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휴먼스 랜드
오늘 소개할 작품은 지난번에 폭풍이 쫓아오는 밤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영어덜트 공모전 당선작 시리즈로, 3회 대상 수상작인 노 휴먼스 랜드이다.
시리즈 당선작들이 다들 비범한 장르 문학의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완전히 달라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에 오늘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작품은 근 미래에 두번의 기후 재앙을 맞이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세상은 세계 대전에 준하는 엄청난 기후 재앙으로 문명이 붕괴하고 사람들이 생존을 연명하기 위해
기존에 살던 곳을 인간이 살지 않는 땅,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미아는 그런 기후 재앙으로 가족을 잃고 떠돌던 소녀.
그런데 의문스러운 인물 X의 제안을 받고, 유엔기후재난기구의 노휴먼스랜드 조사대의 일원으로 잠입해
이제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땅, 서울을 방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각자 개성도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인 조사단원들과 같이 도착한 서울에서 미아는
과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연구를 했던 과학자였던 할머니를 추억하며 임무에 임하는데,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주변의 습격, 그리고 의문의 거대한 하얀 새의 공격, 단원들과의 불화,
그리고 의심스러운 조사단 구성과 파견의 목적들... 그것들에 혼란스러워 하던 도중 결국 사고가 터진다.
단원 중에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단원들. 그 와중에 서로에 대한 의심을 커져가고
결국 조사를 중도에 포기하고 귀환하려는 찰라, 또 다른 단원이 괴물새에게 납치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미아를 비롯한 단원들은 귀환을 포기하고 단원을 구하러 가게 된다.
고생고생하면서 괴물새를 추격해간 곳에서, 단원들은 다시 한번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조우한다.
그건 유엔기후재난기구가 은밀하게 숨기고 있던 연구 시설이었고, 그곳에서 미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할머니의 지인이었다.
과연 유엔기후재난기구는 무슨 목적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고 미아를 불러낸 것일까?
그리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 계획의 실체는 무엇일까?
미아는 그런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상황 속에서 과연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뭐 대충 내용은 이런 느낌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느낀 감상과 소감에 대해서 리뷰해보도록 하자.
음... 유감스럽게도 기대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전해들었을때는 독창적인 소재를 배경으로 뭔가 머리 속에
여러가지 상상들이 겹치면서 다른 영어덜트 시리즈와 차별되는 특출난 대작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을 배경으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모험과 서사, 그리고 동료들과의 케미, 음모와 위기, 그리고 멋진 극복 과정까지...
생각보다 손쉽게 풀 수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나오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품은 조금 그런 기대한 방향과는 약간 목적지가 다른 느낌이다.
뭐랄까나, 당차고 잡초같은 주인공의 아폴랍스에서 살아남기 시리즈 보다는
할머니와의 연으로 이어진 관계의 번뇌와 뭔가 제 멋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수용이 주를 이루는 느낌?
사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너무 우연에 기대는 요소가 많다.
단원들 모두가 각각 꿍꿍이가 있는 상황이 왜 하필이면 이번 조사대에서 대환장파티로 터졌는지는
납득가는 원인보다는 우연찮게 그렇게 되었다는 느낌이고...
그래서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이유 없음?
난 작중에서 혹시나 단원 중에 한 사람이 미아를 좋아해서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로맨틱 요소는 칼 차단이더라.
덕분에 각 인물들의 개성이나 개인 서사들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만,
의외로 인물들간의 접점이나 호흡은 많이 부족하고,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나 동기도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인물의 매력이 주는 시너지를 반감시키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악당도 좀 애매하다는 느낌이 컸다. 식상할지라도 최소한 작품 초기에 미아의 회상에서
언급이 되거나 혹은 추억이 남은 존재로 등장해서, 그 인물이 등장했을 때의 개연성을 확보하고 그가 왜 그런
계획을 꾸몄는지에 대해서 서사를 부여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으니... 너무 밑도 끝도 없는 떼쟁이 할머니가 되어버렸다는 인식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위기의 해결에 대해서도 음... 이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그리고 이게 주인공의 역할이 있었던건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폭탄을 들고선 직접 투척으로 봉쇄? 어, 음... 좀 난감한데?
거기다 그 미션에 동행하는 동료는 현지에서 만나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조연?
거기에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그냥 돌아와도 되는 거였다고?
뭐 인구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거였으면 뭔가 너무 싱거운 결말이잖아.
내용을 너무 스포일러 하기가 뭐해서 모호하게 설명하다보니 리뷰를 보는 독자분들은
이게 뭔소린가 싶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역시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뭔가 다른 영어덜트 시리즈 작품들과는 다르게 아쉬움이 조금 남는 작품이었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거나 이 작품이 못볼 작품이거나 하다는 말은 아니다.
의외로 아포칼립스 세상을 배경으로 텅빈 서울의 황폐한 모습을 보는 느낌은 기존에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선한 재미와 두근거림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부서진 건물들을 뚫고 자란 식물들의 모습과 끊어진 다리 때문에 한강을 건너느라
오리배를 필사적으로 발로 저어가는 모습을 보면, 리얼리티 서울 아포칼립스의 풍경은 확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익숙한 지명과 섬세하게 잘 묘사된 배경이 멋진 플레이팅이라면,
그 위에 코스 요리가 정석적으로 나오기만 해도, 그 자체로 파인 다이닝의 품격에 맞는 작품이 되었을텐데.
뭔가 쉐프의 선호 식자재를 과하게 투입하고, 식순을 파격적으로 바꾸고,
이전에 맛보지 못한 식감을 내기 위해 도리어 익숙치 못한 느낌으로 조리한 코스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표지에 그려진 플론 꽃밭을 등지고 다리를 바라보는 풍경에서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자극되었는데...
그 기대보다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라 안타까움이 하릴없는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도움은 많이 된 것 같다. 개인적인 감상과 무관하게 소재와 배경이 매력적이고
그 세계를 걸어가는 모험은 항상 독자들을 두근거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번 나도 비슷한 느낌으로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거대하게 일원화된 구조물이 된 아파트 단지, 그곳에서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닥친 아포칼립스의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살아가는지 한번 써보고 싶다는 창작 의욕을 느끼게 했더랬다.
언젠가 글쓰기를 자랑스럽게 본업으로 삼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한번 도전해보리란 생각을 하며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던 이번 작품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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