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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산동에 삽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산동 이야기

by soo

몇 년 전만 해도, 저에게 마포구는 늘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길거리와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 군데군데 솟은 높은 건물들. 우리가 잘 아는 홍대, 합정, 공덕의 이미지처럼요.


그런데 웬걸요. 제가 사는 성산동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어요. 조용한 밤거리를 걷다 보면 제 옷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요. 마감을 했는지 문 닫힌 가게들을 슬쩍 들여다보면, 희한하게도 가게 안은 복작복작합니다. 집 앞 골목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많거든요. 재야의 숨은 고수 같은 사장님들의 음식 솜씨를 맛보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집 근처 기찻길 건널목은 친구들이 놀러 오면 꼭 데려가요. 해질녘에 맞춰서요. 기찻길 너머 노을을 마주하는 순간, ‘와-‘하는 탄성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게 되거든요. 봄에는 색색깔의 꽃들이 만개하고, 여름엔 초록 잎들 사이로 장미가, 가을엔 붉은 잎들이, 겨울엔 눈이 쌓이는 이곳. ‘땡땡땡-‘ 기차 신호에 걸릴 때면, 고개를 들고 잠시 여유롭게 계절의 변화를 즐기곤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교가 있었어요. 지금은 철거되어 터만 남았지만요. 늦은 밤 버스를 내렸는데, 육교 철거 작업이 한창이더라고요. 괜히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가로등이 켜진 육교의 그윽한 분위기를 좋아했거든요. 철거된 흔적을 볼 때마다 그때의 분위기를 추억하겠죠. 그 흔적은 꽤 오랫동안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성산동을 촌스럽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동네가 참 좋습니다. 각박해지기 쉬운 세상에서 낭만을 기억하며 살 수 있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네거든요. 이곳에서 독립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되도록이면 오래, 성산동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마무리는 애정하는 가좌역 기찻길의 초여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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