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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Dec 05. 2021

느닷없이 간호조무사

마흔다섯.


커트라인이다. 

선착순이 아닌 구인 앱에서 찾아낸 현실, 이력서라도 제출할 수 있는 나이.

그것도 너그러이 봐준, 몇 안 되는 회사의 커트라인이 마흔다섯까지였다.


 처음에는 1년밖에 차이 나지 않으니 일단 이력서를 써보자였다. 나는 용감하니까. 

면접을 보면 뽑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격증이 기본 10개는 넘고 각기 다른 장르의 직업으로 사회 경력이 충분히 20년이 넘으니 어렵지 않게 뭐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력으로 들어갈 곳은 거의 없었고 40대를 구하는 곳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나 임시 계약직이 간혹 있었다. 물론 커트라인 나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지원만 하면 붙는다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잠~~ 잠 하다. 전화기가 이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간'이 많이 부었다. 이력서를 마지막으로 써본 기억이 20년 전이니 감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청년실업. 취업난. 뉴스로만 접하는 것을 체험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6년 차 운영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의 독서 수업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일하는 시간이 적으니 수입이 당연히 얼마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책과 함께 아이들과 토론하는 수업이 좋았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2개월 정도 문을 닫았다. 탈회하는 학생 없이 계속 수업을 이어갔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안타깝지만 문을 닫기로 했다.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고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갈 곳이 없다. 아, 그 막막함이란!

 

"빛날 씨도 간호조무사 해봐"

"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직업인데요?"

"나도 생각 안 해 봤다. 할 수 있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니 좋고 50대도 취업할 수 있는 직업이다."

"시험 어렵지 않아요?"

"공부하면 다 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가 적극 추천을 한다. 독서코칭 수업을 하다 그만두고 느닷없이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더니 노인요양병원에서 1년 차 근무를 하고 있다. 

 솔깃해진다. 나이가 들어도 취업이 되고 월급이 나온다니까. 1년의 학원 과정이 부담이 있었지만 더 많은 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지나가도 없어질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간호사와 차별이 있다고 해서 간호대학 입학을 고민했지만 적성에 잘 맞는지도 모르는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기는 무리수였다. 또 입학을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다행히 간호조무사 과정이 국비로 전면 지원이 되었다. 일반 과정도 있지만 대부분 국비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학원에 등록하면 좀 수월한 것 같다. 국비 지원을 염두에 둔다면 학원 개강 일정 2~3개월 전에 등록을 해 두는 게 중요하다. 

 2021년 4월 새로운 직업을 위해 발을 내디뎠다.




 인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해서 병원 실습을 마치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경우에 따라 맞기도 하지만 조금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평생직업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평생 한 길을 가셔서 장인이 되신 분들을 존경한다. 필요한 일이다. 

 나는 일반 회사의 영업관리부 직원에서 제과제빵사, 콜센터, 전업주부(대학 편입& 개인 사무실 보조), 공부방을 운영했다. 한 업종에서 적게는 1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일을 했다.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 아르바이트도 종류가 다 다르다. 여러 종류의 일을 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10년 이상의 일을 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했다.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을 위해 늘 공부했고 도전했다. 호기심이 많아 배우고 싶은 게 많은 탓에 직업을 갈아탔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면서 느낀 점은 예전의 직업이 다 도움이 된다는 거다. 직업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라 생각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는 머리를 많이 굴렸는데 나이가 드니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자'도 터득하게 된다. 그럼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 주변 여건상 경력단절의 여성들이 많다. 다시 일하고 싶은 데 갈 곳이 없다. 정말 공감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말고 길을 찾기를 바란다. 

1년의 간호조무사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누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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