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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월드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월드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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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평일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마블히어로즈 시리즈의 신작이었지만,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학원행으로 못가고

우리 부부만 호다닥 시간에 맞춰서 보고 왔다.

즐거운 평일 영화 데이트와 기대 이상으로 좋은 느낌이었던 작품의 여운을 느끼며 리뷰를 써본다.


어벤져스가 사라진 시대에 선대 캡틴 아메리카의 유지를 이어받아 고군분투하던 예전 팔콘, 차기 캡틴

샘은 새로운 대통령 당선 소식에 착찹한 모습을 보인다.

그 사람은 바로 선더볼트 로스, 헐크의 아치에너미이자 히어로 등록법 관련으로 어벤져스와 각을 세우던 인물이다


그리고 취임 몇달 후 캡틴은 미국 정부의 지시로 멕시코에서 진행되는 범죄조직의 거래 현장을 급습하고

그곳에서 도난당한 물품을 회수하고 합을 맞쳐온 사이드킥 토레스의 실전 경험도 거친다.


그러면서 토레스의 훈련을 위해 이제는 은퇴한 한국전쟁 당시의 캡틴이었던 이사야를 찾아가고

훈련 과정에서 지난번 미션의 보상으로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는다.

캡틴의 스승 격이던 이사야는 로스의 제안에 떨떠름해하지만, 캡틴은 그런 이사야를 달래서 오히려

같이 참석하기를 권하고 오랜 시간 정부에 고통받다가 이제야 영웅으로 대접받은 이사야의 기분도 좀 나아진다.


그리고 캡틴을 맞이한 로스는 예전에 히어로들과의 갈등에 대해서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오히려 해산된 어벤져스의 재소집을 권하는 등의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로스에게 좋은 감정으로 대하는 캡틴. 그런데 사고가 벌어진다.


지난번 미션에서 회수한 일본 정부의 아다만티움 반환 및 공동 관리 협정 설명 과정에서

갑자기 이사야와 파티 참석자들이 로스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체포된 이사야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각국의 공동 대응이 절실한 상황에서 벌어진 암살에

협정은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로스는 격노하며 진상 조사를 명한다.

캡틴이 나서려고 하지만 이사야의 지인인 캡틴의 조사는 금지되고, 대신 안보보좌관인 루스가 수사를

진행하면서 캡틴은 개인 자격으로 단독 수사에 임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이 단순한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아닌, 좀더 복잡하고 잔인하며

오래된 과거의 일들과 엮인 사고라는 것이 점점 밝혀진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과거를 반성하며 화해를 도모하려 했던 로스의 결심도 서서히 흔들린다.


과연 캡틴은 이 모든 진상을 밝혀내고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리고 로스는 이 조여들어오는 위기 속에서 과연 흔들리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웅들이 사라진 시대에 남겨진 사람들의 평화를 지키지 위한 필사적인 사투가 벌어진다.


음... 내용 요약은 이 정도로 하고,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우와, 요 근래 실망작들이 양산되던 마블 시리즈에서 이런 수작을 볼 수 있을줄이야?


사실, 2020년대를 관통했던 마블 시리즈는 그 자체가 전설로 불릴만하다.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서 그것을 거대한 시리즈로 시대를 초월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기록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대 영웅들의 은퇴 이후 요즘의 마블이 신통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다.

매력적인 인물들의 은퇴에 후계자들의 시원치 않음, 거기에 과도한 PC 논쟁까지...

그래도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역시나, 내용이 그다지 재미가 있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마블의 영웅들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단순히 강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세상을 구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각자가 가진 결함이나 고민, 갈등을 보통 사람과 동일하게 겪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능력을 가진 자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인 성장을 하는 영웅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그런 마블이 결정적으로 가진 매력을 끌어내는 영웅이 부재했다.

그냥 얻어걸린 힘을 과시하는 철부지와 딱히 보편적인 입장에서 큰 고민거리도 안되는 것에 집착하는

편집증적인 히어로들만 가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오래전 마블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제대로 살린

영웅들을 보여주는 작품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이번 작품이 마블 시리즈의 새로운 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들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그런 매력을 발휘하는 캐릭터가 의외로 주인공인 캡틴이 아닌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로스라는 점에서 더 감탄하게 되었다.


이 로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잠시 소개하자면, 예전 코믹스 시절부터 헐크의 아치 에너미로

전형적인 군인으로서 혼돈스러운 존재는 제압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매몰된 인물이다.

그래서 헐크의 여친인 베티에게도 의절당하고, 히어로들에게도 백안시되는 존재고.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여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모습을

탈피하여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그것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죄악을 숨기려 하는, 나약하지만 강인하기도 한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배우를 예전 레전드였던 해리슨 포드로 교체하였는지 궁금했는데, 내용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단순하지 않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시한부의 삶을 살면서도 과거의 과실을 필사적으로 후회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인간상을 묘사하려면 평범한 배우로서는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의 4번째 이야기지만, 의외로 작중에 비중은 로스가

절반 이상을 가져가고 있고, 그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미련과 망집을 이어가는 복잡한 서사가 진득하게

배여있다. 덕분에... 놀랍도록 수준이 뛰어오른 느낌이다.


솔직히 말이 쉽다. 과거의 과실을 인정하고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실제로 그걸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2024년은 너무나 많은 세상을 혼란으로

이끈 말종들의 시대였고,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면모는 바로 책임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문제를 바로 잡는 것 까지는 기대도 안한다.

최소한 자신의 위치에서 행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인정과 수긍, 그리고 사과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고 항변하거나 맘대로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거나

기자회견이나 SNS나 군중 선동을 통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오기를 부리고 있다.


그런 말종들의 시대를 현실에서 겪은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 나오는 로스라는 인물이 과거

악인이었을 지언정 얼마나 그것에 후회와 반성을 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는지 똑똑히 바라보면서

심정적인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막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내려놓은 자신을 다시 붙잡고 자신이 벌인 일을

제대로 속죄하며 책임을 다한 로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극중에 캡틴이 그랬듯이.


안타깝게도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망언을 숨쉬듯이 내뱉는 이들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무리를 모아 더 큰 혼란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그러고 보니 미국은 올해부터 시작이려나? 혹자는 이 영화를 그 사람에게 빗대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데,

내 생각에는 홈랜더라면 모를까 로스는 거기에 비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다.


아무튼, 오랜만에 큰 기대없이 본 과거의 레전드는 생각치도 못하게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힘을 가진 영웅이 아닌, 반성하고 성장하는 영웅들을 재배치하여

새롭게 우리 앞에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흡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떠들어대는 자들이 많은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캡틴아메리카 #마블히어로즈 #팔콘 #샘윌슨 #로스대통령 #해리슨포드 #화해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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