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만 그 속에 담긴 두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00 씨는 매일 도시락 싸요?”
화장실에서 만난 다른 팀 이모님이 내게 물었다.
- 아뇨. 반찬은 월요일에 한 번 가져오고, 밥만 챙겨요. 아침에는 자야 하니까 저녁에 챙겨놓고 자고요.
- 그래도. 그걸 어떻게 다 해?
- 이런 거까지 하나하나 엄마한테 해달라고 할 수 없으니까 챙기는 건 제가 해야죠. 여기서 설거지도 하고ㅎㅎ
도시락을 싸서 다닌 건 2년째인데. 그 시작은 탈이 심하게 났던 어느 날. 죽 외에는 먹을 음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때마침 친한 언니도 같은 이유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기에 서로에게 동지가 생긴 셈.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특별하지 않으면 언니와 내 손에는 언제나 도시락 가방이 들려있다.
그렇다고 식대가 안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매일 회사 카드로 일정 금액을 식대 명목으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되었었다. 어쨌든 매일 주어진 금액을 써야 하니 언니와 나는 그 돈으로 필요한 간식거리를 사거나 커피를 구매했었고. 그렇게 주어지던 식대는 얼마 전부터 회사 사정으로 급여에 일정 금액이 식대라는 명목으로 포함되어서 입금되었다.
그러다 보니 늘 사 먹던 다른 분들도 하나둘씩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고, 같이 근무하는 이모님들께서는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는지 궁금하셨는지 물으셨던 거다. 이모님들은 어떻게 드시는지 되물었을 땐 밖에서까지 집안일을 하는 기분이라 사 드시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그 마음도 아주 조금 알 거 같다.
함께 도시락을 먹는 친한 언니와 나는 식성이 비슷한데. 예를 들면 반찬에 고기가 없어도 된다는 것과 집이 아니기에 같은 반찬이어도 괜찮고 회사 냉장고에 오래 두고 먹을 것. 부담 너무 가지지 않을 것.
어쩌면 둘의 성향이 비슷하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반찬을 챙길 때 들었던 생각은 '우리 엄마 반찬이 언니 입에 안 맞으면 어쩌지?'였다. 다행히도 두 어머니의 솜씨가 비슷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말이다.
서로의 반찬을 맛있다고 하며 나눠 먹고, 어떤 날은 비슷한 반찬을 챙겨 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먹는 거 비슷하다며 웃어버렸다. 뚜껑 열었는데 둘 다 장조림, 멸치 볶음이었던 날이 있었다.
각자의 어머니들이 딸내미+딸내미 먹으라고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반찬들. 월요일 아침이면 그 반찬들로 책상은 자리가 부족하기 일쑤였다. 반찬들을 모아 놓고 보면 집에서도 먹기 힘든 10첩, 12첩 반상이 차려지곤 했다.
언젠가 마늘장아찌를 연신 맛있다며 잘 먹는 언니의 모습이 고마워 엄마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언니가 참 잘 먹더라고.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는대?"라고 전했을 뿐인데. 다음날 엄마는 언니네 집이 어디인지 가족이 몇 명인지 물으셨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나?
그 집집마다 있는 그 통 말이다. 투명한 유리 또는 플라스틱으로 된 사각형 또는 타원형 모양과 새빨간 뚜껑을 가진 그 통. 거기에 마늘장아찌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1차는 랩으로 2차는 비닐로 이중 삼중 포장한 걸 출근길에 쥐어줬다. 언니네 주라면서.
어차피 담그는 김에 더 담갔다고 보관 방법과 레시피도 알려주셨다.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전달하면 그쪽 어머니도 다 알아들으실 거라면서 말이다. (분명한 건 어머니들만의 언어가 있다. 어디서 배우시는 걸까? 언니네도 우리 엄마도. 하시는 말이 다 똑같...)
어쨌든 심부름은 잘했고 뭔가 더 가족이 된 거 같았다. 반찬을 나눠준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더군다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가족에게.
우리가 반찬을 나눠 먹을 때마다 더 맛있고, 사 먹는 밥보다 배부르게 느껴지고, 우리가 싫어하는 가지 반찬임에도 맛있게 느껴지는 건. 딸내미+딸내미에게 몸에 좋은 거 어떻게든 먹여보겠다고 무더운 여름에, 본인이 조금 고단한 날에도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은 어머니들의 사랑과 손맛이 아닐까? 너무 뻔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한 점 한 점 집어 입안에 넣고. 두 어머니의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을 방금 들은 것처럼 단 맛이 날 때까지 씹어 넘긴다. 그렇게 꼭꼭 씹어 넘기면 입을 통해 들어온 사랑이, 정성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물들어 가는 기분이다. 건강해지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고.
분명한 건 두 분의 김장 김치, 오이장아찌 등등 손맛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꼭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닮아가는 것처럼.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다른 두 어머니의 솜씨가 비슷해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나중에 혹시라도 두 분이 마주하시게 된다면 어떨지 괜히 상상해본다. 그냥 느낌에 아주 좋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