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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Oct 17. 2021

두려움에 맞설 때 비로소 강해진다

공황장애와 폐쇄공포증을 이겨낸 어느 20대의 고백

심리적 불안으로부터


누구나 겪는다는 고 3 수험생활, 나는 유난히도 혹독한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약 2년간 공부와 거리를 둔 채 살다가 2학년 1학기 말부터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기엔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잠을 줄이는 일이었다. 


잠을 줄이기 위해 소량의 물에 커피 믹스를 6~7개 정도 타서 찐한 커피액처럼 카페인을 섭취했고 새벽 두세 시까지 학교 기숙사에 있는 독서실에서 뜬눈으로 공부했다. 결과적으론 그런 노력 덕택에 얼추 친구들을 따라잡아 성적을 받고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지 못하면 어떡하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재수를 하게 되면 우리 집이 지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왜 이제야 공부를 시작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짧은 수면마저 허락되지 않아 고 3 때는 늘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심리적 불안으로부터 나는 결국 공황장애를 얻게 되었다. 


공황장애의 시작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신체 건강은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 건강은 무리한 탓에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대학생활은 고등학생 시절보다 더 바빠 정신적으로 쉴 틈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여대 특성상 1학년부터 모두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 학과 성적을 잘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에 빚이 늘어가는 게 눈에 뻔히 보여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학과 생활을 비롯해 중간, 기말고사 때마다 고3 수험생 시절처럼 도서관에서 살면서 공부해야 했고, 용돈을 벌어야 해서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대외활동까지 매일을 빼곡한 스케줄을 견뎌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응당 그렇게 살아야 나중에 취업도 잘하고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보냈다 자부할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다 보니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가던 어느 날, 학교에 일찍 가야 할 일이 있어 출근길 지하철을 탔는데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내 코와 입을 막은 것처럼 숨은 쉬어지지 않고 눈앞이 팽 돌았으며 거의 기절 단계까지 갔었다. 앞에 앉아 계셨던 한 아주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앉았는데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보건센터에 가서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 후에 폐쇄공포증까지


그러고 나서 바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봤지만 신체 기관 중 어느 하나 이상 있는 곳은 없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내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했다. 그때 가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상담 이력이 남아 취업할 때 불리하다는 유언비어를 본 탓에 걱정되어 선생님의 권유를 무시하였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마다 호흡이 가빠지려고 하면 내리고, 내려서 다시 타고, 또 내려서 다시 타야 했기에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상 일찍 외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취업을 하고 나서 2년 차가 될 때까지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겪을 때마다 문득 공황장애가 발현되었고 출퇴근 길 지하철을 타는 것이 두려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대에 출근해 늦은 밤에 퇴근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평일에만 그렇지 주말이나 스트레스가 해소된 시점에는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나 작고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는 것마저 괜히 무서움에 손에 땀까지 나자, 어느새 폐쇄공포증까지 생기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건강 검진할 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니 스트레스로 인해서 불안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려움을 견뎌내기 위해


약을 먹긴 싫었다. 그건 내가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시작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는 데 그중에서도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물이나 밀폐된 공간에 대한 공포증을 가졌던 어떤 분이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을 누비는 것만으로 이를 이겨냈다는 후기를 보고선 그렇게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5m를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그리 겁나지 않았는데 자격증을 따기 위해 본격적으로 춘천에 있는 K26 잠수풀에 들어가서 20m가 넘는 홀에 늘어가니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중도에 포기하고 쉬자니 이것조차 해내지 못하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최대한 즐거웠던 순간을 상상하며 계속해서 홀의 바닥까지 들어갔다 위로 올라오는 연습을 계속했다. 


좁은 다이빙 홀을 오고 가는 연습을 하면서 폐쇄공간에 들어서면 긴장되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뒤로도 몇 번 자격증을 따러 사이판으로 떠날 때까지 K26 잠수풀에서 다이빙을 연습하며 그동안 사람이 많은 공간, 폐쇄적인 공간, 밀실 등에 가졌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사이판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을 때도 동굴에서 잠수를 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겁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때 내리쬐는 햇빛이 바다를 뚫고 25m 아래에 있는 내게까지 빛이 도달했는데 눈앞에는 형형색색 물고기가 오고 가고 햇빛에 돌의 표면이 반사되어 아름답다는 표현 그 이상이 필요했다. 


그 후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로,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것들에 도전했다. 스트레스를 겪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혼자 돌아와 글쓰기에 매진하며 우울했던 감정을 스스로 위로해줬고, 일이 없는 주말에는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빼곡하게 사는 것만이 좋은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직장에서도 업무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고, 그 외 점심이나 저녁시간에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도 완치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정신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제는 아무리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밀폐된 공간에 가도 식은땀이 나거나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는 하지만 두려움을 없애는 노력을 한 덕분일까. 적어도 무언가가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때로는 치료가 좋을 수도 있다. 과거의 나로, 처음 공황장애가 발병했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어떤 것도 걱정하지 말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두려움을 극복해보고자 도전했다. 앞으로 또 내게 어떤 고난의 길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날 마음먹었던 대로 눈앞에 놓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나 자신에게 바라본다. 

출처: 사진첩(사이판 어느 바다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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