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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호 Aug 20. 2017

두번의 안녕

유럽생활의 시작

이곳 시간은 10시 40분 그렇게 늦지는 않은 밤이다. 모든 일은 꽤나 공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난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곳에 오기 전까지도 나는 꽤나 불안에 빠져있었다. 맘의 반은 어떻게든 되겠지, 반은 "그래서 그 상황에 닥쳤을 땐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생각으로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내가 사는 곳과의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내 몸의 삼분지 일 정도 되는 무게의 짐과 함께 한 12시간은 꽤나 힘들었다. 짦은 경유 시간 때문에 불안감이 또 도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숙소와 연락이 되어서,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였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다음 비행기도 연착되었고, 예상 출발시간을 1분 남겨두고 경유 대기장소에서 20분간을 기다렸다.



도착한 도시의 첫 인상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역과 매우 가까웠는데, 택시로 역까지 가는 동안 보이는 것이라곤 내가 상상한 유럽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흡사 예전 뉴욕 퀸즈 지역이랑 비슷했는데, 보다 후졌으면 후졌지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분히 음산한 기운이 있었기에 몸은 더 움츠러들었고, 기숙사 매니저와 연락이 되기까지 잠시 동안 또 불안에 잠겼다.



다행히도, 그 날 나를 반겨준 기숙사 매니저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밝아보였고, 또 실제로 친절했다. 물론 이메일로 연락해오던 gebhard라는 매니저는 아니였지만 ( 메일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여기 매니저가 아니고 날 맞아줘야 하기 때문에 온거라서 자세히는 잘 모른다더라..


뭐 내부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조금만 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메일을 일찍 줬더라면, 내가 머물 집이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해서 에어비앤비로 부랴부랴 전 날 새벽에 방을 구하진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아 넋두리는 이정도 까지만 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오기 전에 그 많은 짐과 싸우기를 계속해서 반복했지만, 역시나 준비와의 싸움에서는 항상 패자에 속하기 마련이다. 난 꽤나 혼자사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걸음마떼는 자세로 배워야했다. 그리고 배워야 할꺼다. 난생 처음보는 것들 (이를테면 새로운 도전, 어려움일것이다) 과의 싸움에서는, 내 맘속에서는 적어도 한 번쯤은 이겨보리라 다짐했다.

이케아 한 번 가는데 왜 이렇게 비장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다 새로운거 아닌가. 잔뜩 쫄아서 사는 삶에 뭐가 더 있을꼬. 배가 고파서 점심으로 미트볼과 으깬감자를 먹었는데, 딱히 맛있음을 못느꼈다. 아 여기 이케아였지

스웨덴이 배출해낸 두번째 제국인 이케아.
그 곳이 꽤나 놀라워서 피곤했는지 아니면 싸구려 침구류와 생필품이 가득 담긴 파랑색 이케아 봉투속의 짐에 짓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케아는 날 압도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래도 사 온 침구류로 생각보다 넒은 내 방 침대 매트리스에 싸구려 침구류를 끼고나서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오스트리아는 교통시설이 매우 잘 되어있다 철도,버스,트램이면 어디든 간다. )


내가 사는 곳에는 딱히 동양인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많은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듣긴 했는데, 다양한 인종들이 보이긴 했지만 딱히 동양인이 보이진 않았다. 어딜가나 보이는 중국인도 언뜻언뜻 보인다. 아무튼 그런 곳에 홀로 걸어다니니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뭐 신기하겠지, 나도 너희들 신기하거든.


낯선 곳에서의 환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 곳 생활을 도와준다는 버디에게서 연락이 와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시내에 가게되면 자기에게 연락을 달란다. 시내가 정말 멋있으니 기대하라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나흘째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멋진 한 가지를 꼽자면, 사진찍기다.
길 가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폰을 들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또 멋진 낡은 것들, 오래된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강넘어로 여태껏 내 눈으로 보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는데. 햇빛이 강하게 쬐서 더 아름답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Mur강 다리에는 이뤄졌던 사랑의 증표들이 잔뜩 걸려져있었다. 안타깝지만, 저 중에는 끝내 마음을 같이 채울수 없었던 자물쇠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반쯤 빛을 환하게 받는 모습에 넋을 잃고 허겁지겁 아이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끝내 사진기를 사지 않았던 나를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질타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이런 놀라움을 보는 재미속에서는 금방 잊혀지기 마련이다. 도시는 내가 보지 못한 새로움을 품고 있었다. 몇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새로움이였다.


그런식으로, 나는 '그라츠'라는 도시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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