혈남아의 전신 - 비열한 거리
왕가위 감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마누엘 푸익 등, 남미계 작가의 문학을 많이 읽었다 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나 『하트브레이크 탱고』에 빠져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마누엘 푸익의 작품이라 하면 내가 읽은 것은 『거미 여인의 키스』 뿐인데,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는 『제인 에어』의 상남자 로체스터 씨 역을 했었던 윌리엄 허트가, 무려 감성적 동성애자인 몰리나 역할을 맡았었다. 그러고 보니 마누엘 푸익과 왕가위는 『거미 여인의 키스』와 『춘광사설 - 해피 투게더』의 퀴어 코드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감독 가운데서는 우리 봉준호 감독 또한, 못지않게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긴 갱 영화 찍는 사람 치고, 이탈리아계 이민 2세로서 뉴욕을 기반으로 한 마피아 영화의 달인인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겠냐며, 어설픈 아는 척을 해본다. 어쨌든 홍콩영화는 무협 무술영화를 빼고 나면, 코미디든 로맨스든 정통 누아르든, 홍콩 마피아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말이다. 자타공인 전 세계 영화계의 강국인 미국에서도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스코세이지 감독이라고 하니, 갱 영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왕가위를 포함한 작가주의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겠지 싶기도 하다. 원래 첫 작품인 『열혈남아』를 찍기 전까지 왕가위는, 촬영 전 철저한 사전 계획표를 작성, 완벽히 이에 근거해 작품을 찍었다는 히치콕 스타일을 추구하기도 했다지만, 실제로 작품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흔히 알려졌다시피, 시나리오도 오락가락, 즉흥적인 변화를 끊임없이 주었다니, 계획대로 하는 타입이 아닌 것을 스스로도 뒤늦게 알았나 보다.
서론이 길었다. 『열혈남아』는 히치콕을 닮은 것이 아니라 스코세이지의 『비열한 거리』를 똑같이 닮았다. 1973년작인 이 영화에서, 성당을 가고 고해성사를 하는 의리파 주인공 하비 케이틀은, 갱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지경의 한량, 동네 건달이다. 셔츠와 타이,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하는 일이라곤, 부유한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삼촌의 빚을 대신 받아 주는 수준의 껄렁한 작업들이다. 바에서 춤을 추는 아름다운 흑인 무희나 넘보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며 킥킥거리고, 더 어리숙한 패거리를 놀려먹기나 하는 지질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한다. 그나마 하비 케이틀은 제 앞가림도 하고 약속도 지키며 책임감도 있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있다. 문제는 그의 졸개, 동생 격인 로버트 드 니로다. 드 니로의 행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없다. 갱 무서운 줄 모르고 갚지도 못할 돈을 꾸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써버린다. 고분고분하지도, 영리하지도 않다. 이에 비하면 『열혈남아』의 창파는 상당히, 나름 서사가 있는 인물이다.
왕가위 감독은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에서 지질한 건달을 연기한 장학우에게 드 니로의 스타일을 요구했다고 한다. 1973년 영화로 우리나라에 개봉하지도 않은 『비열한 거리』를 보기 전까진, 장학우가 진심 최고로 한없이 한심해 보였다. 멀쩡한 형님 유덕화를 사지로 몰아넣고, 부유한 한량 장국영에 기생하는 이해 못할 인물이었다. 『비열한 거리』를 보고 나니 장학우는 양반이다. 드 니로의 비겁하면서도 뻔뻔한 모습을 당할 수가 없다.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으며 『열혈남아』로 홍콩 금상장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장학우지만, 왕가위 감독에게 한 장면 60번의 재촬영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왕가위의 눈높이가 스코세이지에, 또는 드 니로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인 듯싶다. 한쪽은 비열하고, 한쪽은 피가 끓으니, 그야말로 난형난제, 실은 오십 보 백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