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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Jun 28. 2022

브런치를 3개월 동안 쉬었다. 왜?

그럼에도 다시 돌아왔다. 왜?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참을성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평생을 살았다. 뭔가를 견디고 버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끈기를 가지고 한 우물만 파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것과 같았다. 


예컨대 누군가가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 갔을 때,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버티는 건 자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돌아와서 이번에는 유리병 안에 마시멜로를 넣고 뚜껑을 닫은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열어서 먹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3번 정도 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끈기가 없는 내가 유난히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바로 글쓰기였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해고 한 달에 한편 이상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 강의부터 칼럼, 잡지 기고 등 크고 작은 다양한 기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만 치부하기엔 들인 공수가 아까울 정도로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브런치에, 그리고 글쓰기에 투자해서 얻은 결과물들이었다. 


브런치를 3개월 쉬었다. 왜?


그런 브런치를 딱 3개월 동안 손에서 놓았다. 브런치 앱을 깔아놓고선 독자분들의 댓글에만 댓글을 달았으며, 브런치와 연동된 이메일로 제안 오는 메일에만 답변을 드렸다. 그건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브런치를 쓰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 일터.

출처: 브런치(연재를 중단한 지 60일째 되던 날 보내온 Push메시지)

첫 번째는 꾸준히 쓰는 것에 대한 매력을 잃어버린 일에서 시작한다.

브런치 공모전에서 수상하신 분들의 소감을 매년 보면 항상 하시는 말씀은 모두 '꾸준히 쓰라'였다. 꾸준히 쓰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꾸준히 쓰기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면 어쩌지라는 의심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브런치에서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 눈을 감은 채로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고 일주일간 심하게 앓고 난 뒤 항상 모든 행동에 이러한 질문이 붙었다. '내가 진정으로 이것을 하고 싶은 것인가.'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할 당시에도 이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다. 대답은 'NO'였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이 숙제로 느껴졌고 점점 글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으며 생기를 잃어가는 느낌이 드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을 잠시 쉬었다. 


두 번째는 남의 글을 쓰느라 정작 내 글을 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이 이야기는 조만간 브런치에 시리즈로 만들어 연재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른 이들을 위한 글을 쓰느라 정작 내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 한 글자도 타이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브런치를 쉬는 3개월 동안 계속해서 글을 썼다. 아니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많이 썼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정말 다양한 글을 썼다. 카피라이팅부터 웹사이트 카피라이팅, 유튜브 원고, 연설문, 홈쇼핑 POD 등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썼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글을 써야 할 시간이 없어졌다. '지금 이 글을 쓸 바에는 제안이 들어온 글에 대해 한자라도 더 쓰는 게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위한 글쓰기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그나마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단편소설은 이따금씩 썼지만 그 외의 글은 전무했다. 특히 브런치에서 연재하던 글들이 그랬다. 글을 써서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주목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많은 독자들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단어부터 문장 하나하나 기획하고 검토하고 발행하느라 노력과 시간이 예상보다 항상 더 소요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완벽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 등 공수를 더 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이 쓰고 나서 똥같이 느껴졌다. 이 싸질러 놓은 똥을 발행해도 될까 싶어 그냥 조용히 서랍에만 넣어놓고 매일 꺼내서 봤다. 보면 볼수록 더 똥같이 느껴져서 삭제를 해댔고 결국 3개월 동안 하나의 글도 발행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는 궁색한 변명이지만, 소재거리가 고갈 났다. 아니 번아웃 상태일 수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일상 속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여행이 내게는 정말 좋은 소재거리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었고 그 무렵 나는 독립을 경험해보고자 오피스텔을 얻어 분가를 했다.


처음에는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게 좋아서 이것저것 브런치에 올렸다. 자취 일기도 올려보고 반응이 좋아 회사 이야기도 올려보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점점 소재가 고갈 났다.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렸던 3월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정말 심하게 앓고 나니깐 내가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일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말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원을 다니다 보니 글을 쓸 기회가 많아서 계속 썼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글이 해야 하는 일로 바뀌었다. 게다가 소재거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글쓰기도 회사일도 번아웃에 걸린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왔다. 왜?


브런치에서 연재를 중단한 동안에도 글을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셔서 돌아온 마음 반, 브런치가 아니면 내 일상이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서 돌아온 마음 반. 딱 반반이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다시 꾸준히 써봐야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분들이나 브런치 작가 분들이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정답은 없으니깐 다 같이 으샤 으샤 해서 글을 쓰는 습관을 계속해서 기를 수 있도록 브런치 모임이라도 만들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 드디어 3개월 만에 글을 발행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부끄러운 밤, 그런 밤이었다. 

출처: 브런치(브런치에서 연재를 중단했음에도 구독을 해주신 구독자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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