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행복은 잘 보이는데, 내 행복은 눈앞에 두고도 지나치는 일상..
남의 행복은 너무 잘 보이는데, 내 행복을 찾을 때 만큼은 등잔 밑이 그렇게 어두울 수가 없다.
어느 주말 저녁,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동네 산책을 했다.
회사 근처 동네로 이사 온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안 가본 골목, 처음 보는 가게들이 많았다. 그렇게 잠시 휴대폰을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둔 채, 한참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편의점 안에서 정장을 입은 40대 여성이 조금 지쳐 보이는 걸음걸이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주말인데 정장을 입었네.. 힘들겠다.. 무슨 일 하시는 분일까’라고 내가 그 여성의 직업을 추리하기 시작한 때, 그녀가 어딘가를 보고 활짝 웃으며 허리를 굽히고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여성의 시선이 머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편한 반바지 복장으로 강아지 산책을 하고 있는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너무 아름다운 미소로 여성이 길을 건너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지쳐 보였던 기색은 온 데 간 데 없이 만개한 벚꽃 같은 미소로 강아지를 반기며 자세를 낮춘 채 뛰어오는 여성, 여성을 보고 신나 흥분한 강아지, 여성과 강아지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중 나온 남성.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행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사람, 간혹 인사 나누는 이웃, 회사 동료, 주변 친구들, 자주 못 만나지만 인스타로 소식을 접하고 있는 지인들… 그들의 행복은 너무 잘 보인다.
가끔은 지나치게 잘 보인다. 심지어 나에게는 그들의 행복만이 보인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그날 밤의 산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있었음에도, 마중 나와준 강아지와 남편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매일에도 수없이 많은 행복이 있지 않았을까.
최근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계획을 세우고 만난 건 아니었다. “날씨도 좋은데 드라이브나 갈까”라는 말에 대충 렌트카를 예약해 무작정 ‘후지산 보고 힐링하기‘라는 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지산 근처가 본가인 친구 추천으로 도착한 공원은, 탁 트인 잔디밭에 사람 한 명 없었으며, 정면에는 후지산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있었다. 후지산 뷰 호텔 전체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100엔 샵에서 사 온 배드민턴을 치고, 맨 발로 진디밭을 뛰어다니고, 누워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19살에 만나 벌써 25살이 된 대학친구들과의 수다의 샘은 마를 줄 모른다.
그렇게 하루 종일 5만 원도 안 쓴 그 하루가, 놀라울 정도로 행복했다.
‘맞아, 돈을 안 쓰고도 행복할 수 있었지..’.
최근까지 내가 굳게 믿던 신념 중 하나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없을 때의 불행을 돈으로 해결해 전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혹은 플러스알파의 행복에 돈이 요구된다면 그 또한 돈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님을 최근에 배웠다.
아니, 한동안 잊고 있던 아주 순수한 행복의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의 동심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인생을 살며 쌓아온 인간관계, 작은 것에 감사함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나의 힘으로밖에 얻지 못하는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