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의 MBTI는 유동적이다.
MBTI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거라 생각한다.
한국 소셜 미디어를 보면, MBTI검사를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MBTI이야기를 한다.
MBTI는 본인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내 주변사람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며 그들과 나의 궁합은 어떤지, 내가 알고 느끼는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언어화해서 보여준다. 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을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드는 공과 시간을 굉장히 효율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Tool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같은 MBTI라고 해서 완벽히 같은 성격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MBTI가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굉장한 밀접함을 느끼고, 서로의 공감대를 찾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친밀감을 느낀다. 반대로,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MBTI가 나와 궁합이 낮은 MBTI라면, 처음부터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을 거야’라는 프레임을 씌우게 된다.
나 자신도, 항상 ‘F’가 약 90%로 측정되는 완벽한 ‘F’ 인간으로서, ‘T’ 성향의 사람들의 사고 체계, 감정선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한국만큼 MBTI가 유행하지 않았기에, 나 혼자 속으로 ‘저 사람은 말을 왜 저렇게 냉철하게 하지.. 아, T겠구나’라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2~3개월에 한 번씩 MBTI를 재검사한 결과, 매번 다른 결과가 다오며, 가끔은 ‘T’가 나오기도 한다. 난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게 내가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것 중 하나인데, 내가 ‘T’ 일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 나의 일상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내가 누군가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이 있나?
상대의 감정선을 존중하기보단 현실적 조언을 한 적 있나?
내가 왜 'T'가 됐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마치 'T'가 나쁜 것처럼.
생각해 본 결과, 요즘의 나는 너무 감정적인 나에게 지쳐있는 상태였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오는 그런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나의 감정, 남의 감정을 공감하고 헤아릴 만큼의 심신의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평소 과도하게 나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가 한 한마디에 상대방이 상처받진 않았는지,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나의 'F'성향을 발휘하기 위한 감정의 Capacity가 Max에 다다른 것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방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기에, 불필요한 곳에 과도하게 감정을 쓰지 말고, 심플하게 살자라고, 무의식 중에 다짐하고 있던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회사 사람들 포함해, 사회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각자 사회적 '나'로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똑똑한 사회인은, 사회생활에서 필요 이상의 감정을 쓰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보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업무 환경에 필요한 정도의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사회성.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감정 Capacity에 과부하가 오지 않도록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Born to be 'T'의 성향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회에서의 나와 진짜의 내 모습의 갭을 느끼며 난 왜 이렇게 이중적이지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이중적인 게 아니라, 나의 감정에 과부하가 오지 않도록 무의식 중에 사회적 T가 되는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 아니더라도 속이 텅 빈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굉장히 재미있다며 해주는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재밌다고 느끼지 않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아도 된다. 출근할 땐, 가끔 나의 감정을 집에 재워두고 출근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주의 월요일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