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계와 세계가 맞붙는 방식

<아바타: 불과 재>(2025)

by 수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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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불과 재>는 왠지 모르게 영화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게임 시네마틱에 가깝다는 평이 있기도 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영화 문법에 거리감이 있다. 인상비평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뜯어보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아바타’ 시리즈가 애초에 극장 기술과 긴밀히 협업하는 작품군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2009년에 개봉한 첫 영화는 한국에서 천만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흥미롭게도 작품의 주요 홍보점은 ‘3D’였는데 안경을 쓰고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극장에 나서는 관객이 많았다. ‘3D’ 상영 자체가 작품의 정체성과도 같았고, 이는 곧 영화사의 초창기에 기술적인 흥미가 관람 동인이 됐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어트랙션 시네마’라는 톰 거닝의 분류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영화를 단순히 스크린만이 아니라 관객의 관람 환경까지 어우르는 개념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기구를 다루거나 즐기는 일에 그치지 않고서 극장에 방문해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구상했다. 영화가 ‘볼거리’ 자체였다고 보면 된다. 같은 의미에서 4DX , IMAX, Dolby처럼 이들 장소에서만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거나, ‘3D’처럼 일반적인 화면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들 형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화가 ‘볼거리’라는 점을 보여준다.


‘아바타’ 시리즈는 철저히 ‘볼거리’로 제작된 작품이다. 극장가가 이 ‘볼거리’를 소비하고자 특정 인프라를 도입하는 등, 영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2009년 당시 전 세계에서는 <아바타>를 틀기 위해 3D 영사기를 도입하는 곳이 많았다. 당시로서는 이 형식이 이 작품 하나만을 두고서 런칭된 쪽에 가까워서 <아바타>의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면 이후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3D’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많이 시도됐지만 본격적인 대중화를 끌어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아바타는 화면에 물이 튀거나 하는 등으로 의도적인 ‘체험’을 유발했는데 이는 곧 영화 자체가 3D 형식에 맞춰 제작됐다는 점을 뜻했다. 굳이 3D가 아니어도 영화를 볼 수는 있었지만,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어간 대작을 ‘불완전하게’ 즐긴다는 점이 관객들의 마음에 남았고 이에 ‘3D’는 식사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높은 가격은 어느 정도 허용됐다. 영화 한 편을 가치로 매길 수는 없지만, 일반 관람에 비하면 더 높은 금액이 산정돼야 한다는 점이 대중적인 합의를 이뤘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바타>의 진짜 성과는 3D의 보급 시도가 아니라 ‘푯값’을 올려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증명해낸 점에 있었다. 일반적인 환경에 더해진 부가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언가 말이다.


유성영화와 디지털 파일 등이 처음 도입될 때 극장주들의 마음을 돌린 건 관객이었다. 영화를 꼭 봐야 하는 마음이 영화를 굳이 찾아봐야 하는 귀찮음을 이길 때 덩달아 이들 어트랙션도 발달한다. 이후 <아바타> 상영 당시 극장에 도입된 3D 포맷 영사기와 안경 등은 3D 포맷으로 제작된, ‘볼 만한’ 영화가 부재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에서 점진적으로 멀어졌다. 3D 영화는 간간이 나왔지만 굳이 3D 포맷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첫 번째로 3D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일반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최대한 많은 상영관에 내걸리는 게 우선이므로 어느 정도 일반상영을 감안해서 만들어졌고, 이 안에서 3D만의 특징은 비교적 희석됐다. 3D 멀미라는 개인의 편차를 감안해서라도 가격 차이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을 하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가격만 비싼 3D는 극장에서 소외됐다. 이는 사실 3D 영화의 근본적인 제작 환경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3D 영화 제작은 일반 영화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상품이었고, 대개는 블록버스터처럼 고자본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소위 ‘대작’에 대한 기대감을 안은 관객들에 눈만 높이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 점에서 <아바타>는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감독과 좋은 기술이 만나 3D 영화의 강점을 우수하게 살린 사례에 속한다. 다만 영화 한 편만으로는 산업 전체가 변할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을 뿐이다.


이 말을 곱씹다 보면 영화가 일종의 기술 차력쇼에 가까웠다는 점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영화에서 화면은 이미지의 조합을 두고 싸우는 싸움에 가깝다. 포석을 두어 전황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바둑과도 비슷하다. 3D의 계절은 극장처럼 보편화된 환경이 아니라 VR처럼 개인화된 환경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영화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공간에 논의가 오가던 중, 이들 공간이 ‘극장’이라는 경험의 일부임이 밝혀졌다. 어느 곳이든 화면과 관객, 영사기가 있으면 그곳은 ‘극장’이 될 수 있다. 큰 화면이나 편안한 좌석, 비행기 안이나 고속버스 안에서처럼 환경 자체가 시청 경험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 같은 영화라도 비행기 안에서, 특정한 감정을 겪는 중에 본다면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말해 어려서 본 영화와 어른이 된 이후의 영화 경험은 다르다. 이 모든 일에서 ‘영화’가 절대적으로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여기서 ‘조건(Condition)’은 특정한 ‘영역’에 기반하지 않는다. 영화란 결국 ‘조우’를 중점으로 하는 매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 편의 영화가 극장가에 ‘전시’되어 있고 이에 해당 장소를 방문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기술 조건하의 영화는 관객이 대상을 조우한 후에 이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쪽에 가깝다. 이른바 영화를 ‘펼친다’거나 ‘겪는다’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후 13년이 지나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이 시대의 컴퓨터 그래픽이 얼마나 실사에 가깝게 노력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현장이었다. 여전히 기술 수요를 노리고 제작됐지만 다른 면에서 작품에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다. 영화는 특정 장면에서 고밀도 프레임을 적용하거나, 현대 게임에서 많이 차용하는 1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등 전형적인 영화 문법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눈치가 빠르다면 3D 상영을 위한 영상본이 일반적인 영화 영상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고, 2D 관람에서는 무언가 미완성본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영화 영상의 문법은 프레이밍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화면 안에서 모든 것이 벌어지고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영화 영상에서는 화면 밖의 프레임이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반면 3D 환경을 구현하는 디지털 영상에서는 화면 안이 아니라 시각 주체의 주위에 감응 영역을 설계하기 때문에 이미지가 주체에 필중한다. 간추리자면 이 차이는 아래와 같다. 영화 영상이 화면 안에서도 다양한 레이어와 심도를 갖고서 주체가 내부를 탐험할 수 있게 한다면, 디지털 영상에서 ‘화면’은 그보다 더 화각에 가깝다. 세계를 얼마나 보여주느냐와 세계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 셈인데, 디지털 영상은 애초에 관객이 이를 받아들일 것을 전제하기에 이미지의 정보량이 상당히 많은 축에 속한다.


마치 작품 안에 등장하는 바다처럼 전반적으로 이미지가 숨 쉴 새 없이 밀려온다. 이어지는 <아바타: 불의 재>도 매한가지다. 영화 전체가 3D로 구획된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 작품이 작품 속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한 세계를 ‘투영’하는 게 아니라 한 세계와 세계가 맞붙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는 흔히 관객에 의해 체화된 현실이 스크린에 맞붙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그림자로서 영화는 상상하기에 따라 그 크기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영화와 관객이 서로 다른 주체로서 맞붙는다고 가정할 때 이들 영화는 그 자신의 외부를 상실한다. 영화는 대개 자기만의 법칙과 효과를 적용하고자 외부에서 자신을 분리해내 하나의 세계로 환원하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영화가 바라는 것과 같은 외계를 공유하게 된다. 즉 영화와 관객 간에 서로 의견이 합치하기에 관객으로서는 영화를 공략하기에 몹시 편리하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은 앞서 말한 대로 세계를 분단하지 않고서 영역을 전개하기에 주체가 외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점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서 극을 끌어가는 영화 특성상 큰 장점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키리처럼 애초에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객체의 완전 현현이 가능한지를 생각해보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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