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쓰레기통
오늘 소개할 작품은 지난번에 이어 개동이네놀이터 공모전 2회 수상작인 꿀꺽 쓰레기통이다.
오랜만에 읽어본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더없이 동화다운 작품의 이야기에 오늘 빠져보도록 하자.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태산이가 어느날 우연히 같은반 친구 상훈이가 떨어뜨린 돈을
주우면서 시작된다. 원래대로라면 돌려줘야 하지만 마침 사고 싶은 게임기가 간절했던 태산이는 상훈이의
풀죽은 모습을 외면하고 사실을 말하지 않고 돈을 가지고 와버린다.
하지만 태산이도 그걸 가지고 와서 마음이 폄하지는 못하다. 게임기를 사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그걸 몰래 가져왔다는 사실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한 일을 적어서 선생님한테 드릴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돌리고 그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 쓰레기통이 버린 종이를 꿀꺽먹어버린 것이다.
통안에 사라진 종이. 그리고 놀랍게도 그와 동시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양심의 가책마저도 사라진다.
언젠가 현장수업에서 만들어온 쓰레기통의 신비한 능력을 알게 된 태산이.
그리고 태산이는 그 쓰레기통의 기능을 활용해서 동생의 용돈을 몰래가져가는 등의 양심에 걸리는
일을 떨쳐버리는데 악용한다. 그러다 자기 친구 민율이가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게임기를 사서 학교에
가져오는데 그 게임기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난번 상훈이의 용돈 분실에 이어 게임기 분실에 반은 난리가 나는데, 태산이는 우연히 그 범인이
다름아닌 상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돈을 가져간 상훈이가 되려 자기에게 약점이 잡힌 상황.
태산이는 쓰레기통의 능력을 사용해서 양심없이 상훈이를 부려먹게 된다.
하지만 그런 태산이의 행동은 점점 주위에 아이들과 마찰과 의혹을 낳게 되고,
동시에 무한정 자신의 양심에 걸리는 일들을 먹어치워주리라 생각한 쓰레통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과연 태산이는 계속 양심에 걸리지 않은 행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른보다 오히려 더 바른 아이들은 자신 앞에 던져진 양심의 저울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뜨끔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 내용은 간략하게 소개했고,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더없이 동화라는 점이다.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정말로 동화에 가장 충실한 정석,
아니 모범 예시라고 불러줘도 과언이 아닐 더없이 동화다운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근래의 동화는 워낙에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다보니 동화 본연의 틀에서
어느 정도 변주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사회 문제를 연결하거나, 판타지의 접목을 시도한다던가,
성인이나 청소년 범주에 익숙할 이야기가 믹스되는 일도 나온다.
나쁜 현상은 아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단순히 맑기만 한 아이들이 아니고
오히려 더 지식과 이해가 충만한 아이들이니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런 변주가 이어지다 보면 종종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의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동화가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대전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초심을 간직하고 있다.
지나치지 않은 정도의 초현실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서
아이들의 양심이라는 그 나이대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할 고민과 갈등을 어른들의 선입견에
오염되지 않은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풀어나가고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유학의 근본이 오히려 사서삼경이 아닌 소학에 있다는 말처럼
동화의 근간은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정석적인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느낀 이 작품의 매력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에게 쉽게 간과되는 그것,
양심의 문제를 아이들의 눈을 통해 적나라하게 화두로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나였다면 당연히 원하는 물건이 바로 튀어나오는
쓰레기통으로 쉽게 설정했을 것 같은데? 근데 이 작품은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소중하면서도 아껴야 할 그것, 양심을 지운다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 태산이가 괴로워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거나 혹은 들킬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자신의 양심, 그것에 괴로워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양심이 있고,
그 보편적인 것들을 상실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쉽게 이야기하는 악인이 되고 만다.
물론 그것을 되돌릴수도 있지만, 한번 외면한 양심을 되돌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그래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은 점점 더 바른 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진리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잘못 그 자체가 아닌, 그 잘못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그 잘못이 연쇄적으로 연결될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역시나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라고 하지만, 읽어주는 부모가 오히려 마음 속에
뜨끔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당선의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실 개똥이네놀이터 뿐만 아니라 다른 공모전들을 봐도 그 당선작들은 나름 무게감이 실린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달떡연구소에서는 주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세계관이, 푸푸에게서는 자연 그대로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이것이 당선작이다라고 말하는 중후함이 배여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읽으면서 생각보다 가볍다는 사실에 의아했고,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처음 생각과 다르게 가볍지만 한없이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에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여전히 태산이처럼 자신의 양심을 어딘가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점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크든 작든 누구나 그런 양심을 내다버리는 일은 자주 선택하게 되는 옵션이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동시에 묻고 싶다. 스스로의 양심을 자신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서
어딘가 자신이 던져놓은 양심이 쳐박힌 쓰레기통을 찾을지 모르니 주의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