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우는 섬
내 기분처럼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기승을 부리는 중에 문득 여름철에 어울리는 책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딘가 휴가라도 다녀오고 싶지만, 쉽게 그럴수도 없는 처지고
그럴때면 제일 좋은 피서 방법은 역시 여름에 어울리는 으스스한 이야기를 보는 것이 최고다.
근데 간만에 그런 장르를 찾으려니 쉽게 찾기가 어려웠는데, 우연치 않게도 오늘 소개할 작품,
송시우 작가님의 작품인 대나무가 우는 섬을 발견하게 되었고, 간만에 시원한 독서를 만끽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서늘한 기분을 마구 만끽할 수 있는 본격 추리소설의 세계로 떠나보도록 하자.
내용은 전통 민담으로 시작한다. 어느 효자가 계모의 꾐에 빠져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 두 눈을 뽑아주는데 계모는 장님이 된 효자를 다른 곳에 내다버리고, 그래서 세상을 떠돌다
대나무가 많은 숲에 당도한 효자는 대나무 퉁소를 불어 자신의 심정을 알린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억울한 사정을 도와주고 못된 계모를 벌하려 하지만
효자는 계모를 용서하고 돌려받은 눈을 다시 넣자 앞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느 블로그에서 인용된 그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호죽도라는 섬에서는 눈이 아닌 혀가 나온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어 괴짜 물리학도 여대생 임하랑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하랑은 많은 추리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력이 있는 여대생 탐정. 그런 그녀에게 호죽도에 한 연수원에서
여기서 벌어질 이벤트 형식의 사건을 검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으로 오게 된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는데, 같이 초대받은 일행 중에는 위에 블로그를 작성한 민담 블로거,
가수, 웹툰작가, 영화사PD, 역사소설가, 범죄전문기자, 택시기사 등의 공통점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렇게 방문한 태풍으로 연신 비가 쏟아지는 연수원에서 그들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날 아침 경악하게 된다. 그들 중에 한명이 트릭을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살해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알고보니 오래 전 섬을 떠난 주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동시에 과거에 또 다른 살인사건과도 연루가 되어있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태풍 때문에 배가 끊겨서 육지의 경찰들이 오기까지 3일. 그 사이 섬의 순경 한명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사건의 범인과 숨겨진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에 벌어진 사건의 경위도 같이 밝혀낼 수 있을까? 여대생 탐정 하랑의 추리가 시작된다.
호오... 보면서 상당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추리소설의 불모지라 생각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클래식한 느낌의 클로즈드 서클 추리소설이 나오다니?
그것도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너무 상식 밖의 트릭과 동기가 아닌 그럴싸한 개연성까지 갖춘 작품으로.
그래서 상당히 흥미롭게 볼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장르를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고립된 곳에서 이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느낌을? 그래서 난 이걸 청소년소설로 추천해도 무방하단 판단을 내렸다.
어른들보다는 오히려 학원에 시달리는 우리 청소년들이 보고 도파민 터질 이야기인걸?
그런데 이 작품이 가지는 묘미는 단순한 정통 클로즈드 서클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만이 아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으스스하고 소름돋는 배경과 설정에 있다.
사실 많은 추리소설들이 트릭을 위해, 때로는 분위기를 위해 전설이나 미스터리의 전제를 깔곤 한다.
그런 요소는 쉽게 과학수사와 경찰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쉬운 사건에 일반인인 우리의 몰입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데... 이 작품이 이게 죽인다.
특이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 없을 곳도 아니다. 흔하게 우리나라 남해에 대나무 많은 숲이다.
하지만 그 대나무와 고립된 섬의 풍경과 우리나라의 과거 자행된 악습이 연결되고,
거기에 작가님의 필력이 더해지면서 이 작품의 전개는 상당히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민담으로 시작한다.
얼핏보면 전래 동화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처음 소개한 민담에서, 그 대상이 눈이 아닌 혀로 바뀌었다는
단순한 정보 하나만으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섬으로 가는 과정에서 오가는 이야기와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들이
연출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작품에 매료되고 소름돋는 몰입에 빠져들게 하는 연출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섬세하고 괴이한 분위기가 너무 끝내줬으니깐.
거기에 그런 분위기를 일소하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엉뚱한 물리학도 여대생 탐정의 등장은
이 작품을 단순한 분위기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항상 추리소설이 추구하는 이성이 괴리를 타파하는 전개에
타당한 흥미를 부여한다. 동시에 조연으로 나온 인물들도 너무 바보같은 배경이 아닌
저마다의 재능을 살린 추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도 매력적이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 작품이 노린 반전도 기발했다. 사건 자체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의외로 여기 모인
인물들의 이유와 그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진의가 대박이었다. 와우... 역시 시대는 달라졌다.
이걸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니. 달라진 트렌드에 한번 더 감탄하게 된 결말의 반전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어디에도 빠지기 힘든,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하고
이 여름에 서늘한 재미를 찾는 이들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괜찮은 작품이다.
내용 구성이 워낙 잘 짜여져 있어서 언젠가 영상화도 기대해 볼법한데, 그때가 되면 너무 유쾌한 기분으로
이 작품을 회상하며 즐길 것 같다는 감상을 말하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대나무가우는섬 #송시우 #시공사 #추리소설 #청소년소설 #밀실살인 #클로드즈서클 #민담 #탐정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