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은 현실을 살기

<휴민트>(2026)

by 수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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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친 후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서 남측 인물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당장 주인공인 조과장(조인성)부터가 그렇고 크레딧롤에서도 언급되는 바가 없다. 이는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영화의 서사와 어울리면서 기묘함을 주는 감이 있다. 가령 영화의 도입부에 들어서는 장면 하나를 떠올려보자. 인신매매 북한 여성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지휘부에서는 그에게 시시콜콜 참견해댄다. 이 과정에서 총을 쓰면 문제가 크게 번질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하는 대사가 바로 “그럼 총을 안 쓰면 되지”다. 처음에는 총구를 겨누며 위협하던 그는 이내 항복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이를 손에 쥔 그대로 둔기로 활용한다. 대개 한국영화에서 총을 쓰지 않는 이유가 한국사회의 현실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사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이들은 왜 해외임에도 총을 사용하지 않는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이 가능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걸 따져봐야 의미 없다. 관객들은 시원하게 총을 쏘는 모습을 더 좋아할 수 있고 오히려 근접 격투는 어떠한 플롯에 따른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조과장의 대사에 마련된 듯 보인다. 영화에서 숏의 의미가 ‘쏜다’는 걸 점을 고려하면, “총을 쓰지 않는다”는 조과장이 총을 쓰는 순간은 그러한 숏이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숏이 시작되고 나면 ‘영화’는 서서히 영화적 리얼리즘에서 탈각됨으로써 점진적으로 ‘영화’를 획득한다. 처음에는 대치동 학원가에 유입된 마약을 수사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마약수사는 뒷전이고 자신이 구하지 못한 ‘휴민트’를 다루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말하는 숏은 영화이지 않기 위한 마음이거나, 한 사람의 영화를 구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총을 쏠 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영화적인 장면과 연출로 변해간다. 또한 한 사람의 사연, 배경에 놓인 영화를 구출해내려면 이들 숏은 쓰여야만 한다.

물론 느와르와 멜로가 섞인 이 영화에서 현실을 찾는 일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영화는 도입부에 감독의 전작이었던 <베를린>과의 연결고리를 살짝 흘림으로써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말한다. 관객이 살아가는 현실이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이 있다. 이미 이곳을 살아왔던 이들의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밖에서 차분히 살펴보는 입장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간에 처음으로 보는 것들이고 따라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희석된다. 박건(박정민)과 채선화(신세경)의 과거는 짧은 한 장면으로만 직접 언급되는데 이 장면조차 후반에 들어 인물이 죽는다는 사실을 위한 부연으로만 자리한다. 쉽게 말해 이곳에서 두 사람의 사연은 개연성을 따져 물어야 할 본작이 아니라 그들 사이를 설명하면서 맹목적인 행동에 당위를 부여하는 ‘영화’로 소모된다. 만약 영화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관객을 설득하기보다 자기 재현의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면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숏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정의를 따르자면 숏은 총을 발포하는 방향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몫, 즉 ‘등을 진 모습’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박건과 선화의 총은 이를 바라보는 입장인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향했을 테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작품이 남측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익명의 자세를 유지하는 이 영화는 남측 관객이 ‘관객’의 지위를 유지하기 쉽도록 영화 안에서도 주인공을 익명으로 남겨두는 선택을 한다. 이때 특기해야 할 건 영화가 방출되는 방향이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명’은 행여나 작품이 품을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화면 내부로 돌리며 관객이 특정한 입장에 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영화는 자신이 묘사하는 현실이 화면에만 남기를 원하는 것 같다. 특히나 작품이 사용한 인신매매라는 소재가 그러한데, 우선 여성을 납치해 매춘을 시킨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한 거부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영화는 자신이 묘사하는 것들을 등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관객이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사건이 실제로 ‘현실’에 있을 법하든 말든 간에 중요한 건 이것이 어떠한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여성들은 블라드보스토크 현지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으며, 그 결과 매춘부로 전락해 약물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등 범죄 피해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에 이른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이 이야기에 동조할 만한 유인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크지 않다. 북한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적국’이니 말이다. 이 점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영화는 조과장이 북측 피해자를 대질심문할 때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게 한다. “대한민국 헌법 1조 3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그러니 당신도 우리 국민이고, 안전하게 지킬 겁니다.” 영화는 작품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이 관객 일반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을 산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인 분리가 일어날 수 있던 북한 여성들과의 관계는 설득 단계에 접어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도 남한측 인사는 여전히 관객 일반의 자리인 익명에만 머무른다는 점으로, 관객이 북한측의 인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보면 이들을 특정한 부류의 현실로 인식하기보다는 영화적 리얼리즘의 한 진상으로만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인신매매는 단지 영화를 위해 차용된 소재에 불과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건 한 사람의 여성과 이들을 둘러싼 두 남자의 총질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만은 눈에 걸리는 것들이 많다. 가령 한국에서는 2017년 당시 <청년경찰>이라는 영화가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작품이 여성 피해자를 묘사하는 방식과 국내 거주 중국인 동포를 바라보는 인식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로 현실에 그런 풍경들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영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그게 경찰대학의 두 풋내기들을 위한 현장견학에만 그친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묘사하는 것에서 거리를 두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채택된 관점이 피해자와 정반대인 20대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대립항을 만들어냈다.


‘숏’의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 언급해둘 만한 몇몇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작중에서 여성들을 가둔 유리장이 방탄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굳이 유리가 방탄이어야 하는지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지만 이내 그 이유가 총격전을 대비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마피아가 완전히 장악한 이곳에서 유리 안에 갇힌 여성들이 총질을 해댈 리가 없겠지만, 그냥 두 주인공이 이곳에 쳐들어올 때 엄폐물로 삼을 적당한 물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품의 주요 볼거리인 총격전 대부분이 이 시점에 분배돼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동선설계는 의도적이다. 그리고 조과장과 박건 두 사람이 등을 맞대는 시점도 바로 이곳이라는 점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전에 채선화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선화가 갇혀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서로 간에 합치를 보는 일은 두 사람이 한 여성에 보내는 시선이 시각적 재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조과장은 함께한 파트너의 말처럼 도입부에서 실패한 ‘구출’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이에 따라 채선화의 당사자성에 주목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국민을 팔아넘기는 북한 수뇌부에 대한 분노나 여성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접선한 취재원에 대한 직업적인 소명의식이다. 물론 조과장이 채선화에게 이성으로서의 마음이 있었는지까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에도 그가 최대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준 걸 보면 도리어 인생의 근심 하나를 해치운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떠올려볼 수 있는 가정은 조과장이 전형적인 영화의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박건의 말대로 생전 남이자 적국 사람인 그를 왜 이렇게까지 잘 해주는지를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영화를 화면 안으로만 남겨두고 싶었던 것으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어떠한 숏을 한다는 건 철저히 영화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고, 바꾸어 말해 이는 영화가 여성 일반을 다루는 면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닫아두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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