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북

블랙북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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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미 블로그에서 여러번 소개한 바가 있던 김하연 작가님의 최근 신작, '블랙북'이다.

사실 책은 오래 전에 집에다 아예 구비를 해두고 모셔놓고 있었는데,

한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책을 읽어볼 여유를 가지지 못해 계속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연휴를 맞아 이 책을 집어들 용기가 생겼고,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실망하지 않을 큰 감동의 여운을 만끽하게 되었다.

명품은 왜 명품인지를 텍스트로 입증하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감동하며 오늘의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자.


작품의 시작은 늘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우리의 주인공 재승이 도서관 정리 모둠에 끼지 못하고,

덕분에 혼자서 폐기된 책을 처리하는 일에 투입되며 시작한다.


직원 휴게실에 폐지처럼 쌓여있던 책을 소각장으로 옮기던 재승은 우연히 켜놓은 향초를

책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고 그래서 불이 붙는다. 화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놀라운 것을 보게 된다.

그건 바로 거기 있던 책 중에 하나가 불타지 않고 있다는 것.


그 기이한 상황에 책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고, 그 책을 펼쳐보고 다시 당황하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단 한 페이지만 하얀 색으로 되어 있고. 그곳에는 그날의 날짜와

질문을 적는 Q라는 칸과 그 아래 yes / no라는 란만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이야기의 주인공 답게 거기 질문을 적은 재승, 그리고 이내 알게 된다.

그건 바로 내일의 일을 알려주는 예언의 책이라는 사실을.


물론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 yes / no로 답할 수 있는 질문만 물어볼 수 있고

질문의 기한은 반드시 다음날 뿐이다. 어찌보면 소소할지도 모를 이 책을 통해서 재승은 어째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 이내 그것을 반의 아이들의 사정을 알고 도와주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엄마가 죽고, 어린이집에서 당한 학대 이후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재승에게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늘 긍정적인 회장, 아이돌 연습생 유주,

그리고 항상 마음이 쓰이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소진이까지.


그렇게 친해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모둠 과제로 단편 영화를 만드는 것을 내주고

시나리오를 맡은 재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책, 블랙북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좀더 이해하게 되는 아이들과 더불어

영화는 점점 더 완성도를 높여간다. 그래서 마침내 완성된 영화는 학생 영화 공모전에 출품되는데

그것을 보고 의문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과연 그 사람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비밀의 근원인 블랙북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리고 재승은 그 모든 의문 속에서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 놓은 응어리를 풀고 성장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잔잔하지만 반찍이며 빛나는 윤슬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와... 읽어본 이후의 감상은 솔직히 한동안 무념무상의 여운이었다.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시간을 건너는 집 시리즈와 너만 모르는 진실을 보고선 큰 감동을 받았던

김하연 작가님이라 솔직히 실망할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감동의 총량을 넘어서는 큰 여운의 파도를 느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정말로 간만에 느껴보는 거대한 조류와 같은 감동이었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는 다른 물건과 차별되는 그 자체가 값지고

고귀한 가치를 가진 물건을 명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명품이라고 해서 그 소재와 제조 방식이

다른 기성품에 비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높은 걸까?


그건 아니다. 조금 좋은 재료와 공정을 사용하기는 하겠지만,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은 거기에

어떤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의미를 담느냐에서 갈라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대단하거나 특출나지 않은 언어나 소재로 글에 거대한 서사를 담아 마침내

모두에게 여운의 파도를 선사하는 이 작품은 진정 명품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읽으면서 하나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교과 과장으로 덧칠된 문예인의 찌들과 과장된 문장은 없다. 짧막하고 담백하며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 사용할 무난한 언어와 감정의 문장들이다.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소재 역시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 약간의 신비를 가진 아이템과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디 생소하거나 처음 보는 것인가?

그야말로 식재료로 비유하자면 시장에서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냉장고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작가님의 손을 거쳐 문장으로 담겨졌을 때, 우리는 세상에 다시 없을 지고의 풍미를

느끼는 미식을 감상하게 된다. 재료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시 없는 명품으로 느껴지는.

그런 글이었다. 그래서 이건 왕도가 아닌 왕의 글이라 할 것이고, 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권하고 싶은 사람과 청춘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올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어졌고.

그런 분위기가 사랑스럽다. 어딘지 모를 세상에 있는 우리들만의 공간, 우리들만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신비한 매개체와 그 비밀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운 의미가.


지난 번에는 하얀운동화였다면 이번에는 검은 책이 그 역할을 제대로 발휘해 주고 있어 웃음이 나왔다.

근래에 신간이 나와서 약간 우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다음에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한번에 날려주는 책이었다. 우쭐한 기분은 한참 아래라는 것을 자각하고 반성하게 되었고,

뭘 해야 하는지는 역시... 글을 써야겠지. 언젠가 이 정도로 명품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큰 감동과 새로운 다짐, 그리고 즐거움을 가지고 연휴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이 책에 대해

오늘따라 너무나 개인적인 감상만 가득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을 민망해 하며 리뷰를 마친다.




P.S 1 책을 읽어보다가 은근히 시선이 가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주인공의 절친인 회장.

조연이지만 햇살같은 모습으로 주인공을 받쳐주는 매력적인 조연의 모습이 마치

시간을 건너는 집에 나왔던 강민이를 닮은 것 같았다. 응? 근데 회장 이름이 나왔던가?

설마... 동일 인물은 아니겠지?



P.S 2 김하연 작가님 필모를 보다가 우연히 보리 개똥이네를 통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그저 먼곳에 계신 존엄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기서 공통분모가 있었다니.

송구스럽지만 감히 선배님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그분처럼 세상에 이름을 알아주는 작가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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