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후반의 초보 독립인. 특별한 재능과 특기는 없지만, 음식· 컴퓨터· 초등 독서지도 관련 등의 잡다한 자격증만 10여 개 이상 취득한 자격증인. 회사원, 워킹맘, 전업주부, 공부방 선생님을 거쳐 현재 백수. 나의 간단한 이력이다. 조금 더 표현해본다면, 연두와 하늘색 닮은 성격을 가졌지만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붉은색이 가끔 툭하고 나오는 열정인 이기도 하다.
20대에 독립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은데 어쩌다 40대 중반을 넘어서 진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나이로 보면,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뭔가 그럴싸한 결과물이 있거나 어느 정도 형성된 것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딱히 내세울만한 이력도 재력도, 혈기왕성한 몸도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망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어정쩡하다.
어정쩡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하지 아니하고 모호하거나 어중간하다.'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습게도 나는 '어중간하다'는 말을 제법 들었다. 세 명의 자매 사이에 둘째로 태어나 자라면서 첫째의 권력도, 막내의 귀여움도 차지하지 못했다. 학교 성적도 상위도 하위도 아닌 중간이었다. 성격도 모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둥글둥글하지도 않다. 밖에서 보면 둥근듯하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까다로운? 성격이란다. 이런 나의 성격은 오래된 친구가 이야기해줘서 알았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보기보다 섬세한 부분이 있다'가 아닐까?
회사 생활은 16년, 공부방은 6년 정도 했다. 직장인으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못하지도 않았다. 나름 열심히 하였지만 결과물은 적당히 회사에 필요한 사람? 딱 그 정도였다. 20대에 입사해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닐 줄 알았던 회사는 둘째 육아 휴직 후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하게 되었다. 육아와 살림, 직장인의 완벽하게 소화하는 멋진 워킹맘으로 살고 싶었지만 간절한 희망일 뿐. 현실의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었다.
평범한 열정 우먼이 기를 쓰고 슈퍼우먼 흉내를 내다 결국 탈이 났다. 건강에 심각한 신호가 오면서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 전업주부의 길에 들어섰고 육아와 살림. 내조의 여왕으로 살아본다. 아내, 엄마, 직장인의 역할에서 직장인의 역할이 빠지니 여유가 생기고 건강이 회복되었다. 에너지가 충전되니 열정인의 모습이 다시 나왔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고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어 여러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가르칠 수 있는 독서와 관련된 자격증 몇 개를 취득했다. 배운 김에 제대로 더 공부하고 싶어 관련 대학에 편입하여 졸업을 했다. 전업주부로 2년 가까이 보냈지만 학생의 신분이기도 했다. 배웠으면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수업에게 배운 것을 바로 아이들과 함께 했다. 하다 보니 아이 친구들과 모여하면 더 좋을 것 같아 관심 있는 친구를 불러 모았다. 학원비를 아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학원비를 내가 벌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수업이 많아지면서 관련 공부를 더 하게 되었고 자격증도 더 추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부터 딴 자격증이 몇 년 전 취득한 자격증과 합하여 10개가 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방 한 칸의 공간으로 운영하는 공부방은 비록 작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이었고 최고 경영자인 만큼 불타는 열정으로 일하면서 신나고 즐거웠다. 하지만 사업가 기질은 부족했는지 능력이 부족했는지 경제적 수입은 크게 얻지 못했다.
알콩달콩 예쁘고 재미있게 살겠다고 결혼을 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네 명이 되었다. 그 네 명에서 어쩌다 지금, 혼자가 되어 독립을 하게 되었다. 1년이 막 지난 새내기 독립인이다.
독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수입이 부족한 공부방을 접고 취업을 준비한다. 여러 종류의 자격증이 있고 경력도 다양한데 막상 취직을 하려니 갈 곳이 없다. 한 우물을 팠다면 갈 곳이 있었을까? 20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볼 때는 경력이 부족했다. 지금은 경력이 되지만 단절 기간이 꽤 있는 데다 나이가 너무 많다. 어정쩡하다.......
열정 넘치고 패기 있던 청년의 시기에 외치고 다닌 말이 있다.
"나는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 굵게!"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르고 곧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는 대나무처럼 강직한 성격이라고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었나? 어쨌든 뭔가 임팩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재미있고 신나게 살다가 후대에 이름 석자 남기고 가고 싶었다.'골골거리며 아픈 몸으로 오래 살지 말고 미련 없이 깔끔하게 가자! 그게 인생이지. 인생은 짧고 굵게!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인생이 생각대로 쉽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대나무도 잘게 쪼개면 휘어지듯이 나 역시 출산과 육아, 사회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생도 짧고 굵게 살고 싶은 희망이 있었지만, 사람 목숨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90넘은 팔팔한 어르신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의학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 업적이란 게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정쩡하다는 표현에는 어떠한 영역에 확실하게 소속되지 못한 무언가를 말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긍정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최고와 최선을 지향하는 사회적 잣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잘 안 풀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나에게 "최선을 다했냐?"라고 질문하는 친구가 있다. 그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한다. 죽을 만큼 에너지를 던졌어야 했나? 나는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마음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중간한 게 좋을 때도 많다. 미지근한 물이 목욕할 때도 마실 때도 편안하다. 어떤 일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시도라도 해 보는 게 인생을 살다 보면 경험이 되어 좋다. 일을 할 때 열정을 가지고 하는 건 좋지만 매번 전투를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몸과 마음 어느 한 곳이 고장을 일으킨다. '짧고 굵게'가 아닌 '피투성이로 골골한 채 길게'갈 수 도 있다.
어정쩡하다는 건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에 꼭 최고와 최선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 경우에 따라 그 중간 어디쯤 내가 편안 영역을 만들어 살면 될 듯하다. 경험해 보지 못한 좌절을 맛보고 어정쩡한 현재의 상황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현재 인생이 어정쩡하다는 건 삶의 최종 목적지로 가는 중간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어정쩡해도 괜찮다. 지구라는 별에 와서 골고루 잘 놀았다는 뜻이니까.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배우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앞으로도 어정쩡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