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쫓아오는 밤
지난번 리뷰에서 소개했던 소초모를 본 이후, 작품이 등단했던 영어덜트 시리즈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연속으로 시리즈 공모전에서 수상한 두편의 작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작품은 최정원 작가님의 서스펜스 스릴러 명작, 폭풍이 쫓아오는 밤이다.
간만에 느껴보는 절제된 감각의 건조한 액션 걸작을 한번 제대로 느껴보길 바라면서.
일단 내용은 주인공 이서가 가족여행으로 외딴 산속의 캠핑장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이서는 뭔가 트라우마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아빠와 열살 터울나는 여동생을 둔 소녀.
아빠는 무리하게 일에 시달리고 건강이 안좋은 상황에서 가족 여행을 나섰고,
이서는 그런 아빠의 행동이 마뜩치는 않지만 말없이 따라준다.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은 수하. 수하는 엄마 성화에 교회 수련회에 같이 따라온 소년이다.
굴러다니는 낡은 축구공을 보면서 뭔가 미련을 보이는 듯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저 잠자코 공을
툭툭 차다가 우연히 산에서 러닝하는 이서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고, 위협은 아무런 경고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어두운 밤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것은 갑작스럽게 캠핑장을 덮쳐서, 이서의 옆 팬션에 난입해
거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고 잡아먹어 버린다.
경악하는 이서와 이서의 동생 이지. 이서는 이지를 단단히 엎고 도주하면서
조금 전에 전화가 끊겨서 캠핑장 사무실로 찾아간 아빠를 떠올리고 경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 마찬가지로 전화가 끊겨 사무실로 향하던 수하는 길에서 우연히
흡입기를 주워들게 되고, 피다 묻은 그것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닭는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직원과 마침 들이닥친 이서와 조우하는 수하.
그리고 그제서야 이서의 증언을 통해 난입한 괴물의 존재와 모두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라진 아빠를 찾아나서고, 남겨진 사람들을 피신시키려 한다.
하지만 괴물은 놀라울 정도로 영리하고 집요하며 파괴적으로 캠핑장의 사람들을 추격하고
그 추격을 피해 이서와 수하는 두려움 속에서 성장하며 그것을 막을 방법을 찾는다.
과연 두 사람은 그 괴물에게서 무사히 도망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고,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트라우마를 가진 소녀와 소년의 사투 속에 하룻밤 동안의 치열한 생존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일단 내용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보면서 참 다양한 감상이 많이 든 작품이었다.
그리 길지 않고 작중 시간으로도 상당히 짧은 몇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이 정도로 치밀하고 몰입감이 있다니.
고른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감상을 시작해 본다.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이, 좀 뜬금없지만 의외로 책으로 보기 지루한 장르가 액션이다.
의외라고 생각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액션은 말 그대로 동작의 예술이고,
그래서 영상에서는 너무나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걸 텍스트로 구현하게 되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독자의 상상력이 출중하다면, 어설픈 묘사로도 희대의 명작이 탄생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필력이 좋아도 뭔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책으로 접하는 액션은 아무리 노력해야 본전이라는 느낌인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조금은 고쳐먹게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사건 그 자체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추격해오고, 그것을 피해 달아나고 필사적으로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사건 그 자체.
그것이 한권 내리 쉴새없이 이어지는 것이 이 작품이다.
언급한 액션의 텍스트화가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식상해질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건 그 자체가 너무나 긴박하고 스릴감이 있으며, 그 상황을 묘사하는 액션 자체가
결코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바로 작품이 가지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감탄스러웠다. 쉽게 구현하기 힘든 그런 장면장면들을 어쩜 이렇게 생생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게 묘사할 수 있을까? 마치 출중한 영화감독이 그린 미쟝센 크로키를 넘겨보면서
책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드는 전개였다.
덕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의 정체와 거기서 쉴새없이 이어지는 사건은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긴장감을 놓지 않은채 그 끝까지 볼 수 밖에 없었다.
와우. 우리 나라 작가님들 중에 근래에 이 정도로 액션을 몰입감있게 그렸던 분이 있었던가?
생각치도 못한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액션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기는 했다.
뭐랄까나... 인물들의 서사가 조금 아쉬움이 있다고 할까?
사실 부족하거나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혼 가정의 고민과 자신의 과실로 인해 가정의
평화가 깨어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이서나
폭력적인 부친으로 인해 두려움과 회피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고, 그 존재와 닮기를 거부하던 수하가
위기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서사는 확실히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게 참 안타까운 것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은 괴물의 추격이라는 당면한
위기의 긴박감과 그 무시무시한 무소불위의 폭력에 가려져서 맞서 싸울 이유는 될지언정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다소 바래졌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괴물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약간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이 있었다.
확실히 공포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괴물이 소통이 되거나 너무 많은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금기다.
하지만, 이 정도의 괴물이라면 괴물 스스로가 가지는 서사나 폭력의 이유가 존재했다면
좀더 그 스릴러에 입체적인 느낌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생각했던, 혹시 이 존재가 사실은 괴물이 아닌 인간이 아닐까 하는
그런 가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해소할 힌트를 던져주었다면? 그래서 그것이 어느 정도 그럴싸해졌을 때,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전개가 있었다면 사족이 아닌 금상첨화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더랬다.
거기에 의외로 서사가 너무 디테일했던 것은 일종의 빌런이라고 할 박사장일것이다.
아니, 이 분은 너무 전개가 과하지 않았나? 처절하게 진득하고 천박한 악역으로서 너무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그려내서 오히려 존재감이 이서나 수하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아무튼 그래서 조금 인물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소개한 소초모가 의외로 사건에 대해서는 좀 구멍들이 보이는 것에 비해서 인물들의
생동감은 넘쳐 흘렀던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정반대의 포지션에 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더 이상의 이어질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상태로 완벽하게 귀결이 되어버려서,
일필휘지의 깔끔함은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항상 재밌는 이야기에 더 넓은 세상을 기대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을 느꼈던 것도 어쩔 수 없었고.
아무튼 중구난방의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리뷰였지만, 굳이 결론을 정리해보자면
이 작품은 사건의 서사에 집중한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이고, 그런 차가운 격류 속에서 한줄기 스쳐가는
소년과 소녀의 저항의 희미한 온기처럼 느껴지는 찰라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올해 이 작품을 쓰셨던 최정원 작가님의 신작이 근래에 나왔는데,
이번에도 또 범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기발한 발상의 이야기를 쓰셨다고 하니 언젠가
그 책도 다시 접할 기회를 기대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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