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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장인 이발사의 딸입니다.

by 빛날

혼자 계시는 엄마를 보고 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은 주렁주렁 두 손 가득가득입니다.

딸에게 주는 반찬에 과일에....... 냉장고 많이 털어 옵니다.

세월이 지나도 엄마고 딸입니다. 내리사랑입니다.

이번에는 특별한 물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납니다.

50년 넘게 이발사로 일하셨습니다. 이발 장인입니다.

70이 넘게 현역에서 일하셨고 이발소를 그만두시고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까지도 지역 어르신들에게 이발 봉사를 하셨습니다.

앞머리를 종종 집에서 자르는데 옆머리 뒷머리까지 잘라 본 적은 없습니다.

주변에 셀프 커트를 하는 분들이 몇 분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납니다.

이번에 제대로 커트를 해보겠다고 헤어용 숱가위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 가위가 있다며 꺼내십니다.

전문가용 가위세트를 동생이 가져갔고 이번에 다른 가위세트 가방을 찾으셨답니다.

편찮으신 분이 계시면 출장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라 합니다.

작은 가죽 지갑입니다. 다른 큰 지갑 세트에는 바리깡, 이발가위, 숱가위, 빗 등이 끼워져 있습니다.

전문가용 가위입니다. 탐납니다.

가위가 2개 있길래 엄마에게 하나 받았습니다. 바리깡도 탐이 났지만 하나밖에 없어서 달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그것까지 욕심내면 정말 나쁜 딸 될 것 같아서요. 양심이란 건 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옆머리를 숱가위로 층을 냅니다.

두근두근..... 이제 뒷머리카락입니다. 거울 보고 한다는데 뒷머리를 비춰 줄 만한 거울이 없어서 욕실에서 그냥 검은 고무줄 머리끈으로 두 갈래로 묶어서 잘랐습니다. 얼마 전 앞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에는 앞머리카락만큼 과감하게 짧게 자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길이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소심함을 한 스푼 첨가한 과감함으로 싹둑 가위질을 했습니다.

가위를 손가락에 끼웠는데 그립감이 좋습니다. 삭 잘리는 소리도 시원합니다.

내가 미용사니 맘껏 가위질을 합니다. 숱을 내는 가위로 원하는 스타일을 만듭니다.

뒷 머리가 궁금하긴 한데 어찌 될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하고 샤워를 합니다. 방에 있는 작은 네모난 거울로 뒷머리를 확인합니다. 왼쪽 뒷 끝이 좀 애매하지만 처음부터 배부를 수 있나요... 첫 작품 이 정도에 만족합니다.

역시 유전자의 힘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고 우겨봅니다.

by 빛날 ( 이발사 딸의 셀프 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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