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차미 Dec 10. 2019

영화라는 깨달음의 순간에 관하여


1.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본편과 후속작이 일종의 연작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이어지는 속편으로 보아도 되고 동떨어진 속편으로 보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허나 무엇보다 이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닮았다면, 그것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이 그렇게 변화했을 테니 말이다. 예컨대 작품이 작가의 관점에 해당한다면, 작품의 흐름은 작가의 관점이 변모하는 과정인 것이다.




관점이 변한다는 것은,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확답할 수는 없지만 영화 한편을 만드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러니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영화 한편을 만드는 도중에 자녀가 태어나 부모가 된 이도 있고, 영화 한편을 만드는 도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 정도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확실히, 그렇게 변해버린 시간이 작가에게 미친 영향을 확인하게 된다.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도 관점의 변화는 찾아올 수 있다. 이른바 깨달음이다. 영화 한편 안에서도 시작과 끝의 관점이 달라 보이는 몇몇 작품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편 안에서도 시작과 끝이 다르지만, 감독 본인에게도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영화 작가에게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순간이다. 이때 그 순간마다 별개의 깨달음이 있다.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고 나면 어느덧 삶의 마지막이 찾아온다. 그것은 시간이다. 그런데 순간의 깨달음이 삶의 한 단락을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면, 시간의 깨달음은 삶의 한 단락을 시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영화라는 순간들, 흐르는 깨달음이 갖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2.




감독들의 초기작과 후기작은 분명 다르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 두 가지를 나란히 살펴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가 만든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관람하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관찰이라는 말보다는 음미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어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정주행 할 정도라면 관찰의 단계는 이미 지났을 것이다. 영화 한편이 아닌, 그것을 제작한 이에게 관심이 갈 때 우리는 사랑의 탐색전을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더욱 빠져들거나, 아니면 튕겨 나가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물론 영화 한편을 이해하기 위해 필모그래피 전반을 정주행 할 필요는 없다. 허나 그럼에도, 영화들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왠지 모를 즐거움이 든다.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점에서 오는 정복욕이나 성취욕이 아니다. 그들의 삶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감독의 순간과 시간이 어떤 깨달음이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그런 친밀함 중 하나다. 이 경우는 말 그대로 사람이 좋아서 따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다. 영화가 몸담은 사회에 관한 천착이다.




감독, 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있다. 시간, 우리가 사는 시대가 만들어낸 영화도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감독이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좋은 작품의 기준에는 ‘지금-여기’라는 시의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니 말이다. 하지만 감독이 꼭 시대를 따를 필요는 없다. 시대를 초월하고서도 할 수 있는 말은 많다. 장르가 아니라 미학에 관해서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꼭 감독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전자를 생각해보면서도 흔히 간과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감독이 영화를 연작으로 구성하는 것을 두고 일종의 시대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대가 작품을 하나로 잇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전혀 다른 영화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여러 감독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음에도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장르도, 시간도, 연대도, 배우도, 스타일도, 그 어떤 일치도 없다. 단지 동질감만이 그들 사이를 맴돌 뿐이다. 예컨대 우리는 이때, 지질학적 시대가 아닌 이미지의 시대를 목격한다.




3.




이미지의 시대는 어떤 시간이 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 물음보다 먼저 생각해볼 부분은 이미지라는 단어이다. 그 이미지는 본다는 것 그대로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즉 영화에서 시간은 이미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으로는 알 수 없던 시간 사이의 유사성을 영화에서 발견하거나 깨달을 수 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공간은 사물의 배치를 보존함으로써 그 동질성을 유지한다. 여기에 인물이 오가지만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세계는 그대로지만 관계는 변해버렸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었다면, 그는 사실상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방점은, 외관보다 내면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다는 점이다.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스크린을 통해 불멸성을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많은 것이 흘러갈 때 모종의 이질감을 주는 이유이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그와 우리의 관계는 변해버렸다.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태어난 모습 그대로인데, 영화 밖의 우리만이 늙어 미래의 한순간을 맞이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이다.




영화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시의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문제가 ‘지금-여기’에서 거론될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여러 시간이 있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비단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에서 파생된 비평 또한 시의성을 필요로 한다. 시의성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시의성이 없다면 우리가 그것을 지금 볼 이유는 없다. 즉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그만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우선순위는 삶의 바깥에 자리한다. 쉽게 말해 다수의 일반 대중은 시의성 없는 글을 외면한다.




대중이 작품을 외면하는 현상을 단순히 시의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본래의 맥락이 다르게 읽히는 몇몇 작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과거에 쓰인 매체론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고전의 의미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고전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동시대에 등장한 영화라면 시간이 흐르면 묻히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시대가 바뀌어 새로이 발굴되는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다시금 과거의 해당 지점으로 돌아가 그곳과 이곳을 한 자리에 놓아보게 된다.




4.




영화사에서 많은 작가들이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넘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곤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의 고비는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슬기로이 이겨내고 나면,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예컨대 그곳과 이곳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당장 돌아보면 그 느낌이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현재를 돌아보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대략 알 수 있다.




이를 노화에 따른 성숙이라거나 노련함의 체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만듦에 있어 시간이 변한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고양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듯, 영화와 인간의 시간도 다르다. 예컨대 개인의 시간은 시대의 시간과는 또 다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 같은 꿈을 꾼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문득 마주한 이미지가 삶의 어느 순간에 침입해 나의 시대 안에서 맥락을 갖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시간의 신비함이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흐르는 시간은 정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멈출 수 없다. 반대의 측면으로 보면, 시간이 흐를 때 그것은 계속 멀어져만 갈 뿐이다. 이것은 시간의 무상함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무엇보다 동시대성이라는 시의성에 의존하게 된다. 연대의 고리는 우리가 시대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을 주니 말이다. 그런데 이미지는 그런 연대의 형태를 하지 않는다.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우리가 문득 돌이켜본 과거가 우리 곁에 찾아올 때, 그것들은 시대의 부름에 응해 지질 시대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지털 시대의 밈과 필수요소가 영화보기에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