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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주에 부모덕은 없다고요?

우리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난 게 로또입니다.

by 빛날
부모덕은 보지 못했네요. 여태 고생하셨지만 앞으로 말년까지 쭉 좋습니다.
자수성가할 사주입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인생을 묻고 있다.

일면식도 없으며 처음 듣는 목소리다.

홍보를 많이 하는 사주 앱을 깔고 인기 있는 사주 선생님을 선택해서 전화를 걸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판 모르는 낯선 이에게 술술 나의 생년월일을 말하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하고,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풀릴 것인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누군가 전화로 사주를 보는 걸 보고 언젠가 나도 해보고 싶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그 처음을 지나면 다음은 어렵지 않다. 처음 통화를 하고 나서 사주 선생님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지 궁금해 6개월 안에 3번의 사주를 봤다. 다른 사주 선생님들이다. 모두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생년월일과 시간을 말하고 나면 시작하는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부모 덕은 별로 없었네요."

처음에는 그저 흘려들었다.

경제적인 면을 이야기 하나보다 했다.


내 주변인들은 안다. 우리 부모님을. 부모덕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났다는 걸.

경상도의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회적 분위기와 다르게 가족회의를 하며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요즘은 들어보지 못한 '남아선호사상'이 대세인 시대에 딸 셋을 낳으셨는데 사회적 기준과 상관없이 차별 없이 키우셨다.

경상도에서 흔히 말하는 '가시나'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름을 불러주셨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하면 안 돼.' 대신에 '네가 하는 일을 언제나 응원해'를 말씀해 주신 부모님이다.

어린이 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선생님처럼 어린 자녀를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셨다.


학창 시절에도 그 흔한 '공부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컸다. '엄친아'였냐고? 아니다. 공부도 운동도 예술적 재능도 딱히 없는 그저 그런 딸이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책이 나오고 영화가 나올 때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춘기 시절에 내가 엄마에게 화내면서 한 마디 했다.

"성적이 떨어졌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공부하라는 말 안 해? 나한테 관심이 없지!"

그때 소녀 같은 우리 엄마는 놀라고 많이 속상하셨다고 한다. 본인이 얼마나 더 속상할까 싶어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격려의 말을 해줬는데 오히려 자식이 화를 내니까.......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부부싸움을 본 기억은 거의 없는데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안 싸우신 건 아니고 자식이 없는 밖에서 이야기하고 오셨다고 한다. 20살이 넘어서는 미팅하고 온 이야기를 아빠와 편하게 이야기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늦은 퇴근이거나 특별히 이른 출근시간이면 어김없이 태워주셨다.

동생이 20대 초반 무분별한 소비로 부모님 몰래 카드빚을 지고 돌려막기를 하다 아빠가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동생을 조용히 방으로 부르셨다. 동생은 크게 혼날 각오하고 아빠와 둘이 마주 앉았다.

"네가 그동안 말도 못 하고 맘고생이 심했겠다. 진작에 너와 소통하지 못한 아빠가 미안하다."

어린 나이에 빚을 지고 혼자 속앓이를 했을 거라고 오히려 아빠가 맘 아파하셨다.

당시 꽤 큰 목돈이었는데 아빠가 정리해주셨다. 그 일로 동생은 소비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정말 알뜰하고 훌륭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20대 사회초년생으로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늘 기다려주셨다.

내 선택을 믿어주셨다. 30대에는 결혼과 육아, 직장을 병행할 때 부모님은 자신의 자유시간을 포기하시고 도와주셨다. 40대에는 사업을 하겠다는 사위를 응원하고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지원을 해주셨다. 가족이 다 모이고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고 있으면 슬그머니 몰래 일어나 자녀들 대신 설거지를 하시고 정리를 하신다. 조금이라도 가족들이 편하게 놀고 쉬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독립하게 된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과정을 알리지 않았기에 너무 놀라고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내 걱정에 아파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독립의 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면 내 아픔이 전달될 것 같아서 안 하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씩씩하게 결과만 알리는 통보에 가까웠다.

"이제 예전처럼 아프지 않아."

"네가 안 아프면 됐다."

왜냐고 묻지 않으셨다. 어떻게 그렇게 결정했냐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봤다.

부모님 집에서 나오는데 역시나 평소와 같이 포옹해주셨다.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

평소와 다른 건 이 한마디였다.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냐?'라고 하셨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는 그렇게 위로에도 고수였다.


우리 세명의 딸들에게 아빠는 슈퍼맨이고 친구였다. 평생을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기술 장인이셨고,

이웃과 더불어 사실 줄 아는 정 많은 이웃(퇴직 후 자신의 기술로 재능기부를 하고 계신다.)이며, 약자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정의를 가지신 분이셨고 어른이셨으며 지금을 즐기며 사시는 인생의 주인공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빠의 열렬한 팬인 것은 스스로도 멋진 분이시지만 엄마의 역할이 크다.

언제나 우리에게 아빠를 높여주셨다. 아빠 의견에 따라주시고 우리 앞에서 큰 목소리 내시지 않으셨다.

아빠도 항상 엄마는 '한국의 여인상, 여왕'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는 걸 본 아빠가 우리 셋을 불러 말씀하셨다.

'엄마는 너희가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따끔하게 혼내셨다.

부모님은 서로를 왕과 왕비로 대하셨다.


출생이 흙수저니 금수저니 그런 말들을 한다.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은 서럽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또 대박을 꿈꾸고 주식, NFT에 열을 올린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다.

오래전 영화 대사에서

'너거 아부지 뭐 하시노?'가 예전에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는데, 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너거 아부지는 네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하냐?'고 묻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데 경제적인 요소만큼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다.


우리 아부지가 내게 가치관을 가르쳐 주신적은 없다. 그냥 몸소 보여주셨다.

일상의 대화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늦은 퇴근에도 잠들어 있는 자녀의 방에 들어와 꼭 이불을 한 번이라도 덮어주셨고, 감기라도 살짝 들었다 싶으면 엄마에게 꼭 약을 챙겨 먹었는지 컨디션을 확인하셨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 청소하시는 분, 수위 아저씨, 이웃분들에게 '너의 부모님은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우리 아빠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신 분이시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으셨고 병원도 정기검진 외에는 병원에 다니신 일도 약도 잘 드신적이 없다. 70이 넘어도 헬스장을 다니셨고 그 헬스장에서도 커피 심부름을 맡아하는 멋있는 오빠, 형님으로 불리셨다. 직업병으로 팔과 손이 조금 불편하시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 굽혀 펴기 150개 정도는 충분히 하시는 몸짱이시기도 하다.

그런 우리 아빠가 아프다고 한다. 아주 많이.

지금도 등산을 다니시고 운전도 잘하고 잘 웃고 잘 드시는데...

담배도 평생 피우지 않으셨고 술도 거의 드시지 않는 분이신데

기침을 오래 하셔서 동네 병원에 가니 큰 병원 가 보라 한다.

큰 병원 가니 검사에 검사를 하더니 생각하지 못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진단을 내린다.


다음 달 초 의사들의 회의를 통해 자세한 진료방법이나 의견이 나온다고 한다.

긍정의 우리 아버지는 그저 받아들인다고 하신다. 우리는, 우리는 뭘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사주에 부모 덕이 없다고?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신 부모님 덕에 교육도 받고 사회에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사주를 보지만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노력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결과는 없다는 걸 아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도 안다. 부모님의 삶을 보고 자랐는데 사주로 인생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듣는다. 사주를 보시는 분들은 훌륭한 상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부모님은 삶,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멘토가 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존중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내 아이들에게도 비교하는 말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우리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건 감사함이다. 언니와 나와 동생은 알고 있다.

우리 부모님께 태어난 건 로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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