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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y 07. 2023

청담동 15,000원 디저트 코스가 생각나는 밤

대학시절의 나에게 

대학시절 나는 늘 돈이 없었다


우리 집은 풍족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중간함은 대학을 다니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풍족하지 않으니 장학금을 받기 위해 늘 도서관에서 살아야 했으며, 가난하지 않으니 국가장학금을 충분히 받지도 못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아버지의 은퇴시기가 점점 다가오자, 부모님께 더는 기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대신 공부나 열심히 하라던 부모님의 말씀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뤄냈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20대 초반의 여대생이었던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30대 초반의 지금의 내가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돈을 더 효율적으로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텐데 그때는 무조건 땀을 흘려야만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께 기대는 대신 남들보다 조금은 더 힘든 길을 선택했었다. 


취향이 있다는 것 


대학시절 여유로운 집안의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집안의 친구들은 '이것' 하나로 완벽히 구분이 가능했다. 바로 '취향'이었다. 후자에 속했던 나는 늘 주머니 사정이 가벼웠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밥을 사줄 때가 아니면 지지고나 봉구스 밥버거, 김밥 등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러나 전자, 그러니까 여유로운 집안의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으려 했다. 그들에게 있어 김밥이나 봉구스 밥버거, 지지고와 같은 음식은 바쁠 때 어쩌다가 먹는 불량식품 같은 음식이었을 뿐이었다. 


청담동의 15,000원짜리 디저트 코스


동아리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만나 놀다가 우연히 한 청담동의 디저트 전문점에 들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 본가에서 2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청담동까지 가느라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디저트를 주문하는 대신 커피 한잔을 시켰다. 가격 때문이었다. 


해당 디저트 가게에서 당시 대표 메뉴가 1인에 15,000원짜리 디저트 코스였는데, 배가 너무 고픈 와중에도 그 돈이 아까워서 차마 주문할 수가 없었다. 당시 천 원짜리 김밥이 있었을 때니깐, 15,000원짜리 디저트 코스면 김밥을 15줄이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주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출처: https://bit.ly/3pl3Rxa (좌)/ https://bit.ly/3HLtcXc (우)


배려를 몸소 보여줬던 친구들에게


디저트 전문점에 들어와 디저트 대신 커피 한잔만 시키는 내게 친구들은 디저트를 주문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그런 그들에게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다며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 만약 함께 간 친구들 중 한 명이 자신이 그냥 내주겠다고 디저트 코스를 시키라고 하거나, 왜 여기까지 와서 커피 한잔만 시키냐고 무안을 준 친구가 있었다면, 그 나름대로 상처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도 그때 함께했던 친구 중 어느 누구 하나도 내게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다. 


대신에 점심 직후에 만났으니 배가 부를 수도 있겠다며 혹시라도 디저트가 나온다면 한입 먹어보라고 다정히 웃어주던 친구들. 이들 덕분에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결핍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생각나는 밤


최근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작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을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대학시절의 나였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금액이 소득으로 찍혀있는 것을 보고 문득 대학시절 가격이 비싸 주문하지 못했던 15,000원짜리 청담동 디저트 코스가 생각났다. 


코스가 아니고 단품이라 해도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돈이 있는 오늘. 타임머신이 있다면 주문하지 못해 주저했던 당시로 돌아가 용돈 주고 이깟 디저트 코스 5년 뒤부터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15,000원짜리 디저트 코스도 주문하지 못해 주눅 드는 것 대신 고개를 들어 지금 이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으라고, 훗날 디저트 코스보다 친구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더 값지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라고. 당시의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이곳에 대신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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