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을 가진 아이
오늘 소개할 작품 마지막 책을 가진 아이는 틴스토리킹 2회 수상작 황금열광으로 먼저 접했던
하은경 작가님의 2018년도 작품이다.
동화의 형식을 빌려서 지금 시대에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다시 한번 부활시킨
여운을 느끼면서 이 작품을 리뷰해보고자 한다.
작품의 배경은 조금 미래의 시간이다.
주인공 소년 시오는 우연히 길에서 떨어진 물건을 발견하고 그것을 열어보고 경악하게 된다.
그 물건의 정체는 바로 책. 부카 바이러스로 인해 금지된 물건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질겁하며 그걸 버리려고 하였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친구 주나 덕분에 얼떨결에
그 책을 가지고 온 시오. 그리고 호기심에 읽어본 그 동화에 시오는 매료되어 버리고 만다.
책이 금지된 시대에 이야기 로봇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눈앞에 던져진 책의 이야기와 느낌과 상상 속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오의 책읽기는 책을 찾아 파괴하는 북킬러들에 의해 위기를 맞는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책, 시오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찾아 학교까지 온 북킬러들은
시오를 압박하고, 친구 주나의 도움으로 한번 위기를 넘기지만, 북킬러들의 위협은 계속된다.
과연 시오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책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책이 없는 끔찍한 세상에서 시오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내용 소개를 읽어보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겠지만, 독서가라면 딱 보는 순간 서두에서 언급했던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떠올릴 것이다. 책이 사라진 세상.
그 끔찍하고도 두려운 시대를 그린 걸작을 이 작품에서는 어린이의 눈으로 다시 부활시켰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다. 화씨 451의 출간이 1953년이다.
무려 65년이란 시간의 갭을 두고 등장한 같은 소재의 작품이 지금도 같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들의 자성이 여전히 부족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미 그 시대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TV에 의한 인류의 감성이 결핍되는 것을 우려하였고
그 디스토피아를 다룬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더 나빠진 느낌이다.
한때 두려움의 존재로 여겨졌던 TV를 그저 송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에게 책을 놓게 만드는 미디어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이제는 성공한 자들이 오히려 비웃는 세상이다. 아직도 책, 그것도 교양서를 읽냐고?
릴스나 숏폼을 보라고. 시간 아깝다고. 그리고 책을 권하는 이는 뭔가 수상쩍은 마케터들 뿐이다.
타이틀에 국룰처럼 '초'를 붙이고 하루아침에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비법이 적혔다는 책들...
그런 사람을 진빠지게 만드는 와중에 이제는 교양서마저도 끔찍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자기 계발서의 영역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그 근거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인문학을 들먹이는 수준 낮은 책들.
지금의 시대에서 책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더 모독받을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그래서 이 동화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6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서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 심각해진 시대를 걱정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질문을 해보게 된다. 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할까?
혹자들이 말하는 숏폼이나 릴스나 라방보다 시간도 오래걸리고 재미도 없는데?
그 답이 이 책에 간단히 나와있다. 그건 바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책을 대체하는 이야기 로봇들이 들려주는 검열적이고 의도된 내용이 아닌,
근원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파생하며 넓혀나가고 사고하고 사유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그래서 책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 도구가 아닌 생각을 하기 위한 철학의 틀이며
인간은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하고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확고한 명제가 저학년 동화인 이 책에서 너무도 간단히 설명되고 있다.
사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다. 상상하는 것.
그건 이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던 유발 하라리의 멈출 수 없는 우리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기에 동물과 다른 길을 걷고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자연 현상에서 신을 상상한 인간은 종교를 만들었고, 부상당한 자가 회복하면 은혜를 갚으리란 상상이
협력과 공동체를 만들었다. 위험한 불을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기술과 문명을 만들었고, 소망을 벽에 끄적이는 무의미한 상상이 예술과 문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다. 인간이 동물이 아닌 지성체로서 문명을 건설하게 된 것은 바로 상상하는 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만들어내는 무한한 원천이 바로 책이라는 인류 최고의 보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결말에서 시오가 써내려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마치 그 모습은 문명이 없는 이야기 로봇에 종속된 유인원들 틈에서,
최초의 인류가 기록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와 메시지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보면 단순한 저학년 동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저학년 동화마저도 최근에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에 언급한 불쏘시개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많이 걱정스럽고 우려가 된다.
편향된 정보로 가득찬 미디어에 중독된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는지 다들 똑똑히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의미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65년 전 지금의 시대를 디스토피아로 정의한
선구자의 우려가 여전히 유효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나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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