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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볼

탱탱볼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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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노인과 젊은이, 아니 아이가 같이 나와 사건을 해결하는 장르를 선호한다.


쇠퇴해가는 시간 속에서 세월의 관록으로 쌓인 지혜를 발휘하는 노인과

식견은 부족하지만 활기차고 몸이 먼저 뛰어나가는 깨방정 아이가 서로의 장점을 시너지로 만들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묘한 유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금 오래된 동네나 가게를 배경으로 어찌보면 시시할 정도로 따분한

일상 속의 사건들이 배경이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만담하듯이 수다를 떨며 벌어진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느긋한 전개라면 더 흥미를 유발하고.


어쩌면 처음으로 출간한 내 작품 구멍가게 CEO도 그런 나의 취향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내 작품의 경우에는 안락의자 탐정 역할을 해야 할 노인은 되려 흑막이고

주인공의 천방지축이 캐리하는 느낌이니 좀 느낌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설명하기 어려운 취향을 만족시켜줄 작품을 근래에 보지 못하다가

우연히 이번 작품에서 그런 취향 저격을 제대로 해주는 호감작을 만나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안튀면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함을 격하게 보여주는 탱탱볼, 이 작품을 오늘 한번 리뷰해보자.


작품은 향수맨션의 1층에 위치한 허름한 향수문방구에 전직 형사였던 영욱 할머니가

가게를 인수하고, 그 가게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된다.


타이틀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듯, 던져 넣은 탱탱볼을 찾으러 온 초딩 소녀 리라.

항상 깨방정인 이 아이에게 의문의 미행이 따라붙는다. 그 미행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리라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암호를 오랫동안 간직해온 중딩 소녀 하나.

묘하게 가족관계로 학교에서 이런저런 충돌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는 과연 마음을 다잡고

엄마가 남긴 암호를 풀어낼 수 있을까?


예전에 영욱에게 신세진 적이 있는 고딩 소년 동우. 아는 영욱을 찾아온 동우는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행동과 습관을 보이는 친구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과연 그 친구의 비밀은 무엇이고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한없이 느긋하고 일상적이기까지 한 낡은 맨션에 문방구에서 벌어지는

한 노인과 세 아이들이 벌이는 일상 속의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말 오랜만에 대만족인 작품이었다.

아니, 그저 취향 저격만으로도 감사한데, 어쩌다 이렇게 일상 미스터리를 수준 높게 전개하는

서사를 담은 이야기를 만나다니. 진짜 홍합따러 가서 진주 캔 기분이다.


작품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일상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리한 트릭이나 비현실적인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적은

설명만으로도 느껴지듯이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빠져들게 하는 미스터리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풍경이 회색인 것도 아니다. 일상 미스터리는 무조건 훈훈함이 풍겨야 한다는

내 맘대로 국룰을 알기라도 하시는 듯, 지극히 담담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가 스며든다.

꽈배기를 세번 꼬아서 먹는 것이 중대한 토론 사항인 이야기가 일상이 아니면 뭘까나.


더없이 그 누구나가 주변을 돌아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라니. 이걸 보고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왕년에 추리소설 좀 읽어봤다고 생각하는

탐정 매니아들에게는 설레임을 절로 만들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장, 주인공 영욱 할머니의 동우가 부르는 별명이 미스 마플이라고 하면 대충 감이 올까?


이 작품은 놀랍게도 클래식 추리 소설의 상상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이들에게

그 시절 익숙하고 그립던 사람과 사건들을 보여주며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외우고 다니던 탐정들만 세자리수에 각각에 해결했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트릭과 알리바이를 외우고 그랬고, 어느 탐정이 더 뛰어날지 상상 대결 벌이고...

정말로 그 시절의 추억을 절로 눈앞에 떠오르게 하는 마법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가님이 후기에 적었던 것처럼, 쉴새없이 탱탱볼처럼, 통통통 튀면서

우리를 향수에 빠뜨리기도 하고, 일상에 미소를 띄우게도 하고, 미스터리의 세계에 빠지게도 하고,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등을 심도있게 바라보게하며 폭풍같은 171 페이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서 읽은 독자에게 남는 것은, 유쾌함과 행복함이 가득한 벌판인 것 같다.

폭풍이 모든 것을 쓸어가서 군더더기는 사라지고, 온전한 즐거움만 남은 허허벌판.

거기서 구름마저 데려가서 더 없이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느 연령대건, 어느 부류에 속하던, 아무나 하나는 걸려서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잔뜩 나오는 이 재미 덩어리에게 오늘 한번 제대로 매료된 기분을 만끽하며

더 많은 분들에게도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그 시절 소년소녀 탐정을 꿈꿨던 어른이들이라면 더욱더 필수 추천이고.




#탱탱볼 #강이라 #문학동네 #동화 #청소년소설 #문방구 #고전추리소설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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