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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점퍼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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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신 고정욱 작가님의 신작인 점퍼다.

오랜만에 보는 거장의 품격있는 필력에 여운을 담아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근데 리뷰를 하기에 앞서서, 사실 이번 작품은 관련 리뷰나 감상을 쓰는 것이 좀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워낙에 독보적이신 작가님이시다 보니 작품에 나같은 지망생이 말을 담아도 되나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는데, 워낙에 본인만의 세계와 기반이 탄탄하신 거장 작가님이시다 보니

어떤 의미로는 기존에 많이 보았던 작가님의 기성작의 색이 강하지 않을까 싶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거장에게는 그들만이 가지는 고유의 색이 있고, 그것이 진짜 풍미라 생각하니깐.

하지만 리뷰를 쓰고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 느낌은 뭔가를 덧칠하기에 많이

조심스러워지고 괜히 숙연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예 읽지 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뒤집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아들의 추천이었다.

예전에 판데믹 시기에 고정욱 작가님의 삼국지 온라인 강의를 듣고 빠져서, 자칭 제자라고 칭하는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어보더니 너무 재밌다는 평을 한 것이다.


좀 의외였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기는 해도, 지루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못하는 애가 그런 말을?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고, 읽어보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작가님이 가진 본연의 색을 덜어내고, 초심에 가까운 느낌으로 신선하게 쓴 글이었다.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의 거장 지휘자가 난데없이 독립 락밴드에서 드럼을 맡은 느낌?

그 정도로 고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신인 같은 마음으로 쓰셨다는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와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뭔가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거장께서

어떻게 이런 초심에 가까운, 기존 작품에 볼 수 없던 신선하고 흥미롭고 새로운 느낌의 필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역시 거장은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그에 용기를 얻어 리뷰에도 도전해보게 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 소년 박창식의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창식이는 아빠의 내부고발로 인한 몰락과 이혼으로 고통받고, 궁핍한 현실을 원망하는 아이다.

그래서 어느날 아빠와 크게 다투고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다가 시간여행에 내던져진다.


도착한 곳은 일제강점기,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오산중학교의 전신이었던 정주의 오산학교였다.

거기서 창식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또다른 창식이가 되어 눈을 뜬다.


의아해할 겨를도 없이 자신을 깨우는 것은 우리 국문학의 전설 김소월. 거기에 학교 선배는 백석과 이중섭...

와우! 문인들과 예술인들이라면 천국으로 생각할 그 시절 오산학교 학생으로 살아가게 된다.


당연히 과거의 삶이 편하지는 않지만, 어쩔수 없이 적응하게 되고, 거기서 포기하고 있던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열망을 다시 찾고,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도 생긴다. 그리고 문화제를 준비하며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시대는 일제 강점기의 시대고, 갑작스럽게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의열단과 관련된 일로

고문치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예술의 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조하던 창식이와는 달리

그 시대를 살아간 학생들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을 선택하고, 그래서 만세 운동이 벌어진다.


그 시간 속에서 창식이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동시에 목격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없던 시간 동안 이 시대를 대신 살았던 또다른 박창식의 발자취를 보게 된다.


내용은 이런 전개이다. 아마도 여기까지 본 사람들이라면 좀 인상을 찡그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다소 진부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테니깐.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원로 작가님이 쓰실 법한 우리 전 세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으니깐.

그런데, 거기서 반전이 있다. 확실히 내용의 배경은 우리 전 시대에 나올 법한 독립운동에 대한 의미와

나라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기는 교훈적인 내용이지만,


그걸 풀어가는 과정은 결코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요즘 트렌드의 신선하고 발랄한 느낌이다.

아마도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백석이 얼마나 미남이었는지.

그리고 윤동주가 축구 매니아였다는 것도. 김소월이 얼마나 수려한 문학 소년이었는지도.


그렇다. 이제는 위인으로 모셔지는 그분들도 그 시절 청춘이 있었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울

청춘의 시기를 세상을 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낭만적인 시간을 구가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오산학교는 그런 느낌을 제대로 살렸다는 점에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작품 속에서 창식이는 교과서에서 나오는 위대한 문인들과 화가들과 같이 피크닉을 가고

근처 여학교와 미팅을 하고, 정주의 여러 학교들이 연합으로 진행하는 문화제를 기획하는 시간을 보낸다.


너무나도 젋고 순수한 그 시대의 전설들이 보여주는 청춘의 풋풋함에 읽으면서 전율이 느껴진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할 수가 있을까? 그저 위인이고, 낡은 초상화로만 보던 먼 인물들이라 생각한

그분들과 같이 어께동무하고 울고 웃고 떠드는 시간여행이라니. 여기서 일단 명작 인정이다.


거기에 그런 위인들과 보내는 행복한 청춘의 시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그 시대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잊어서는 안되는 정신도 명확하게 담고 있다.


지금 시대에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 다들 일단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말을 바꿔 볼까? 지난달에 있었던 비상식적인 일에 대해 납득할 수 있냐고 하면

소수의 광신도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거창한 국가와 민족 같은 개념이 아닌, 우리 각각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엄과 인본에 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결코 납득해서도 안되고 수용되서도 안된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는 그 시대를 살았던 중학생 아이의 시선으로 담고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창식이의 시간여행은 안타까움도 동시에 남는다. 본인도 알고 있다.


언젠가 자신이 자기가 살던 시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같이 있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도 알지만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무력함에 힘들어하면서도 더 서러운 것은 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그들이 존재했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던 것들, 그리고 작중에서는 정말로 그 시대의 창식이가 와서

이 시대의 창식이에게 직접적으로 해준 것들, 그 시간의 자취가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이다.


거기서 이 작품은 깨닭음을 던져준다. 그건 바로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그 시절 그때를 살았던 우리의 선배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 무거운 교훈을 이 작품은 묵묵하게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오랜만에 유쾌한 그 시절의 청춘들의 이야기와 동시에 무거운 화두를 너무나 눈높이에 맞게

조절하여 던져준 작품을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 우리 아이가 이 작품을 보고 명작이라 칭하는지도 알았고.


아직 부당한 것이 사라지지 않고, 모두가 노력하고는 있지만 양심있는 소수는

핍박받고 부조리한 자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받은 시대를

좀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남겨줄 수 있을까? 큰 화두를 고민하며 이 작품의 리뷰를 마친다.




P.S 1 오랜만에 본 거장 작가님의 작품인데... 솔직한 말 한마디만 하고 싶다. 표지가 왜 저런...

아무리 봐도 뭔가 AI가 그린 느낌인데? 작중 등장한 이중섭 화백 풍으로 저런 그림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필이면 동 시기에 본 달리는 강하다랑 표지 구도도 비슷해서 뭔가 기분이 묘한 느낌이었다.



P.S 2 첫사랑의 이야기가 참 안타까웠다. 그러면 안되지만 혹시나 말순이는 이 시대에서 다시 재회하는

변칙이 나오면 안되나 마음을 조렸는데... 뭔가 작가님 사람 마음 타게 하는 법도 선수신듯

아마 읽어보면 그들의 이야기에 다들 눈씨울이 불거지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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