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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 스티커

네임 스티커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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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문학동네 14회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황보나 작가님의 네임 스티커이다.

뭔가 담담함의 색채를 오히려 개성으로 부각시킨 평범함의 가치를 음미하며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시작은 주인공 소녀 은서가 같은 반 남자애인 민구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딱히 접점이 없던 그냥 아는 남자 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민구, 그런데 갑자기 자기 집에 와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방문한 집에서 민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집에서 키우고 있던 화분을 보여주고, 거기에 붙은 이름이 적힌 네임 스티커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은 거기 적힌 이름의 상대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어이없는데, 민구는 그 능력을 은서를 위해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말에 은서는 고민하게 된다. 믿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같은 시기에 불행한 일을 겪은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서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깐.


그리고 그런 확신이 점점 들어서자, 은서는 자신이 이름을 적고 싶은 상대를 정한다.

그것도 두명을. 하나는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 혜주와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름을 적은 네임 스티커를 민구의 도움으로 붙인 은서.

하지만 그런 행동이 은서의 맘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사람들,

민구와 관련되서 만나게 된 사람들, 또 자신의 원망의 대상이 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은서의 생각은 복잡해지고, 삶의 방향은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은서는 과연 폭발하지는 않지만 내면에 침잠된 자신의 응어리를 담은

네임 스티커의 결과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능력을 주는 네임 스티커의 정체와

민구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극히 담담하지만 고요한 수면 아래 격동치는 듯한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과 갈증에 대한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내려간다.


내용 정리는 이 정도로 하고, 일단 처음 느낀 감상은 너무 담백하다는 것이었다.

은근 은서의 이미지를 데포르메한 느낌의 표지가 인상적이었을까?

책을 접하기 전에는 뭔가 이것보다는 심각하고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음, 담담하고 담백하다. 더 없이 우리 주변에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일상이다.

놀랍게도 청소년들의 트라우마로 작용할 충격적인 사고나 사건도 없는 그런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 고요하게 흐르기만 하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 은서가 표출하지 못하는 내면의 고민과 갈등은

그것을 관조하고 조력하는 민구의 의문스러운 행동과 어우러져 신기한 재미를 유발한다.


마치 식당에 비유한다면, 다른 작품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메인 메뉴에 올인한 프랜차이즈거나

아니면 전반적인 모든 것이 디테일하고 고급진 파인 다이닝이라면,

이 작품은 요즘은 드물어진 동네의 백반집, 그것도 고기 반찬도 별로 없는 그런 식당같은 느낌이다.

근데 맛있다. 담백하다는 맛을 이보다 더 제대로 구현한 맛집이 드물단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공모의 수상작인 체리새우나 독고솜은 이 작품에 비하면 판타지 스릴러란 장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다면 좀 감이 오려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 평온함 속에서 놀랄 정도로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들의

감성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까지 식상하지 않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왜 대상을 수상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참 오랜만에 책을 읽어본 후에 느껴본 산뜻한 감정이었다.

뭔가 독서라는 행위는 조용한 듯 하지만, 한 작가의 거대한 창작의 격정을 맛보고 나면, 내 안에서도 그와 같은

상상력과 감회의 폭풍이 이는 것이 일반적인 느낌이다. 특히나 마찬가지로 뭔가를 쓰는 입장에서는


하지만 이 작픔은 그러지 않았다. 보고 나서 표지에 그려진 은서처럼 입모양이 보이지 않게 담담한

표정으로 책을 덮었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치 우연히 기차 여행을 하다 들린 환승역에서, 눈앞에 벌어진 작은 촌극과 같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그 아이들이 마침내 이야기를 마치는 것을 보고 출발하는 기차를 탄 느낌이다.


3월이 되어도 기온만 높아졌을 뿐, 좋은 소식은 없어서 마치 봄이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

이 시간 속에서, 조금은 담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보고 공감하며

거기에 기운을 받고 싶은 담백한 맛집 매니아들이여.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집어라.


틀림없이 후회하지 않을 산뜻한 봄기운이 가득한 만찬이 그대의 마음에 주림을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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