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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3. 2020

[아침요리] 사골떡만둣국


글·사진 문은정      





2019년의 마지막 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묵은해를 추억하고 새해를 맞이한다. 나는 촛불이 호롱호롱 일렁이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앉아 스테이크를 석석 썰며 부르고뉴 와인을 한 병…은 무슨. 집에서 만두를 빚고 있었다. 만두를 빚는 것. 그것은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날은 만두도 빚고 곰탕도 끓이는 거야!” 주변 지인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술을 마시다 갑자기 울컥해져서는, 그들과 함께 무척이나 따듯한 방식으로 연말을 보내야겠다며 외쳤던 것이었다. 어떤 의식의 흐름에서 나온 결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행위는 왜인지 기억 속에서 따듯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나 보다. 술주정뱅이의 즉흥적인 외침은 예상 외로 착착 진행되었고, 결국 우리는 31일에 다함께 모여 만두를 빚게 되었다. 사방팔방 밀가루가 흩뿌려져 있는 현장에 둘러 앉아 재즈를 들으며 말이다. 


만두라는 게 딱히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그것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것은 꽤나 새삼스러웠다. 만두를 빚으려면 뭘 해야 하지? 그래, 레시피. 일단 레시피부터 먼저 찾아야겠다. 요리책이며 블로그며 유튜브 같은 콘텐츠를 잔뜩 뒤져보다가, 이른 아침부터 식재료를 사러 나섰다. 장은 동네에 있는 인왕시장에서 보기로 했다. 마트에 가면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한번에 해결되는 게 싫었다.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캐묻고 채소나 고기 따위를 고르며 흥정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육점에서는 만두소에 넣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적당히 갈아 오고(소고기를 넣으면 담백한 맛이 살아난다), 채소 가게를 돌아다니며 숙주나 부추, 버섯 같은 것도 샀다. 떡집에 가서 갓 뽑은 가래떡도 사 왔다.(슈퍼에서 파는 시판용 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시도해보시길)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밤새 핏물을 뺀 한우 잡뼈와 우족을 뽀독뽀독 씻어 곰탕 솥에 넣었다. 금세 끓어오르기 시작한 곰탕의 수증기는 어느새 집 안을 따듯하게 퍼져 나갔다. 내가 곰탕을 끓이다니. 마치 진짜 어른이 된 듯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장장 열두 시간을 끓이며 세 번째 냄비쯤 사골을 우렸을 때, 거기엔 무척이나 담백하고도 뽀얀 국물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혀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놓으니 1년 먹거리를 마련한 듯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지막 냄비가 끓을 때쯤 만두를 빚을 준비도 시작했다. 각종 재료를 찹찹 썰어 손맛을 가미하며 버무려주고, 마지막으로는 지난가을에 담근 어머니표 김장 김치를 투하했다. 그러고는 지인들과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만두피를 올리고 만두소를 적당히 안착시킨 뒤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빚는다. 그럴싸한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삐져나오는 경박한 탄성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무척이나 성스럽고도 경건한 작업이었다. 우리는 만두를 빚는 모든 행위에 집중하며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만든 만두와 사골곰탕은 2020년의 첫 아침 식사인 사골떡만둣국이 되었다. 그렇게 든든하게 챙겨 먹으며 본격적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사골떡만둣국


재료(2인분)

사골국물 500ml, 달걀 2개, 참치액젓·국간장·마늘·대파 1큰술씩, 떡 3줌, 만두 8알,김 적당량 


만들기

1 - 사골국물에 분량의 물을 넣어 농도를 맞춘 뒤 한소끔 끓인다. 

2 -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로 나눠 얇게 지단을 부친다. 

3 - 1에 참치액젓과 국간장, 마늘로 간을 한 뒤, 만두와 떡을 넣어 끓인다. 

4 - 3을 그릇에 담은 뒤 달걀지단과 대파, 김을 올려 완성한다. 

Tip 떡집에서 사 온 말랑한 떡은 쉽게 불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에서 넣는 것이 좋다. 시판용 냉장 떡을 사용한다면 미지근한 물에 불려 사용한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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