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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r 22. 2020

재택근무는 내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

재택근무 종료 D-1, 그동안의 깨달음

벌써 재택근무한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시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다. 메일로 재택근무 소식을 전달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일이면 회사로 출근을 하다니. 이런 말을 가볍게 해서는 안되지만, 돌이켜보면 입사 이래로 가장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던 때였다고 자부한다. 갑자기 회의나 회식에 불려 가지 않아도 되고, 팀장님 혹은 상사분들께 보고를 해야 하는 일들도 사내 메신저로 간략히 설명드리면 되니 시간도 단축되고 부담감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업무상 일정 조율이나 한 가지 안건에 대해 급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해야 할 때,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하는 비효율적인 업무를 제외하곤, 재택근무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메일로 재택근무 종료 안내를 받았을 때, 아쉬웠다. 

'COVID-19가 감소 추세라 하지만, 연일 뉴스에서 단체 활동을 피하라고 하는 통에 지금 회사에 출근하는 게 맞는 걸까, 난 재택근무가 더 좋은데.' 하고 아주 잠깐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 나는 엄마가 삼시 세 끼를 늘 제시간에 차려주신 덕분에 일하는데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동기들만 봐도 자취생들은 끼니 걱정,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들 때문에 모두가 재택근무를 반기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스럽던 재택근무 생활을 이렇게 끝내는 것이 아쉬워, 재택근무가 내게 남긴 것들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평소라면 몰랐을 테지만, 재택근무라는 계기로 깨닫게 된 나의 감정을, 이번 글에 담아보고자 한다. 분명 나중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때 내가 깨달은 게 있는데 말이야~ '하면서 늘어놓을 말들을 조금 미리 꺼내본다.


1. 후회 : 나는 왜 모든 것을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하자]고 미뤘을까.

친한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한가로운 오후 북카페에서 책 읽기, 퇴근하고 찾는 필라테스 수업, 친구와 준비했던 에어비앤비사업, 혹은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단순히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COVID-19가 터지면서 하지 못하게 되거나 아주 가볍게 시작했다가 그대로 멈춰버린 일들이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특히 작년부터 글쓰기 모임에 꼭 참여해야지 하다가 가격 때문에 망설였다가 놓치고, 일정이 맞지 않아서 놓치고 이번에 꼭 참여해봐야지 했던 [문토-글쓰기 모임]은 한 달 가까이 연기되고 있다. 왜 그때 시간이 앞으로 무한정 남아있다고 생각했었을까. 친구들과의 만남을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 달에 보자'라고 했던 게 가장 후회된다. 


깨달은 점 : 환경이 주어질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았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도(예를 들면 올해 안에 책 출판하기), 의지만 있어도 되는 일도(반차 쓰고 오후에 북카페에서 한가롭게 책 읽기)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2. 반성 :  나는 왜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이건 비단 재택근무 때문만이 아니라, 코로나 19에 의해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생명을 빼앗길 수 있는가를 뉴스를 통해 매일 간접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아직 젊으니 매일 건강할 거라 생각했고,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야근하느라 힘든 날이면 20대는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다음날 쉬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건 시행착오가 아니고 그냥 내 시간과 건강을 갈아 넣는 일이 아니었을까, 과연 그 일을 그렇게 늦게까지 붙잡고 있을 만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답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절대 그 정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점 : 나의 삶이 무한하다는 생각일랑 거두고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길걸, 나의 건강을 돌보고 나의 감정을 더 보살펴줄걸. 앞으로도 힘든 날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나 자신의 건강과 마음 상태를 1순위에 두고 돌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 만족 : 나는 충분히 지금도 잘하고 있구나

집에서 혼자 일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객정보를 다루는 일도,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도 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라 내내 생각보다 잘 해내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동안 스스로 과소평가해온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나 말을 스스로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안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교대상을 삼아 그 사람보다 잘하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칭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글만 읽었지 실천에 옮겨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늘 상황에, 내 능력에, 내 환경에 만족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더 성취하려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택근무는 성취와 관계없이 충분히 잘 해냈고 충분히 만족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깨달은 점 : 우리는 모두 우리의 자리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 만족하지 않고 불평하는 대신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지금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잘 해냈다고, 고생했다고.


이 글을 모두 쓰고 마무리를 지으려던 참에, 재택근무가 연장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설마'하고 생각했는데, 인사팀장님이 보낸 공지 문자를 보니 실감이 나더라. 이렇게 또 재택근무가 약 1주일 정도 연장되었다. 앞서 쓴 글을 지우는 대신, 매일 다시 읽으며 앞으로 남은 일주일은 이전과는 다르게 깨달음을 바탕으로 뭔가 변화된 삶을 살아보려 한다. 모든 일에 득과 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이번 재택근무는 내게 [실]보다 [득]이 더 많이 남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여기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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