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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y 26. 2020

주니어가 경험한
자율 좌석 근무제 장단점

좋은 점 나쁜 점 반반이요

취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근무환경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다행이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했기에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근무환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막 입사했을 때는 취업 뽕에 한껏 취한 채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증명해주는 내 출입카드, 내 책상, 내 의자, 내 노트북 외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입사하고 딱 한 달 만에 근무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루 24시간 중 평균 수면시간인 7시간을 제외하면 15시간. 그중에서 2시간은 출퇴근 길에 날려버리고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9시간에서 11시간 정도. 깨어있는 동안 집보다 회사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그 시간에 대한 권태로움을 느끼고야 말았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은퇴하기까지 몇 년 정도 걸릴지 계산해봤다. 60대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자그마치 35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앞날이 암울했다. 

왜 이렇게 지겨울까. 매일 비슷한 업무에 둘러싸여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일하면서 가장 삶을 따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탕비실 앞에 앉아야 했던 근무환경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이 신입사원에게는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하필이면 입사하자마자 탕비실을 마주하고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오롯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탕비실에 가는 척하면서 그 앞에 앉아 야근하고 있는 신입사원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야근하고 있냐'는 윗사람의 농담을 받아주어야 하는 날에는 지루함을 넘어서 비참함까지 느껴야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이직을 고민하던 즈음 갑작스레 회사에 [자율 좌석 근무제(이하: 자율좌석제)]가 도입되었다.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전사적으로 시행한 제도, '자율좌석제'에 대해서 처음에는 회사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분분하였다. 대체적으로 회사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일부 구성원들로부터는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자율좌석제' 도입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 

나를 포함한 (특히 주니어) 구성원들은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입사 동기들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모두들 '자율좌석제'에 대한 찬양과 칭찬으로 인해 입이 마를 수가 없었다. 

좋게 평가받고 있는 '자율좌석제'. 
지금부터 그에 대한 후기를 바탕으로 장/단점을 비교해보려 한다.

자율좌석제의 장점은 이렇습니다. 
그나마 우리 회사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무실의 모습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U2BI3GMnSSE) 

01. 자율좌석제는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야지.',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으니 구석진 곳이나, 집중 근무실에서 일해야지.' 이 모든 것은 오직 자율좌석제에서만 허용된 이야기다. 하루가 단조롭고 지겹게 느껴질 때 근무환경을 바꾸는 것 이상의 특효약은 없다. 매일 새로운 환경이 가져다주는 활력소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02. 회사 내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도, 정리할 수도 있다. 

부서 단위로 배정되어있는 지정 자리에 앉다 보니, 업무를 위해 협력관계에 있는 타 부서 분들 외엔 회사 내에 소위 말해 아는 얼굴들이 많지 않았었다. '자율좌석제'가 시행되면서 부서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보니, 업무로 엮여있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몇 번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을 트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동시에 같은 팀원이라도 앉는 자리가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사내 메신저로 업무 관련 Comm. 만 하여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03.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자율좌석제'가 시행되면서 매일 아침마다 좌석을 예약하고 옮겨 다니느라 업무 준비 시간이 늘어난다고 볼멘소리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율좌석제'야 말로 전체적으로 볼 때, 불필요한 업무 시간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부서끼리 모여 앉지 않으니, 불필요한 잡담 시간도 사라졌다. 또한, 구태여 다이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먹고 있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점심을 따로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게다가 퇴근할 때쯤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어, 업무 효율성뿐 아니라 삶의 만족도까지 높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가 자율좌석제에 대한 장점이라면, 과연 단점은 무엇일까?
그나마 우리 회사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무실의 모습2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QBpZGqEMsKg)

01. 점점 자율좌석제가 아닌 고정좌석제가 되어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차피 공급은 한정되어 있기에 나에게 좋아 보이는 자리란 결국 모두에게 좋아 보여 자리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출근 시간, 좌석 예약이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어제 앉았던 자리 혹은 오늘은 꼭 앉고야 말겠다는 그 자리에 앉을 기회조차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에만 앉다 보니 어느덧 자율좌석제가 아닌 고정좌석제로 변모해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02. 자율좌석제 도입 이전보다 회의는 많아지고 소통은 어려워졌다. 

부서끼리 앉아있으면 언제든지 혹은 얼마든지 팀원 혹은 팀장님께 여쭤볼 수 있는 사안이라도, 자율좌석제가 도입되고 나서부터는 소통이 쉽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계시는지 회의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사무실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게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어떤 안건에 대해 팀 단위의 논의가 필요할 경우, 이전에는 자리에 앉아서 의논했다면 지금은 같이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가 회의실을 제외하고 없기에 회의실 예약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결국 자율좌석제를 도입하기 전보다 회의는 많아졌지만, 업무나 이슈에 관한 자유로운 소통은 물리적으로 어려워졌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03. 의도치 않은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자리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노트북 충전기, 볼펜, 노트 등 사무용품 잃어버리는 횟수가 증가하게 된다. 보통 퇴근 때 개인 사물함에 물건을 모두 정리해야 하지만 가끔 서둘러 퇴근하다 보면 이마저도 까맣게 잊게 된다. 그럴 때면 의도치 않게 물건들을 분실하고야 마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좌석을 모바일로 예약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업무 시간에 자리에 있고 없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어 또 한 번 의도치 않은 베짱이의 모습으로 놀고 있을 상대방을 상상하게 된다. 


이렇듯 자율좌석제는 양날의 검처럼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분명 자율좌석제는 장점 혹은 단점 중 한쪽 편만을 바라보고 쉽사리 없애거나 대체할 수는 없는 제도가 틀림없다. 코로나 19에 의한 재택근무 탓에 자율좌석제 시행일자가 급히 당겨졌긴 하지만 향후 5년 안에 대부분의 회사가 스마트 오피스를 지향하며 틀림없이 자율좌석제를 도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럴 때 자율좌석제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자율좌석제의 단점을 줄이는 동시에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회사 시스템과 상황에 맞게 찾아야 할 것이다. 자율좌석제로 인해 근무환경이 좋아졌지만 '자율'이 앞에 붙은 만큼 필요로 하는 책임감도 배는 더 커진 듯하다. 


회사에 대한 구성원의 책임과 의무는 결국 [성실히 일하는 것]과 [성과를 내는 것] 이 두 가지겠지. 

이 두 가지를 이뤄내기 위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지사. 이를 위한 당근으로써 [자율좌석제]는 단점은 충분히 무시해도 될 만큼 매혹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 구성원들의 노력에 발맞춰 [좋은 환경에서 일할] '권리' 뿐 아니라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더 좋은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권리'도 회사가 구성원들을 위해 고민하면 참 좋을 텐데. 이런 회사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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