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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l 29. 2019

그 많던 머위대는 누가 다 먹었나?

많다고 투덜거렸던 내가 다 먹었지.


딸~ 이거 껍질 벗기는 거 도와주면 안 될까?


집순이를 자처하며 이불속에서 꿈적도 않고 눈알만 굴리고 있는 참이었다. 분명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다. 아직 자는 척해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엄마는 어떻게 된 건지 기가 막히게 내가 일어난 걸 알고 있었다. 매번 감탄한다. 카메라라도 달아났나? 살가웠던 목소리 톤이 점점 변하는 걸 보니 일어나야 할 타이밍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보니 바닥엔 신문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직사각형으로 된 큰 박스에 고구마 순보다는 굵은 무언가가 가득 담겨있었다. 아, 잘 못 나왔다.. 끝까지 모르는 척할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뻔히 보였다.


머위대............


제대로 씻지도 않은 나는 눈곱만 제거하고, 손을 씻고, 신문지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허리는 반쯤 수그린 채 의도하지 않은 검정 프렌치 네일을 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정말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박스에 담긴 무언가는 '머위대'라는 것인데. 이맘때가 제철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구르마(손수레)에 무언가를 낑낑 거리며 가지고 왔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그게 머위대였구나.


아니, 식구도 적고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딱 봐도 1년 치 같은데. 엄마는 왜 이만큼이나 사 가지고..라고 하고 싶었는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엄마가 먼저 얘기를 꺼내셨다. 같이 일하는 언니(엄마는 언니라고 부른다.)가 주신 거라고. 그러니 감사하게 먹으라고.


"노인네가 집이 00인데(이모님 댁과 직장은 버스로 1시간) 버스 타고 이걸 가지고 왔어. 나 준다고. 얼마나 고마워, 이거 반찬 만들어서 언니도 줄 거야. 이런 거 요리할 줄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그 이모는 늘 그랬다. 고구마, 감자, 상추, 깻잎 등등 당신네 밭에서 나는 제철 작물들을 꼭 나누어 주었다.  언젠가 이모가 주신 고추 장아찌가 맛있다고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반년은 두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고추장아찌가 집에 도착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쓰도록 하고)


어쨌든 나는 지금 신문지 위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 엄마가 알맞은 크기로 손질한 머위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기만을.  이후에 나는 데쳐낸 머위대의 껍질을 벗겨야겠지. 어릴 적 고구마 순 껍질을 벗겨본 경력을 살려서 말이야. 그렇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물에 불어서 쭈글거리는 손끝과 아주 얇게 검은 프렌치 네일이 완성되었다.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당연히 온몸이 쑤셨다. 우리네 부모님은 늘 이랬겠지? 아마도?


얼마 뒤 엄마는 맛 좀 보라며 무언가를 주셨는데. 그 무언가는 바로 내 수고가 고스란히 들어간 머위대였다. 참기름, 들깨가 듬뿍 들어가서 고소하고 머위대 특유의 식감이 재미있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고소한 머위대를 계속 집어먹고 있다가 작은 통 하나를 꺼냈다.


"월요일에 도시락 반찬 할 거야. 이거 분명 회사 언니도 좋아할 거야. 언니도 이런 거 잘 먹거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월요일에 가져간 머위대는 성공적이었다. 회사 언니도 정말 좋아했다. 언니의 부모님도, 우리 엄마도 늘 나눠 먹으라며 조금씩 더 챙겨 주신다. 얘기 들어보니 좋아할 거 같다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딸 같은 누군가를  위해.


양이 엄청났던 머위대는 이미 동이 나버렸다. 언제 다 먹냐고 투덜거렸던 사람이 제일 많이 먹었다. 그건 바로 나.


머위대 하나로 피 한 방울 안 섞인 서로가 하나가 된 거 같다. 아주 옛날 옆집, 옆 옆집을 돌아다니며 "저 누군데요. 이거 엄마가 드시라고 주셨어요." 했던 것이 생각났다. 소소하지만 나눌 수 있는 기쁨. 그 안에 가득 담긴 손맛과 정성.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이 아닐까 한다.


머위대를 주신 이모님도 아주 맛있게 드셨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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