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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Oct 20. 2020

거울 상의 루머 : 환상 속의 그대를 만나며


누구든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여운에 젖기 마련이다. 이때 드는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정의할 수 없다. 이별의 슬픔일 수도 있겠고 고조기와 순응기에 따른 신체적 변화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대게 영화들이란 자체적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그리며, 절정에 올랐다면 그다음이 내리막길이라는 점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서 어느 한쪽만을 택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를 경험한다는 말과도 같고, 그 경험이란 이곳의 시공간과 정확히 연루된다. 풀이하자면 이렇다. 영화를 보는 이 시간과 공간 중에 어느 하나라도 달랐다면 우리의 영화 경험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영화 관객의 신체에 대한 생각으로 변환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마치 지금의 우리를 난자와 정자의 조합 게임 안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전자인 이별의 슬픔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다만 영화 한 편을 다 보았을 때가 아닌,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자체가 이별의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당신은 이 말을 위의 맥락 그대로 이해해도 좋다.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 그 감정적인 면모를 떠올려도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단언컨대, 우리가 영화와 단절됨으로써 느끼는 감정은 시간과 공간이 엇갈리면서 남긴 궤적이다. 


다소 거친 대응이지만 그것을 각각 감정/신체의 자리에 놓아보도록 하자. 이때 감정에 따라 신체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영화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 중에 무엇이 더 상위의 개념인지와 같은 학술적인 논쟁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그 두 가지 조합이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수식에 대한 토론을 아무리 열띠게 해본다 한들 우리는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바꾸어 말해 그 어떤 확률에서도 우리는 항상 결괏값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쨌거나 그 수식에는 결과라는 게 존재하며, 어떻게 설명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연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이에 따르면 영화가 현상학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영화란 어쨌거나 파악되는 ‘것(Thing)’이다. 다만 이 경우라면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직접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서적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이때의 영화란 보이지 않는 이들로부터 늘 응시당하기만 하는 처지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며 수도 없이 스쳐 보내는 것들에 대한 우연한 만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경우에 우리가 대응할 수 없으므로, 그 반대편에 놓인 우리의 존재로부터 논의를 출발시키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주체의 벡터값이 아니라 교란되는 좌표로부터 우연성을 도출해내자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로부터 우연성을 도출해냄이 신체라는 고정점을 갖지 않는다는 게 이 논의의 핵심이다. 오히려 그 신체는 절단되거나 분열된다. 예를 들어 김소영은 한국 영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며 환상통이라는 비유를 든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나누어진 둘은 이미 잘려나간 신체에 통증을 느끼며, 통증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하나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잘려나간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이미 그 자체로 허위다. 그러니 이 고통은 논리적으로 볼 때는 정말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당사자는 줄곧 고통을 느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신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심리적인 무언가가 작용한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이 둘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게 바로 이데올로기다.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란 관념이나 사상을 반영해 만든 물리적 현실 속의 형태를 뜻한다. (나는 이 말을 그 어떤 형태도 아닌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사용했다.) 요컨대 이데올로기를 관념의 체화, 혹은 육화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과 실천의 관계를 바로 그 어긋남에 대입해보자. 이상과 현실은 괴리되기 마련인데 한국 사회에서 이 이야기는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파악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남한 땅은 대륙과 연결된 상부가 (북한으로 인해) 차단됨으로써 실질상의 ‘섬’이 된다. 즉 논리적으로 볼 때 그곳은 존재하지 않는 땅(Wasted land)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잘려나간 부위에 통증을 느끼고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관람적 경험이 위의 맥락에서의 환상통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 논의를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 영화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무수히 많은 예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환상통을 드러내는 몇 가지 특징적인 장면만을 짧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마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가 추는 춤,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바라보는 벽 위의 그림, <박하사탕>에서 박하사탕이 갖는 의미, <길소뜸>에서 다시 만난 두 부부를 비스듬히 가르는 카메라, <괴물>에서 한강다리의 교각에서 수면으로 낙하하는 괴물. 극영화에서만도 이렇고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거의 모두가 그와 연루된다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 대한 분석은 다른 곳에서 보다 상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쨌거나 본래 이 비유는 한국 영화를 설명하는 것에 사용되었었다. 북한과 남한으로 분단된 한국의 특수 상황 속에서만 적용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분단이라는 상황은 최초의 지점으로부터 많은 길을 떠나왔다. 전쟁을 겪은 세대(일제강점기 출생)는 대부분 죽었고, 자식 세대(한국전쟁 이후 출생)는 은퇴할 시기이며, 손자 세대(군부독재 시절)도 이제 막 중장년층으로 접어든 상태다. 이렇게 삼 대가 지났고 전쟁과는 완전히 무관한 세대가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자라고 난 이상 사회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들에게 전쟁이나 독재와 같은 일은 마치 영화와 같은 환상에 가깝다. 실제로, 젊은 세대일수록 북한과의 통일에 반대를 표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에 따르자면 우리는 세대를 거칠수록 환상통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극복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표현은 우리가 잘려나간 신체의 회복을 포기했다는 점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극복했기에 새로이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전쟁과는 완전히 무관한 세대에게 전쟁이란 일종의 환상과도 같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전쟁이란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혹은 부모와 조부모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경험되는 ‘통증’이다. 또한 젊은이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의 다수는 그들 선대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문을 품은 곳에 진실이 있던가? 빨갱이란 무엇일까? 남한 사회에 정말로 간첩이 있을까? 한국 영화에서 간첩이 멋들어지게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가 이들 세대의 출현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설 무렵 등장한 <쉬리>가 그렇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빨갱이 미화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잘려나간 역사는 간접적으로만 확인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 통증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빗금 쳐진 주체가 소멸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신에 대한 끌림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입양된 아이가 다 자란 후에야 비로소 친부모를 찾아 나서게 되듯이, 환상적인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자를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환상들이 발견되는 의외의 지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 중에서도 유튜브와 같은 사용자 참여 미디어가 이에 해당한다. 상세한 계보를 적기에는 글이 너무 복잡해지므로 가장 최근의 지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자. 최근 젊은이들에게 부는 뉴트로 현상은 그 자체로 환상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이 친구들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던 미디어와 문화를 즐기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가지 뿐이다. 젊은이들은 출발지점이 아니라 도착 지점을 통해 사유한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90년대 초에 등장했다가 은퇴 후에 소식이 끊겼던 양준일은 2019년대에 다시 발굴되었다. 이 발굴은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예전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된 네티즌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 기자는 이에 대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새롭게 팬이 된 이들은 ‘지금 시대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었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발언은 양준일이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간에 지금 우리와 어울리기에 손색이 없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과적으로 양준일의 재발견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양준일을 놓쳤다는 점이 아니라 이제야 만났다는 점에서 슬픔을 느꼈다는 점이다. 


헤어지는 순간에 슬픔을 느끼는 게 더 일반적인 일일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여태까지 만나지 못했다는 점으로 미안해하는 건 이상하다. 그런데 사실 이 감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는데, 그건 바로 이산가족 상봉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일평생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되던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이산가족 대부분에게 통일은 일종의 숙원이었으며, 이는 우리에게 북한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민주화 이전 시기까지 한국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는 건 철저히 금지되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겠다. 사실 지금도 그것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시위와 사건들에 단골처럼 언급되는 게 북한 연루설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렇다. 과거에 비하면 비교적 언급이 자유로워진 게 사실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면 늘 북한 이야기가 나오곤 하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여태까지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 미안해한다는 건, 우리가 겪었던 통증들이 가짜(Pseudo)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한 모종의 속죄인 듯하다. 즉 우리에겐 하나로 연결되었던 것을 부정했다는 점에 대한 자기 속죄의 감정이 있다. 그런데 이 자기 속죄의 감정은 단순히 자신에게로 향하지만은 않는다. 위에서 극영화의 뒤에 잠시 언급했던 한국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여기서 살짝 꺼내보도록 하겠다. 


김동원의 <송환>(2003)에서 김동원은 미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남파간첩인 그들은 투옥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북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과 십여 년을 동고동락하면서 김동원은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모습에 동정을 느낌과 동시에, 그들이 북한에 대해 맹목적인 추종의 발언을 할 때는 남한 사람으로서 거부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동원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어려서 보았던 대한 뉴스가 빨갱이에 대해 했던 말들이 다 거짓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던 바가 있다. 이어서 그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마음은 알 수 없는데 머리로는 알겠다는 이 표현이 우리의 논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환상통 또한, 머리로는 그것이 잘려나간 부위라는 걸 알지만 심리적으로는 통증이 느껴지는 상태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를 도식화한다면 다음처럼 된다. 김동원이 장기수에 연민을 느낀 것은, 어려서 겪었던 북한에 대한 레드 콤플렉스가 가짜가 아니었음에 대한 모종의 속죄인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양준일에 대한 우리의 연민을 이해할 수 있다. 근래에 재발굴된 양준일의 사례에서 대중이 연민을 느꼈던 이유는 어쩌다가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잊혀진 연예인에 대한 자신의 추론이 실제로 드러나게 되었음에 대한 일종의 자기 속죄이다. 


그런데 우리가 양준일을 정말로 잊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해두었듯이 양준일을 발굴해낸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인물을 마주했으므로 그들이 양준일을 잊었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양준일의 사례를 후천적으로 학습했다고 보아야 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이와 유사하다. 고전 영화를 보는 이들 중에 그 영화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흔하다. 영화의 역사가 백 년이 넘은 이상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보는 영화보다 나이가 어릴 테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화 한 편을 마주하고 난 후에 드는 감정은, 이런 영화가 있을 법했는데도 그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 대해 드는 모종의 속죄인 것은 아닐까? 즉 우리가 영화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만남’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이별’에 대한 슬픔인 게 아닐까? 


매체의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영화가 끝없는 만남이 아니라 잔상의 연속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말할 때는 이미지가 표면으로 달려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탈락되는 도중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영화가 연속이 아닌 순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완전한 세계화가 이루어진 2000년대 이후의 사회 속에서 연결되었지만 고립되어 있기도 한 개인의 모습을, 거대한 이미지로 파악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픽셀들로 이루어진 디지털 파일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디지털 파일이 갖는 무한한 복사의 가능성에는 그에 수반한 탈락의 무한적 증대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디지털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탈락에 집중해야만 한다. 영화제, 스마트폰, 20살과 30살, 이 모든 일들은 마치 유튜브의 알고리즘처럼 우리가 스쳐 보내는 것들의 슬픔과 단지 우연으로 만났을 뿐이라는 다가옴의 설레임을 동시에 전해준다. 바로 이렇게 낡았지만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어떤 면에서는 프로이트가 두려운 낯섦(Uncanny)을 설명하는 대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억압된 것이 돌아올 때 주체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이 생경함은 억압된 초자아가 자아의 영역으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만남이 아니라 이별에 대한 결과이다. 북한이라는 타자처럼, 오늘날 해금된 여러 영화들은 도전과제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덧붙임 : 이 글은 사실 시네마테크에 관해 쓴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보존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이별을 위해 준비된 무대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영화를 보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라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즉, 시네마테크는 본질적으로 대상의 시간을 정지해 놓은 박물관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벤야민의 논의를 빌려올 수 있다. 벤야민은 무언가를 수집하는 장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사물을 수집한다는 것은 대상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빼내어 본래와 무관한 맥락 속에 전시해두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영화를 보존하는 장소인 시네마테크는 전시의 의미에서 출발지점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시네마테크를 방문한다는 것은 본래의 영화를 볼 수 없음에 대한 슬픔과 새롭게 돌아온 타자로서의 영화를 만남에 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다. 이 양가적 감정에 대해서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과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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