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자르면 힘이 솟아납니다.
'삼손'이란 인물을 아시나요?
아주 오래전 영화'삼손과 델릴라'를 기억하는 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의 헤라클레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이스라엘의 괴력의 영웅입니다. 괴력의 원천은 긴 머리카락입니다.
삼손과 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바로 머리카락입니다. 저는 머리카락 길이에 따라 힘이 조절됩니다.
삼손과 다른 점은 저는 짧을수록 힘이 납니다.
공부나 일에 집중하거나 잡념을 없애는 방법으로 남자들은 삭발을 하지 않습니까? 효과가 있으니까 하겠지요. 저도 머리카락 길이가 짧을수록 씩씩함이 살아납니다. 용기가 샘솟습니다.
머리카락이 어깨 길이에서는 힘을 잘 못 씁니다. 여성스러움만 가득합니다. 말투도 어조도 부드러움이 넘칩니다. 살짝 웨이브 있는 펌이 들어가면 부드러움에 애교까지 넘치지요.
단발머리는 살짝 힘이 들어갑니다. 머리카락 길이가 귀만 살짝 덮이는 길이까지는 꽤 에너지가 모이지요.
건전지 에너자이저가 하는 팔 굽혀 펴기 백만 스물둘까지는 안되지만 일주일 중 나흘은 아침마다 스무 개 정도는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귀가 다 보이는 쇼트커트는 참아왔습니다. 쇼트커트의 편리함을 정말 잘 압니다. 머리 감고 말릴 때, 수건으로 몇 번 툭툭 털고 나면 끝나는 마무리. 특히 아침에 머리를 감을 일이 있을 때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가끔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은 맘이 들었지만 나이 들어 보일까 망설였습니다. 스스로를 자제했습니다.
어제 그 머리카락을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귀가 다 드러나게 짧게 커트했습니다.
무섭다고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감사하게도 전 완벽한 계란형의 주먹만 한 얼굴을 가졌으니까요.
주먹 크기도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푸하하
혹시 잘못 읽지는 않으셨겠지요? 분명 눈. 코. 입 완벽한 '미인'이라 하지 않고 계란 형태의 얼굴이라고만 했습니다. 그래도 여성성이 완전히 사리지는 건 원치 않아 앞머리는 내렸습니다. 어려 보이는 효과는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귀 앞으로 살짝 층을 낸 몇 올의 머리카락은 귀 뒤로 살짝 넘길 수 있으니 완전 사내 같지는 않습니다.
나이 들어 보일까 두려워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버린 이유는 가을 때문입니다.
가을 날씨는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감정에 빠져 자꾸 분위기 있는 노래만 찾아 듣고 있습니다. 자꾸 어디로 떠나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넘칩니다. 첫사랑의 상대부터 썸을 탔던 친구들. 온갖 이성들이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미용실에 들러 정리를 해 버렸습니다.
나이 들어 보이는 두려움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불러온 혼란스러움이 너무나 커져서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당연히 머리가 가볍습니다. 편하고요.
동료들이 짧은 머리를 보고 한 마디씩 합니다.
"오! 머리카락 짧게 잘랐네요."
머리를 흔들며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날리며 리듬을 넣어 신나게 대답합니다.
"네. 샤방~샤방~하지요!"
"미소년 같다."
옆에 다른 친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로 말합니다.
"헉. 앞에 '미'자는 빼야 할 듯"
뭐 할아버지 소리 안 들었으니 다행입니다.
가을에만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봄, 여름, 겨울. 다른 계절에는 아무리 그 감정을 불러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한 가을이 왔는데 그냥 잘라냅니다.
올해만 그러렵니다.
이번 '가을'은 나만의 변형된 계절 '가글' 혹은 '간을' 혹은 '갔남'이라는 새로운 계절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글을 쓸 때 음악을 틀어 놓고 합니다. 매일 다른 노래들을 선곡하는데 오늘은 인기 100곡을 전체 듣기로 설정하고 시작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새로운 노래가 나옵니다.
이무진의 '가을 타나 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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