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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Jul 01. 2020

고함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 <희키툰>

*이 글은 디지털만화규장각에 게시되었다.

http://dml.komacon.kr/webzine/review/27562


1.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만화는 주로 네이버 웹툰과 같은 포털에 올라온다. ‘포털’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이 오가기에 접근성이 높다. 다르게 말해 이는 그만큼 대중성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포털이라면 그에 따른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대중성이라 함은 상업적인 면을 포함한 모든 것을 뜻한다. KBS가 공영방송*인만큼 엄격한 윤리&도덕 기준을 적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 : 한국에서 네이버가 갖는 준공영적인 지위를 생각해보라.)




구설에 오르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으려면 대중적인 소재를 채택하는 게 정석이다. 윤리와 도덕은 기본이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를 작가가 자유로이 정한다. 하지만 이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심오하다면 아무래도 독자 접근성은 낮을 것이다. 시니, 혀노 작가의 <죽음에 관하여>처럼 탁월한 연출력으로 심오한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도 어느 정도는 상한선이 있기 마련이다. 말하려는 메시지의 심오함이 너무 크다면 대부분의 독자는 이른바 ‘하차’를 하게 된다. 만화 중에서도 ‘스낵 컬쳐*’라고 불리는 웹툰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 : 간식처럼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문화.)




2.




분명 만화라는 매체 자체는 ‘스낵’이라는 말로 간추릴 수 없다. 만화를 ‘예술’로 본다면 그렇다. 그렇지만 2020년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게 되는 만화는 웹툰이다. 이는 웹툰 시장이 전체적으로 성장했음과 동시에 웹툰을 볼 방법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때 혹자는 위에서 들었던 의문을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웹툰을 볼 방법이 많다면, 굳이 포털에 있는 만화만을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이 의문은 합당하다. 실제로 여러 이유로 ‘대중적이지 못한’ 작품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연재되고 있다. 주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어서 포털에 노출되기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레진코믹스는 남성향과 여성향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고, 탑툰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작품을 자사의 플랫폼에서 연재하고 있다. 이 웹툰 플랫폼들은 메인 포털에서 볼 수 없는 만화를 연재하며 ‘소수의 독자’를 공략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말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메인 포털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접근성이 낮다. 다만 이는 작가 자신이 작품을 위한 수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취향을 많이 타겠다고 생각된다면, 메인 포털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뜻이다. 최대한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보다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소수의 독자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다.




△ 위에서 아래로, 네이버 웹툰 (메인 포털) 레진 코믹스 (서브 플랫폼) 탑툰 (서브 플랫폼)이다.




3.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다. 메인 포털이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이 노출될 기회를 높여준다면, 서브 플랫폼은 독자들이 작품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이는 취향 문제이기도 하지만 접근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메인 포털 독자라는 가정하에) 타인의 추천이 아니라면 레진코믹스나 탑툰의 웹툰을 찾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소수를 공략하는 서브 플랫폼은 대체로 유료화 정책을 취한다. 메인 포털처럼 조회 수에 의존하는 식으로 규모의 경제 사용이 불가하기에 그렇다. 즉, 구매력이 있는 몇몇 마니아에 의존한다. (작품을 무료로 공개하는 게 기본인 메인 포탈과 유료 서비스가 기본인 서브 플랫폼으로 나뉘어있는 양상이다.)




이때 서브 플랫폼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아무리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라도, 돈을 내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진입 장벽이 된다. 이는 웹툰 작가의 수익과 직결되어서, 웹툰 작가라면 십중팔구는 서브 플랫폼보다 메인 포털에서 연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메인 포털에서는 대중성을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고, 결국 자기만의 가치관과 교훈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마이너리그에 남게 된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작품을 위해 마이너리그에만 머무른다는 말은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점이다.




4.




웹툰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수고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특히나 주간 연재가 정착화된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웹툰 작가로서는,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는다면 작품을 연재할 의욕이 나지 않을 테다. 반대로, 지급한 고료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는 작품은 플랫폼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서브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들은 이곳이 자신의 가치관을 내보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한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것은 딜레마다. 작품을 위한 자유도를 서브 플랫폼에서 얻을 수 있지만, 작가 개인의 금전적 생활이나 더 많은 독자와 만난다는 점에서는 메인 포털로 가야만 한다.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들이 많고, 안타깝게도 일반 독자가 웹툰 시스템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플랫폼에 상관없이 꾸준히 챙겨보는 것으로 지지의사를 표할 수 있다.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웹툰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나, 웹툰 커뮤니티에 자기만의 색을 지닌 웹툰을 업로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생긴 팬들의 지지를 통해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하는 게 근래의 웹툰 풍토이다.




5.




웹툰 커뮤니티인 카툰-연재 갤러리에서 인기를 얻어 메인 포털에 연재하게 된 작품으로는 d몬의 <데이빗>과 오민혁의 <오민혁 단편선> 등이 있다. 반면 탑툰과 같은 서브 플랫폼에 연재하게 된 작품도 있는데, 2017년에 탑툰에서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한 희키의 <희키툰>이 그것이다. 희키의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오묘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독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다만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비속어가 많이 사용되었고, 이 점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희키의 작품에서 비속어는 일진이나 조폭이 나오는 장르처럼 단순히 액션이나 상황에 어울리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 비속어는 봉산탈춤에서 오가는 것과 같은 부류로서 해학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천박한’ 말투가 오가는 이유는, 인물의 천박함이 아니라 그런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된다.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언급하자면 [청개구리] 단편을 꼽을 수 있다. 이 단편은 대중 사회에서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져 나가는지, 반면 그에 대한 해명과 진실은 얼마나 잘 묻히는지를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희키는 등장인물들의 비속어를 통해 천박함을 묘사하고, 그것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돌아와 독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 봉산탈춤은 양반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탈춤이다.



6.




사람들은 광대를 보며 낄낄대지만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것은 광대의 눈물이다. 희키의 작품은 천박한 말투와 극적인 상황을 통해 등장인물을 마음껏 조롱할 수 있게 하지만, 등장인물을 조롱하던 와중에 그들이 돌려주는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가 광대의 가면을 뚫고 날아온다. 이 해학의 무서운 점은, 우리가 꿰뚫어 보고 있던 상황이 ‘사실은 그것과 우리의 눈높이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 비판을 하는 여타 다른 만화처럼 자신을 미리 방어할 시간이 없다. 비속어가 주를 이루는 대사와 간결한 그림체에 별생각 없이 보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와는 별개로 희키의 만화는 위기에 처해있다. 희키의 만화는 비속어와 간결한 그림체라는 이유로 메인 포털에 올라가기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혹자는 비속어와 간결한 그림체를 포기하고, ‘제대로’ ‘각 잡고’ 작품을 구상해보면 어떻겠냐고 그에게 묻기도 했다. 이에 희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비속어와 간결한 그림체를 포기하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했고, 이것이 자신의 스타일이라는 점을 알아달라고 덧붙였다.




7.




희키 본인이 고백하는 것처럼 ‘웹툰판 전체의 질적 저하’가 독자 사이에서 흉흉한 기운으로 감도는 가운데, 그의 천박하고 간결한 만화는 독자에게 환대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희키의 만화처럼 세상을 향해 ‘낮 뜨겁게’ 말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르고 신사적인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총대를 메고 전선에 서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순히 인터넷 네티즌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대한 컬트적 숭배로만 여겨질 수 있지만, 주류에서 활동하는 영웅이 있다면 비주류에서 활동하는 영웅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도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고 그곳에는 사이드킥인 당신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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