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창을 넓게 여는 방법

강동석 시인의 서시

by 빛날

좁은 창을 넓게 여는 방법.

고작 생각해낸 게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

방이 어두워.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겠어.


꽃이 피어 있었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저 보고만 싶었어.

종이 울고 있었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저 듣고만 싶었어.

사람이 가고 있었어.

참견하고 싶지 않았어.

그저 느끼고만 싶었어.

그리고

그리고

손에 약간의 힘이 남아 있어.

불을 피울 수 있을 거야.

이제 성냥을 들었어.

불이 곱고 에쁘면

너를 부를게.


올 비 있으면 다 오게 하고

필 꽃 있으면 다 피게 하고

설 사람 있으면 다 서게 해야지

그래도 아직은 빛으로 남아 있는

한 뼘의 사랑을 위하여

아름답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아름답게 해야지.


아무리 거세게 흔들려도

나무는 나무이듯

아무리 숨 가쁘게 도피해도

사람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터득해야 할 텐데.


안 되겠어.

창 밖으로 아무리 길게 고개를

내밀어도 방은 조금도 밝아지질 않는군.

창틀을 헐어야겠어.

넓은 새 창틀을 달고

방이 밝아지면

꼭, 꼬옥 너를 부를게.


-강동석/ 서시




강동석 시인의 '이별 다음에'란 시집에 있는 '서시'다.

1987년 4월에 범조사에서 초판 인쇄하고 발행한 시집을 1991년 시내 서점에서 구입했다.

놀랍게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책 정리를 할 때마다 살아남은 책이다.

빛이 바랬지만 평생 가지고 있을 듯하다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 내 맘에 쏙 들어온 '시'다.


좁은 창을 넓게 열고 싶어 고개를 내밀었는데 창밖으로 아무리 길게 내밀어도 방이 밝아지지 않아 창틀을

헐어야겠다는 작가의 생각이 참 신박했다.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리고 방이 밝아지면 너를 부른다고?

이 작가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밝은 환경에서 초대하고 싶은 이. 넓은 창을 마련하고 함께 그 빛을 누리고 싶은 이가 있구나.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때에 이 시는 그냥 내 맘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흐름을 보고 있지만 굳이 참견하고 싶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던 내 마음. 올 비 있으면 다 오게 하고 필 꽃 있으면 다 피게 하고 싶은 마음.

틀에 박힌 규칙들을 참 잘 지키는 아이였지만 틀이 정말 싫었던. 그런 내게 창틀은 헐면 된다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시인.

지금은 형식에서 자유로운 세상이지만 1991년에는 과감하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시인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이웃집 누나의 등에 업혀 그네를 타다 떨어져 다쳤다고 한다. 6개월간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살다가 사지가 거의 마비된 상태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을 더 크게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최근에도 글을 쓰셨나 해서 검색해 봤는데 오래전 미국으로 건너 가신 듯하다.

강동석 시인은 이 시를 쓸 때 30년이 지나도 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까? 물론 앞으로도 사랑하는 시가 될거다.

응답하라 1991이다. 나에게 참으로 인상적인 시. 지금까지도 가끔 읽어보는 시를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로 나누고 싶다.

강동석/이별다음에/범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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