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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Sep 15. 2020

이념이여 영원하라, 가족과 영면의 <피와 살>


*이 글은 디지털만화규장각에 게시되었다.

http://dml.komacon.kr/webzine/review/27636



1.


황준호의 <피와 살>을 보며 약간의 망설임을 느끼게 된 지점이 있다. 뱀파이어가 정체불명의 괴물과 싸우는 내용의 이 만화에서, 갑작스레 역사로의 모험이 등장한 것이다. 오리지널 뱀파이어인 한영원이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이 언급된다. 역사를 언급하는 것에 어떤 이의가 있지는 않지만, 실제 역사를 작품 안으로 끌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소재인지를 우리는 잘 안다. 우리가 당장 살아가는 시절과 가까운 곳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진실의 규명과 청산이라는 측면보다 감정의 소화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오래된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는, 진실은 퇴화되고 감정만이 남아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동원 감독의 <송환>(2004)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작품의 도입부에서 김동원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정부가 대한 뉴스에서 말하던 것들이 새빨간 거짓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 자신은 세상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소위 말하는 빨갱이라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생각해본 바가 없었다고 말이다.


아마도 ‘한국(그중에서도 남한)’ 사람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구금되어 있었던 죄수라는 대목보다는, 남한에 파견되었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간첩이라는 말이 더 와닿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적국에 파견되었던 간첩에 동정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이 남한을 방문한 것은 적대적 행위를 위해서였으니, 우리도 그들을 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역사가 이념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그들은 한국의 해방 직후 이어진 반민특위나 제주도의 4.3 사건처럼,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냐고 묻는다. 이에 김동원은 이념이라는 이름의 논리가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근본적인 것들을 직시한다. 비인권적인 처사를 당하면서까지 이념을 바꾸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어쩌면 이 이야기에는 이성적인 논의가 아니라 감정적인 면이 가해졌으며, 그렇다면 감정적인 접근을 통해야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2.


황준호의 <피와 살>은 괴물(뱀파이어)이 괴물(좀비 및 기타)과 싸우는 이야기다. 황준호는 전작인 <인간의 숲>과 <미래소녀>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바 있는데, 이들은 대개 ‘무언가에 맞서 싸우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인 사상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어떤 목적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세계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미래소녀>에서 황준호는, 역사를 관통하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세계의 영원성을 은연중엔 내비친다.


흥미롭게도 <피와 살>의 주인공 이름이 한영원이다. 작중에서 한영원이 말하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녀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가 늙어 죽을 때까지 만남을 이어간다. 이때 작품은 소녀의 일생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며, 해방 직후의 ‘빨갱이 사냥’에서 군부 독재 시절을 아우른다. 논점은 이 회상장면이 나오는 흐름적 맥락에 있다. 작품 전체를 10으로 놓고 본다면 <피와 살>에서 한영원의 회상장면은 6과 7 사이에 등장한다. 영원을 살아감으로써 고독을 채득하게 된다는 주제의식은 <미래소녀>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반면, 같은 맥락에서 작동하는 주인공의 고뇌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등장한다.


만약 이 작품이 역사의 무언가를 말할 요령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웹툰이라고 해서 역사를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만화는 역사에 대해 말하는 웹툰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이 작품은 연민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혹은 전제한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작품에서 한영원은 피와 살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자 괴물인데, 처음에 이는 뱀파이어와 좀비라는 구도로 이해된다. 뱀파이어끼리는 피로 얽히며, 좀비와 괴물은 특수한 살덩어리로 이해된다. 이른바 피와 살의 대립항에서 주인공인 피는 언제나 살을 이기며, 바로 이때 이념과 역사가 등장한다.




3.


피는 언제나 살을 이긴다고 말하려는 듯하던 이 만화는,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역사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해방 직후이며, 이 시간대에서는 ‘피가 살보다 강하다’라는 주제가 반복해서 언급된다. 이른바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은, 해방 직후의 이념 대립에서 사람들이 으레 하곤 했던 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묻는다. 이념이라는 게 과연 가족보다 중요한 것이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불분명하고도 불쾌한 답변 하나가 굴러 나온다. 인간의 합인 이념은 가족이라는 개개의 개체를 얼마든지 이겨낸다고.


아마도 황준호는 이 부분의 겹침을 유도하려는 것 같다. 이 작품에는 크게 두 명의 주인공이 있는데, 뱀파이어인 한영원이 있고, 여주인공으로부터 피를 수혈받아 뱀파이어가 된 김다홍이 있다. 이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락한 인간들을 마주하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괴물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은 사건을 이겨내며, 이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인간찬가’로 이해된다. 물론 그들이 인간인 것은 아니나,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중의 평범한 인간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즉 황준호의 이 만화에서는, 피(이념)가 살(본능)을 이겼다는 말이 피(뱀파이어)가 살(인간)을 이겼다는 말로 되풀이된다. 당연하거니와, 이때의 승리는 무력과 같은 지표적 성질에서 유도되는 것이 아니다. 이 승리는 윤리의 수맥을 타고 작품 전반에 흐른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우리가 앞서 <송환>을 언급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찬가라는 말로써 인간이 꼭 시대의 주인공이어야만 한다고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외피를 하고 있음에도 인간이 아닌 이들은 많다. 혹은, 인간의 외피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이는 d몬의 <데이빗>이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4.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던 와중에, 한영원과 김다홍의 유사 모자 관계를 통해 피와 살이라는 후천적 가족의 성질을 탐구하던 이 만화는, 급격히 방향을 틀어 시대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마치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돈을 벌러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광주 시내 한복판으로 진입했듯이, 우리는 예상치 못한 길에서 전혀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황준호의 정교한 설계일 것이다. 여태까지 황준호는 작품 안에서 인물이 뒤에서 앞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해왔다. 이 만화라 해서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따라가던 만화가 역사의 어떤 지점과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황준호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소년만화의 혈기가 역사의 뜨거운 현장을 맞닥뜨렸을 때, 그곳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만약 진취적인 성향의 누군가라면 으레 주인공을 현장에 투입시킬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그녀는 시대의 현장 안에 결코 투입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들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되듯이, 역사를 초월해 존재하는 뱀파이어가 피의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신들의 윤리는 인간의 것과 같지 않아서, 그들과 인간의 공존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기묘한 동거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영원이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선택은 단 하나뿐이다. 때로는 피보다 살이 더 강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이 한영원을 구원의 길에 들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한영원은 자신이 영원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김다홍을 물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자신을 구해주던 시기의 한영원과 같은 선택지를 받아들게 된 김다홍은 고뇌한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통해 영원한 기억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이념이란 영원성의 표지인가? 피와 살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다홍은, 아이를 뱀파이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겨둠으로써 피를 택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의도는 한영원과 다르다. 한영원이 피를 믿었기에 김다홍을 뱀파이어로 만들었다면, 김다홍은 피를 불신하기에 여전한 뱀파이어로 남는다. 누군가를 잃고 고독해지는 일은 자신의 대에서 끝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김다홍은 피의 역사를 과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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