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것들은 사랑에 빠진다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애니메이션 (2021)

by 수차미



918IeOb52TL._AC_SY550_.jpg
0000979762_k.jpg
film-josee-the-tiger-and-the-fish-trailer-2.jpeg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애니메이션 리메이크판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본어 영화가 제작된 게 2003년이니 횟수로만 17년 된 작품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이 영화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한 번쯤은 추천 목록에 오르곤 하는 작품이다. 고전의 의미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봉 년에 비하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한국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혹은 원래 영화가 너무 인상에 남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조제>의 2003년 판을 꽤 재밌게 본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츠네오와 조제가 한 침대에서 물고기 조명을 바라보는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아마 다른 사람도 그럴 거다.


<조제>의 애니 판을 보고 나오며 떠올린 질문 몇 가지가 있었다. 영화와 비교해보았을 때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다. 이것도 나름대로 해볼 만한 질문이지만 이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조제>는 원작 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이므로 영화판의 리메이크가 아니고, 오히려 형제 관계에 더 가깝다. 그러니 영화를 기준으로 비교하기보단, 영화와 애니를 나란히 두고 보는 게 옳은 비교다. 나는 이 점을 생각하며 <조제>를 ‘틀린그림찾기’의 영화로 가정해보았다. 틀린그림찾기란 비슷하게 생긴 A와 B 사이의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요컨대 <조제>의 팬들은 애니판을 보면서 그들만의 틀린그림찾기를 할 것이다. 그런데 단지 이것만으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 틀린그림찾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부분이 다르다는 점을 먼저 말해야 한다.


조제의 영화판과 애니판은 분명하게도 다른 이야기와 내용을 담고 있다. 조제와 츠네오가 나오는 건 동일하지만, 영화판에서는 둘이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장면으로 끝맺음하는 반면, 애니판에서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에 가는 장면이나 불현듯 바다로 떠나는 장면 등은 동일하지만, 영화판에 있는 인물이 애니판에는 없고 애니판에 있는 인물이 영화판에는 없다. 이외에도 많은 부분이 다르다. 이는 마치 형제 관계에 있는 두 작품이 일종의 평행우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기본 설정과 뼈대가 같다. 그런데 이 점은 연인 간에 통용되는 사랑의 공식이기도 하다. 연인들은 서로 간에 틀린그림찾기를 하지 않던가. 연인들은 무엇이 다르고 닮았는지를 따져 묻기 좋아한다. 닮은 사람끼리 끌린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닮은 것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이 공식은 <조제>를 견인하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사실은 남매였다는 막장 설정도 연인 간의 이런 친연성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조제>에서 이는 영화판보다는 애니판에 더 잘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조제>의 애니판에서 츠네오는 스쿠버 다이빙용품점에서 일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고기의 고향을 찾아가 보고자 유학을 준비하는 청년이다. 이 사실은 영화 초반부에 조제와 츠네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서 조제의 캐릭터성을 영화가 설명해주는 장면, 방 안에 물이 넘실 차오르며 [백경]의 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조제의 모습을 서사적으로 지지한다. 물속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청년인 츠네오와, 희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물속에 있는 자신을 떠올리는 조제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츠네오가 물고기를 찾아 물속으로 떠난다면, 조제는 물을 찾아가기 위해 물고기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츠네오는 물고기를 찾지 못하고, 조제 또한 물고기가 될 수 없다. 이 문장들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틀린그림찾기를 해보자. 첫 번째로, 츠네오가 보고 싶은 물고기는 멕시코 바다에만 있기에 일본에서는 수족관이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츠네오는 수족관에 아니면 볼 수 없는 물고기 하나를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조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조제는 방 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상태였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조제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가출한다. 이 뜬금없는 일탈에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츠네오는 순순히 그녀와 여정을 함께한다. 츠네오도 조제처럼 바다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혹은, 물고기를 바다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조제>의 애니판에서 츠네오는 수족관에서 발견한 멕시코 고향의 물고기를 두고서 다음처럼 생각한다. 원래는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물고기가 혼자만 수족관에 있으니 참 힘들겠다고, 그러니 츠네오로서는 조제를 바다로 데려다주고 싶었을 것이다. 츠네오는 부모의 이혼을 겪은 바 있기에 부모의 사망을 겪은 조제가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조제의 즉흥 발언을 받아들여 바다에 간다. 즉 이 장면에서 츠네오는 조제와의 공통점을 찾아내었고, 차이점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신체를 발견했다. 영화판에서도 그렇지만 애니판에서도 츠네오가 조제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데, 정황상으로 추측해 볼 때 동정심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정심이라기보다 동질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바다를 좋아하는 점이 그렇다.


이 사실은 츠네오가 조제의 방 안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후로 달라진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처음에 까칠한 조제를 싫어했던 츠네오는 조제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신체적 조건은 다를지언정 바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다. 두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바다에 잠수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냥 같아 보이기만 하는 이 그림에도 틀린 점은 있다. 이 틀린 점을 찾아내는 게 <조제>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처음에 자신이 생각하던 어떤 이미지가 있다면 그런 이미지의 균질함이 서서히 깨어짐으로써 들어서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다. 이들은 처음에 편견,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원형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점차 이 추리에 틀린 구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흥미로운 게임에 돌입하게 된다.


방 안 가득 바다 그림, 혹은 바다가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놓은 조제의 꿈은 아마도 물고기가 되는 것이었을 테다. 일단 물고기는 걷지 못해도 자유로울 수 있는 생물이기도 하지만, 물 밖에는 할머니가 말하는 맹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제가 물고기가 되려는 건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물속에 들어가면 불편한 신체 따윈 별문제도 아니다. 또한 물 속에 있으면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나 혼자만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 츠네오도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조제> 애니판의 츠네오는 겉보기엔 밝아 보이지만 사실은 나름의 고민이 있는 청년이다. 부모님이 이혼했고, 그런 와중에 물고기에 푹 빠진 그에게 물속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장소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순간은 육체의 노동과 사회적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청춘을 다 보낼 것이냐고 묻는 친구의 말은 츠네오가 얼마나 빈틈없이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츠네오는 세상을 알차게’만’ 살아가는 청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에겐 멕시코 유학을 간다는 목표가 있다(유학의 본 목적은 멕시코 바다 스쿠버다이빙이다). 이 목표를 위해 삶의 전부를 투자하고 있으며 이런 일상에서 휴식 같은 건 없다. 다른 한편 바깥 사람들이 조제에게 하는 말은 그렇게 방구석에만 있으면서 청춘을 다 보낼 것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조제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바깥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늘 바다를 상상했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공상 전부를 투자한다. 조제가 숨기고 싶어 했던 방 안 전체가 바다 그림으로 도배되어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 조제에게 바다가 어떤 곳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츠네오와 조제는 같은 그림을 보고 있다.


위에서 말한 조제의 상상은 이런 심리를 영화적으로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셰이프 오브 워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다만). 그런데 조제가 물속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는 세상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은 맹수로 가득하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말은 호랑이의 모습으로 조제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피할 방법은 없는 걸까? 조제는 이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하나는 호랑이가 쳐들어올 수 없는 물속을 상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를 마주할 때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조제>의 애니판에서 조제가 츠네오에게 쓸데없이 둘러대는 말들은 그녀가 은근히 동반자를 원해왔음을 보여준다. 남자친구를 다섯 명 동시에 사귀었다던가 하는 말들이 그러한데, 이 중에서도 특히 눈여겨 볼만한 건 관리인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영화 내내 조제는 츠네오를 관리인이라는 말로 칭하는데, 이 말은 3인칭 명사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그’ 사람이다. 이런 표현을 딱히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츠네오와 단둘이 있을 때도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조제의 눈앞에 츠네오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제가 츠네오를 관리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대명사적 사용이라기보다는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이곳저곳을 함께 놀러 다니며 서로에게 공통점이 많음을 알게 된 조제는 오히려 그 점으로 인해 서로 간에 존재하는 틀린그림찾기에 몰두해야만 했을 것이다(틀린 부분을 찾아내려면 그림에서 살짝 멀어져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여태까지 자신이 알던 세상과 실제로 마주한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틀린그림을 찾아내는 일이 즐거운 만큼, 내가 아는 그대로의 츠네오도 어딘지 모르게 다를 것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만남은 틀린그림찾기로서 즐거우니 말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영화판과 애니판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영화판의 조제가 틀린그림찾기를 포기한다면 애니판의 조제는 틀린그림찾기를 치워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조제의 할머니가 죽고 그녀가 홀로 서야 하는 장면까지는 전반적으로 서사가 유사하지만, 애니판에서 츠네오는 바람둥이가 아니며 오히려 조제와의 공통점이 계속해서 강조된다. 물고기의 고향을 내면의 안식처로 삼는 청년은 물고기의 고향에 가서 내면의 안식을 얻는다. 반대로, 바깥의 맹수가 두려운 청년은 바깥의 맹수와 동행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극복한다. 사실 조제는 츠네오와 만남으로써 바깥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츠네오에게 더는 여기 올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 영화판은 정확히 여기에서 끝나버린다. 반면 애니판은 이야기를 조금 더 끌고 가서 츠네오에게 장애를 입힌 다음, 조제의 처지에 동조시킨다.


이 대목은 영화판과 애니판이 평행우주로서 분기되는 시점이다. 자신이 츠네오의 발목을 붙잡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조제는 츠네오를 떠나려하고, 자신을 뿌리치는 조제에게 다가가던 츠네오는 교통사고를 당해 심각한 다리골절을 당하고야 만다. 의사는 츠네오에게 다시 못 걸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츠네오의 해외 유학도 취소되고야 만다. 츠네오는 스쿠버 다이빙을 못 하면 굳이 멕시코 유학을 갈 이유도 없다고 말하면서 삶의 의지를 포기해버린다. 여기서 츠네오는 여태까지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조제의 말을 복기하며 자신과 조제 사이에 존재하던 틀린그림을 공통점으로 바꾼다. 그 말인즉슨,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것이 있고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판의 두 사람이 둘 사이의 틀린그림, 근본적인 생각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에 헤어지고야 말았다면 애니판의 이 사건은 이야기의 기수를 앞으로 돌린다.


물론 세세하게 다르다 해도 이전까지는 얼추 비슷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새로 쓰이게 된다면, 아무래도 어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두 사람은 행복해져야 했을까? 틀린그림찾기가 더는 흥미 유발제로서의 기능을 잃고서 분열과 균열로 이해되는 지점을 애니판은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 아마도 이는 서로가 타자임을 인식하는 틀린그림찾기가 아니라, 서로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사랑의 의식인 공통분모 찾기 게임으로 진입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제가 관리인이라는 호칭을 포기하지 않던 게 계속해서 다른 점을 찾아내 보려는 거리두기의 관찰자적 의도였다면, 마지막에 가서야 관리인 호칭을 포기한 건 여기서 더 발견할 틀린조각들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의 다른 점들은, 처음에는 매력으로 보이다가 권태기가 오면 좁힐 수 없는 차이로 다가오곤 하는데, 그렇게 보면 <조제>의 애니판은 사랑의 권태기, 위기를 극복한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데이터 은하에서 결과값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