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씨의 아이>에서 두드러지는 대사 하나를 꼽자면, 작중에서 호다카가 히나의 선물을 사기 위해 인터넷에 질문을 올리는 장면에서 달린 댓글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대사는 아닌 셈이다.)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무엇을 좋아할까요?”라는 질문에 달린 댓글이 다양하지만, 그중에 한 명은 “인터넷에서 답을 찾지 말고 가서 직접 물어보라.”는 현실적인 답변을 해준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는 당사자만이 알 테니 이는 분명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전반을 살펴보면 이것은 단순히 조언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호다카와 히나가 날씨 사업을 청탁받는 공간이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호다카와 히나가 날씨 사업을 벌이는 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개설로부터 시작한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그들은 날씨를 청탁받는다. 그리고 그 날씨 사업에 대해 반응이 어떤지 알아보는 장면은, 앞서 나왔던 호다카의 ‘맑음 소녀’ 조사 작업과 연계된다. 극의 전반부에서 호다카는 맑음 소녀가 있다는 소문을 인터넷으로 접한다.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에서 취잿거리를 찾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호다카가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몇몇 장면에서는 인터넷상의 반응이 장난처럼 지나간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그것이 오컬트에 가깝다는 것이다. 날씨를 바꾸는 소녀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 장면은 <날씨의 소녀>가 애니메이션이기에 사용한 작품의 소재거리로 이해될 공산이 크다.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주된 속성이니 말이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맑음 소녀가 정말로 기적을 실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인터넷상에 일종의 ‘후기’를 남긴다. 이는 주로 서비스를 이용한 당사자보다는 그것을 목격한, 그 공간에 있기에 간접적으로 수혜를 입은 일부 목격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모습이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터넷 여론을 떠오르게 한다.
이 영화가 호다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목격자이다. 다르게 말하면 청춘 영화이자 사랑 영화의 성격이 섞인 이 작품은 그들만의 세계를 전제한다. 세카이 계열이라 부르는 이 장르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작품은 세카이라는 개념을 작품 전체가 아니라 현실과 인터넷의 관계에 놓는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보통 세카이라는 개념이 주인공 남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터넷이 아니라 현실에서 답을 찾으라.”고 말하는 인터넷상의 댓글은 이곳의 세카이란 바로 인터넷임을 보여준다.
인터넷은 맑음 소녀에 대한 소문을 생산한다. 동시에 재생산하는 역할도 한다. 쉽게 말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진위를 확인하기란 어렵다. 이곳에는 가짜 같은 진실도 있지만, 진실 같은 가짜도 있다. 하지만 호다카에게 맑음 소녀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다. 처음에는 호다카도 날씨를 조절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뜬소문으로 취급했었지만, 그녀를 만나고 능력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믿게 되었다. 예컨대 인터넷이 진실이나 거짓 중 어느 것을 전달하든 간에,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게 눈앞의 현실이다.
호다카는 인터넷에 올린 질문글에서 히나에 대해 자세히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강의 나이만으로 사람의 취향을 알아낼 수는 없다. 이때 상대의 취향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전제하는 단 하나의 명령이다. 호다카가 맑음 소녀를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의 SNS였지만, 맑음 소녀인 히나를 알게 된 것은 현실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말하자면 호다카에게 맑음 소녀는 현실의 무언가가 인터넷을 통해 재발견된 것에 해당한다. 그러니 만약 그 반대였다면 호다카는 맑음 소녀의 존재를 완벽하게 믿지 않았거나 또는 의심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과 현실에서 인터넷을 바라보는 것은 그런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2.
인터넷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과 인터넷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 이 두 개의 차이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이를테면 영화 속에서 날씨(소녀)에 대해 말하는 것들은 모두 매체이다. 티브이 안에서는 도쿄의 날씨가 이상하다는 말이 연일 흘러나오고, 인터넷에서는 맑음 소녀에 대한 체험담이 돌아다닌다. 이때 생각해보면 티브이와 인터넷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쉽게 믿기 힘든 것들이다. 또는 그만큼 쉽게 믿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날씨를 예보하는 티브이 속 뉴스는 말 그대로 예보이기에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이기에 쉽게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호다카는 그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의 진상인 맑음 소녀 히나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매체의 발전 순서대로 놓아보면 티브이는 인터넷 이전의 것에 속한다. 그러니 티브이를 인터넷에 포함하여 지칭하도록 하겠다. 이에 따르면 티브이와 인터넷은 이 영화를 이루는 세카이에 해당한다. 다르게 말해서 티브이와 인터넷이 없었다면 호다카와 히나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작품에서 티브이와 인터넷만이 주된 세카이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카이 안에는 여러 형태의 목격자가 있다. 매체 안에서의 목격자가 현실에서 히나의 능력을 목격하고는, 인터넷에 썼던 글을 고쳐 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현실과 인터넷의 경계는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경계가 사라져 가는 게 세카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맑음 소녀에 대한 소문이 현실과 인터넷을 넘나드는 만큼, 히나의 몸도 하늘과 연결되어간다. 이 모습은 호다카와 히나가 도피를 떠난 호텔에서, 히나가 자신의 몸을 호다카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표된다. 이는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현실에서의 목격담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다. 날씨를 맑게 하는 소녀가 있다는 뜬소문이 아니라, 소녀가 기도를 올려 날이 개는 모습을 눈으로 보아야 그 사실을 믿는다.
이를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인터넷 요인과 구름이라는 현실 요인에 빗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나는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몸을 두고 “하늘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의 비유에 따르면 이는 인터넷과 현실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어야만 이 재앙을 끝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재앙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주류 매체의 생각일 뿐이다. 인터넷과 티브이 안에서는 비가 오는 도쿄의 일상을 ‘비정상’인 것으로 여기지만, 신사를 지키는 노인과 동네 거주민 노파는 이를 지극히 자연스럽거나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긍정한다. 예컨대 이 영화에서 비에 대한 생각은 양분할되어있다.
딱 잘라 떨어지지는 않지만 위의 두 그룹 군을 인터넷과 현실에 대입해보자. 인터넷에서는 비가 내리는 일상을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현실에서는 비가 내리기만 하는 게 일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견해의 차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인터넷이 맑음 소녀를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영화에서 맑음 소녀는 재앙이 내린 현실에 한 줄기 희망 같은 존재이지만, 맑음 소녀가 희생하여 재앙을 무찌른다 하여도 사람들은 그 희생을 모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맑음 소녀가 부정적인 존재였다면 어떠했을지다. 영화는 맑음 소녀를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묘사했지만, 그녀가 하늘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하늘의 맥락으로도 읽혀진다. 쉽게 말해 맑음 소녀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간다. 영화는 제물로 바쳐진 히나가 구름 위의 공간에 잠들어있는 걸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 내내 옛 구전이나, 물로 된 생명체 등을 보여주면서 히나의 운명은 구름 위로 가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히나는 옛 신화에서의 용처럼 봉인되어야 하는 존재, 재앙에 가까운 무언가이다.
그러니 호다카와 히나의 삶이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되는 건 그런 점을 말하는 것이리라. 호다카의 총기 사용 사실로 인해 호다카는 경찰에 쫓기게 되고, 호다카와 히나는 함께 도피하게 된다. 그 와중에 히나는 호다카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다. 히나는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야 도쿄가 재앙을 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다카에게는 히나가 없는 도쿄가 재앙이다. 물론 이는 호다카가 히나를 좋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호다카의 이 말은 감정이 앞서서 논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을 희생해 도쿄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일 테니 말이다.
3.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 지점이다. 다른 작품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희생해 도쿄를 회생하는 게 옳다고 말했을 것이다. 설사 그 과정이 불행했더라도 결론은 어찌어찌해서 행복한 쪽으로 나버렸을 테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고 물에 잠긴 도쿄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맑음 소녀에 대한 소문이 떠돌게 된 계기가 비가 내리는 도쿄에서 비롯되었음을 떠올려보면, 물에 잠긴 도쿄의 모습은 마치 맑음 소녀에 대한 소문 그 자체처럼 보인다. 예컨대 이는 인터넷이라는 소문의 근원지가 호수로 형상화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인 논리에 따르면 호다카와 히나는 큰 재앙을 부른 게 된다. 그 모습이 이곳에 호수로 형상화되어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호다카가 히나의 선물로 무엇을 살지 인터넷에 질문했을 때, 그들은 “인터넷을 믿지 말고 현실을 직접 보라.”고 답했었다. 이 말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정보를 검색하기에는 편리하지만, 현실에 적용될 정보를 얻는 것에는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인터넷 안에서는 평균으로 산출되는 수치가 데이터의 형태로 떠다니지만, 현실에서 그 수치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일기예보가 자주 엇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넷 안에서 사람은 데이터(소문)로 존재한다. 그래서 평균값을 내기 쉽지만, 알다시피 평균이라는 것은 최하와 최고의 조합이기에 정확하게 평균적인 수치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다. (혹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 호다카가 히나의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반대로 말하면 직접 보거나, 듣거나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데이터만으로 해결되는 일도 있지만, 데이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 양쪽의 현상을 다룬다.
데이터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주로, 티브이나 인터넷과 같은 매체이다. 이곳에서 날씨는 티브이를 통해 예보된다. 하지만 히나는 그런 통계적인 데이터에 구애받지 않고 날씨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통계적으로는 완전히 예외적인 상황인 셈인데, 실은 비 내리는 도쿄 자체가 수십년만의 이상기후를 보인다고도 작품은 언급했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예외적인 게 히나일지 아니면 도쿄일지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게 작품이 던지는 물음이다. 만약 히나가 예외적인 존재라면 그녀가 재앙일 테고, 도쿄(세카이)가 예외적인 일을 겪는 중이라면 그것이 재앙일 테다.
인터넷에서 다들 맑음 소녀의 정체에 대해 떠들지만 정작 히나가 제물로 바쳐져야 도쿄가 멀쩡해진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히나가 제물로 바쳐지지 않아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사실 도덕적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호다카와 히나의 행동이 지탄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화 바깥의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영화의 안쪽으로 작용하는 세카이라는 장르는 그런 도덕적인 논란을 피해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도덕을 지탄하는 방식은 그 세카이가 인터넷이라는 점으로부터 귀인한다. 세카이가 아니라 현실을 보라는 것은, 데이터라는 이름의 소문이 떠도는 정형화된 장르, 세카이가 아닌 그 안의 히나를 보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즉, 그 명령은 이 영화에서 재앙이란 게 무엇일지에 대한 물음을 우리에게 전한다. 어느 곳에서 재앙이 벌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그에 대해 무수한 소문을 쏟아낸다. 그 과정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이유는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데이터 수치와 잘못된 정보가 소문처럼 떠돌아서다. 현장에 가보면 눈으로 단박에 확인될 만한 것도 인터넷에서는 틀렸거나 왜곡된 상태로 돌아다닌다. 모든 언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언론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전하거나, 또는 데이터 수치로만 확인되는 것을 사건의 전부로 보도하는 행위를 보면 그렇다.
데이터 수치가 틀렸거나 잘못되었기에 그것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데이터를 전적으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작품에서 등장하는 맑음 소녀라는 능력이 비현실적인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비가 쏟아져 내리는 도쿄의 이상기후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히나를 직접 접한 호다카에게 그녀의 능력은 현실이다. 덧붙여서 호다카는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을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호다카와 히나가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비가 내리는 도쿄가 일상이 된다는 것이다. 외지에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눈으로 보아야만 알게 되는 현실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