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연수
더운 여름이 이어지고, 몸도 마음도 피로해지는 시기가 되면 책도 좀처럼 집어들지 못하곤 한다.
오랜만에 억지로 여유를 쥐어 짜낸 시간에 읽은 책은 그런 메말라버린 기분에 조금이나마 청량함을 더해줬다.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이 있는 성장소설, 모두의 연수를 오늘 한번 리뷰해보도록 하자.
연수는 명도단이라 불리는 시장 골목에서 모든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다.
슈퍼 손녀로 명도단 거리를 어렸을 때부터 쏘다닌 덕에 모두가 다 알아보고 모두가 다 이웃으로 가족처럼 챙긴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나름 나쁘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성적은 고만고만하지만 2학년이 되서 만난
공동과제 같은 조 친구들과 진짜로 친하게 되고 준비한 과제가 1등을 먹으면서 같이 몰려다니는 그룹이 된다.
그래서 항상 바닷가 공원에 만나서 놀다가 마지막에 할아버지 슈퍼에 들려서 라면을 먹고 가는 것이
연수와 친구들의 일상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아무런 고민도 없는 것이 연수다.
하지만 그런 연수에게는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가 있다.
연수는 고아 출신인 엄마가 미혼모로 낳은 아이다. 그리고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엄마와 의붓동생처럼 지내게 된 이모와 전부터 알고 지내던 경찰이었던 이모부가 키우고 있다.
연수의 엄마는 연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조손간으로 보이는 슈퍼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사실은 이모부의 부모,
그러니깐 연수에게는 사돈 어르신인 셈이다. 그런 환경에서 연수는 다행스럽게도 남겨진 사람들의
바르고 다정한 마음 덕분에 의연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하지만 그런 연수의 환경은 연수 혼자서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서 삶을 쉽게 풀게 놔두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된 친부가 범죄자였고, 엄마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로 연수를 낳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연수의 마음 속에 그림자를 남기고 연수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일부러 밝게 살아간다.
그런 연수의 시간 속에서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은 이어지지만 어느 순간 주이에 다가오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고, 연수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복잡한 고민들이 발생한다.
중학교 2학년. 아직 앳됨이 남아있지만 응석을 부릴수는 없는 시기를 살아가는 연수는 과연
이런 감당하기 힘든 어른들과 관련된 어두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헤쳐나갈까?
그리고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의 고민도 과연 연수를 중심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왠지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지방의 한적한 시장 골목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그려내는
밝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다정한 이야기가 여기 펼쳐진다.
내용 소개를 마치고, 항상 하던 것처럼 이 작품에 대한 읽은 후 가장 즉흥적이고 간단하게
떠오른 감상을 말하자면... 생각보다 무겁다?
결코 나쁜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말에 표지와 소문을 들은 분들은 좀 놀라실지도 모르겠다.
그냥 표지만 보기에는 마냥 싱그럽고 당찬 지방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밖에 상상이 안갈테니깐.
실제로 내용도 처음은 확실히 그렇다. 시장 골목의 모두의 손녀같은 연수가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누구래도 흐믓한 미소를 드리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모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면...
와우, 이건 무슨 하드보일드? 결코 가볍지 않은, 찐득찐득하면서도 쉽게 떼어지지 않는
버거운 기분이 들 정도의 무거운 이야기가 여과없이 술술 흘러나온다.
사실 이게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이 작품은 완득이의 작가이신 김려령 작가님이시고
작가님께서는 마냥 사고뭉치 꼴통같은 완득이에서도 이런 가벼운 분위기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결코 외면하기 힘든 무거운 사실들을 풀어나가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었으니깐.
하지만 전적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충격이 약해지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작중에 이렇게 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없이 이어지는 친부의 진술을 읽다보면,
지난번에 리뷰한 대나무가 우는 섬을 뺨치는 스릴러를 맛보는 것 같았다.
사람이 타인에게 가질 수 있는 악의의 궁극이 무엇이고, 존재 자체가 혐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텍스트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단연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거기 심연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모순적인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진득하 악의의 결정체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찬사받을 존엄의 궁극도 동시에 보여주니깐.
그런 서로 상극에 해당하는 두 내용이 대조를 이루면서 마침내 모두의 연수라는 의미가
좀더 생생하게 우리에게 와닿고, 동시에 그 의미를 알게 하며, 대비 효과를 통해 더 빛나는 임팩트를 주는 것 같다.
이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모두가 다 영위하는 삶의 모습은 저마다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색을 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그것을 칠흑으로 만들고 더 검게 물들어가고, 어떤 이는 그것을 순백으로 유지할 것이다.
때로는 순백의 삶에 다가와 먹물을 드리우며 그것을 검게 만들려고 하는 일들이 있을텐데,
거기서 검게 물들지 않고 하얗게 이어나가는 방법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물든 곳을 하얗게
덧칠하는 것만이 유일할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다정함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다정함에 대한 삶의 태도로 정의하고 싶다.
한 사람이 혼자서 끝없는 악의로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가는 것에 반해, 명도단의 연수, 아니 우리 모두의 연수는
그 다정함이라는 마음으로 덧칠해준 덕에 순백으로 살아가고, 더 나아가 다른 이의 삶도 덧칠해줄 수 있었으니깐.
그런 온화함과 다정함의 여운, 그리고 시끌벅적하면서도 절대 지루할 일이 없는 명도단의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느 지방 도시를 살아가는 한 당차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소녀의 이야기는
그런 훈훈함의 기분을 모두에게 스포일러하며 여기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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