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율의 시선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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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책이 있다. 그저 일정한 패턴에 답습이라 생각한 조류에서, 생각치도 못하게 돌출된 파도같은 작품.

어쩌면 그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 달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치도 못하게 송곳처럼 튀어나와 손끝에 핏방울이 맺히는 것처럼 깊은 인상을

주고 가는 작품을 우연치 않게 오늘 만나게 되었다.


바로 17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율의 시선이었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없이 선풍기를 틀 생각도 못하게 만들며 빠져든 이 작품을 오늘 한번 리뷰해보려고 한다.


주인공 안율은 시선을 항상 아래로 향하는 아이다.

자신의 속마음은 감추고 남들에게 맞춰서 적당히 흐르는대로 흘러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하고.


항상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런 성격 때문에 상담도 받아봤지만 큰 의미는 없다.

그렇게 세상에 튀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살아가던 율에게 어느날 그럴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건 바로 우연히 밤길에 만난 소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도해와 그 아이가 들고 있던 고양이 시체였다.

익숙한 태도로 대할 겨를도 없이, 그 강렬한 인상에 압도된 율은 이도해에게 시선을 떼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학교에서 발견한 이도해는 뭔가 심상치 않은, 모두가 기피하는 소위 없는 아이였다.

항상 혼자 있으면서 말도 안되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해에게 안율은 더 관심이 가고,

그런 관심을 결국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율은 그의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뭔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도해. 하지만 그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안율은 묘하게 스며들어가고 그건 동시에 자신이 품고 있던 마음 속에 상처도 되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 그리고 아직도 이어지지만 회복되지 않는 상처의 후유증.

그것에 그저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봉합해온 율은 서서히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관계와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도 펼쳐진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저마다 나름의 고민과 상처, 그리고 극복하지 못한 아픔이 있는 삶...

그건 청소년들이 감당하기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할 수 없다.


그중에서 특히 가혹한 것은 이도해의 이야기다. 안율은 이제는 친구라고 여기게 된 이도해가 가진

내면의 상처를 알게 되고 그것은 너무도 참혹하게 세상에 드러난다.


지금처럼 작렬하는 여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푸르른 청춘의 계절이라 생각하는 시기에,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외면하던 율의 시선은 점차 땅바닥에서 올라와 타인의 눈을 마주치고 언젠가 하늘을 볼수 있을까?

시리면서도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 뜬금없는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보았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서 주인공의 이모는 어느 미술작품을 복원하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그 작품이 사실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주인공에게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고, 어쩌면 그건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청소년소설에도 현실이라는 제약 안에서 쓸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래서 익숙한 패턴의 고독과 외로움, 미숙한 교우관계에서 오는 갈등, 가정불화와 폭력 등의 외부 요인,

그것에 메마른 감정으로 대해가는 주인공이 극복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종의 클리셰가 되었다.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소설이란 작품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그게 맞고,

나 역시도 그쪽으로 집필을 한다면 그런 이야기 펼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니깐.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메마르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익숙하면서도

큰 감흥없이 단조로운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품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걸 읽는 내 마음이 달랐다. 그런 마음의 트리거를 당기는 것이 이 작품이었다.


어찌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내색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괜찮지 않다.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남들이 불편해 하니깐. 그리고 남들이 불편해 하면, 그건 사회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으니깐.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정서이면서도 당연하게 지키고 있는 교리에 가까운 명제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저런 먹먹한 합의에 이끌려 내색하지 못한다.

그래서 질식할 것 같은 마음을 숨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버텨야 한다.

그래야 괜찮은 사람이니깐. 요즘 내 삶의 느낌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율이처럼.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보편적일지도 모를 이야기에 나는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율이처럼 끝없는 자학과 스스로에게 강요된 무관심, 세상에 대한 비위 맞추기에 목이 졸려가는 기분을

나는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혹자는 이럴 것이다. 그냥 그날의 기분 탓이 아니냐고?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힘들고 괴로운 심정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딱 적절한 시기에 만났으니깐.


리뷰 처음에 언급했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이모처럼, 시간을 건너뛰어 세상을 연결해준 작품이

그토록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기에 만들어져서 두 시간을 이어간 기적을 만든 것처럼,

나에게도 이 작품은 그런 마음 속에 가라앉은 침잠된 마음과 갈곳없어진 시선을 비로소 들어올려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품이 근래에 읽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사람의 마음에, 아니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다.


쓰다보니 어느샌가 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감상보다는 묘하게 나와의 공감에 대한

이야기만 구구절절히 써버린 형편없는 리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어쩌면 율이와 도해가 겪은 일의 반푼어치도 겪어보지 못한 이로서 느끼는 엄살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그런 식으로라도 내 블로그에서 새겨놓고 싶다.

언젠가 나 역시도 그 시선을 땅바닥이 아닌 저 하늘을 향하는 날이 왔을 때,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 시린 마음을 안고 걸어가던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구를.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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