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축소판, 순례길에 서다.
[Prologue]
반드시 읽혀야 할 책들은
내 안에 수없이 반복되었던 글귀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문구를 읽기 위해서 우리는 명상, 여행, 홀로 있음 등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다.
때론 가장 가까운 길은 가장 먼 길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예로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르는 그 길
그 글귀들을 읽기 위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멀지도 모를
그 하나(산티아고)를 걷기로 했다.
시작은 그러했다.
2012년부터 유일하게 어딘가로 간다면 이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시작부터 내 짐이 가벼워야 함을 알았다.
나는 평소에도 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도 걸음, 걸음이 무게로 인해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삶에서도 나는 소유로부터의 안정감보다 가벼운 발걸음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했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느끼기 위해
어쩌면 가벼운 짐, 마음은 필수다.
또한 비워야 새로운 것들로 채워진다.
삶에서 이미 느꼈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쉬운 깨달음이었다.
항공권을 예매할 때, 파리 IN 바르셀로나 OUT으로 택했다.
이전의 파리는 내게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파리에서 보는 노을은 그 날따라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행의 시작을 파리에서 한다는 것
가본 곳을 다시 가보는 것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대도시를 다녀간다는 것
내게 큰 의미를 두기에는 부족했다.
그저 후회를 덜 남기고자 적당한 날짜와 계획으로
이 시간들을 채우려 했다.
파리는 내게 그랬다.
건물들 위를 보았을 때, 단칸방에 채색된 그 옅은 파란색처럼
어딘가 모르게 밝았으나 쓸쓸해 보였다.
아니면 그저 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비친 색들을 통해 나를 보고, 나는 그제야
떠나오며 느꼈던 내 감정과 생각들이 어땠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 고양이가 있었다.
늘 집안에서만 게을리 있던 고양이는 내가 숙소로 돌아오면 내방으로 따라와
창 밖 세상을 구경하곤 했다.
나 또한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떠나왔다.
세상이 궁금한 고양이처럼 -
생쟝에 들어섰을 때, 나는 설레는 마음의 초보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실상은 설레고 기대로 부풀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한 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이 길에 있어서 마주할 다양한 질문과
고된 경험들에 대해서 대체로 준비된 사람처럼 스스로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나는 이 길에서 처음이었고, 위에서 내가 생각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던, 되고 싶었던 것은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길에서의 실수와 미숙함 또한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첫 순례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과정 혹은 질문이다.
삶 또한 그렇다. 미숙해 보이지 않기 위해 두려움과 실수를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과 걱정에 소비했어야 했을까?
낯선 장소에서 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간접 체험
그리고 나도 잘 모르는 나와의 마주함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거울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여러 거울에 비친 -
어떤 사람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는 저런 사람이다.
결국 내가 생각한 관념적인 나는
존재하지 않거나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과정과 마주한다.
다양한 삶, 사람 그리고 모든 과정은
이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비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걷기도 했다.
하루 얼마나 많이 가느냐보다
언제 멈출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탈리아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내게 말했다.
하루 40km를 가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딛는 그 한 발, 한 발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사실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감동받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닌지
내게 질문했다.
오늘도 자신은 물론 더 많이 갈 수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멋진 도시를 만났을 때
멈추고 그때를 즐긴다고 했다.
나는 감사했다.
오늘 이 사람을 여기서 만날 수 있어서
' 순례길, 그곳의 목적지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삶의 여정에서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간다.
아직까지 누구도 이외에 다른 목적지는 없었다.
그 목적지는 바로 ‘죽음’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간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 하루하루 이 순례길의 여정을 걷듯
사람들 또한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 하루하루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면, 처음과 끝이 같다면 온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처음과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순간, 순간이며 지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일 것이다.
그래서 걷는 도중에 나의 순례길의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아니고 지금 이 한 걸음에 있었다.
그 이후에 내 삶의 목적지는 지금 내쉬는 한 호흡, 한 걸음에 두었다.
빨리 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의 속도와 나의 시선으로 지금 이 순간을 담아내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만족감만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