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에 투자하세요

멸망에 투자하세요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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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생긴 연휴도 한가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집어들지 못한 책들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책은 오래 전에 집에 고이 모셔두었지만 이제야 겨우 읽게 된

황이경 작가님의 비룡소 제 5회 스토리킹 수상작 멸망에 투자하세요 이다.

정해진 운명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발칙한 반항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도록 하자.


배경은 약간 미래의 시간, 세상은 아이의 운명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미래 예측 테스트를 통해 선택된 아이를 선발하고, 그 아이에게 베팅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백소망은 그런 세상에서 정말로 특출나지 않은 평범한 소년.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긍정의 힘을 믿으며 미래 예측 테스트에서 선택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행된 테스트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그건 이례적으로 선택된 아이가

무려 다섯명이 나오고, 그 중에 두명은 선택된 아이 중에서도 특출난 성향을 가졌고,

그 두 아이 중에 하나가 바로 소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 특출난 성향이라는 것이...

놀랍게도 세상을 파멸시킨다는 파멸자 성향이란다.


온 세상이 어리둥절해지는 상황, 하지만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역시 소망이다.

살면서 세상의 파멸이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저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자신이 파멸자라니?

하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혼자서 힘들게 일하며 자신을 키운 엄마를 호강시켜 준다는 바람을 포기할 수 없으니깐.

그래서 소망이는 선언한다.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진짜 세상이 파멸할거라고.

어리둥절을 넘어 공포에 휩쌓인 대중들의 경악 속에 소망의 운명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소망의 운명에 건건히 개입하는 또 다른 특출난 성향, 예언자로 점지된 아이 최선.

그녀는 시종일관 의뭉스러운 말과 태도로 백소망을 스쳐간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정부 기관 투자청의 의도는 무엇일까?


평범하게 살아온 한 소년 앞에 던져진 세상의 파멸이라는 이슈를 두고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겁나 엇박자로.


매번 리뷰를 할때 마다 내용에 대한 소개를 하고 다음 차례는 작품에 대한 가장

임팩트 있던 소감을 정리하는 것이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간단하지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느낌이 너무 독특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때 표지를 본 인상은 솔직히 좀 가벼웠다.


음...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인공 두명의 느낌이 아무리 노력해도 작품이랑 언매칭한 느낌?

멸망을 두고 벌이는 블랙코미디의 주인공들이라기 보다는,

타로 카드 좋아하는 힙합 듀오의 쇼미더머니 도전하는 내용이 적절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은 되게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근데... 읽고 경악했다.

와우... 진짜 놀라웠다.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니.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한점 그림자 없이 살던 소년이 어떤 식으로 흑화되고 그것을 대중들이

부추기고 그러면서 진정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파멸자가 탄생하는 과정이 소름끼치게 흥미로웠다.


청소년 SF 소설로 리뉴얼한 히틀러의 탄생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고,

그 과정과 광기와 분위기가 전문가의 권위마저 느껴질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이야기로 펼쳐졌다.

그래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점점 커져가는 광기의 결말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드리프트가 중간에 걸려 버렸다. 아니, 이게 뭐지?

왜 선의를 가진 개인이 대중과 여론에 의해 어리버리 마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을 그린 광기의 서사시가

어느 순간 무난하고 평범한 청소년 SF 소설로 선회해 버리는 걸까?


정말로 그랬다. 개인적으로 친하지 못한 상대와의 갈등을 통해 자각,

뭔가 의구심이 드는 권력기관의 부정을 목격. 입막음하려는 추적을 피해 도망치며 진상을 추격함.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밝혀내고 모범 답안 같은 연설을 하며 마무리...


아... 너무 아쉬웠다. 물론 무난한 청소년 SF 모험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장르로 생각해 보면 결코 흠잡을 수 없는 잘쓴 이야기고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마무리 하기에는 그 과정에 접어버려야 했던 전반부의 이야기...

파시즘의 승리를 너무나 자연스럽고 위화감이 없이 우리나라와 근미래 디스토피아 배경으로 그려내고

그 안에 소름돋는 광기를 맛본 다음부터는... 무난한 이야기에 만족할 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오호, 통재라... 어쩌다 이런 드리프트를 선택하셔야만 했을까?

결국 결말은 모두가 만족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권해주기 적절한 착하고 바른 이야기여야 했을까?


때로는 마왕이 얼마나 시시한 소악들에 의해 탄생하는지를 풍자하는

희대의 블랙코미디를 포기하여야 할 정도로? 그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뭐 이런 기분은 내 개인적인 것이고, 객관적이고 검증된 권위자 분들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울러

총합적으로 완성에 가까운 이야기라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의 시국이 워낙 그래서 감정적으로 그런 이야기에 끌렸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언제든 받아들여질 무난한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쉽게 드러내기 힘들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절실히 바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소심한 리뷰를 통해서라도 밝히고 싶었다.


험난한 세상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못보일 꼴도 현실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고.

그렇기에 그것을 자각하고 옳바름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조롱하는 이야기는 존중받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 앞에 손닿으면 볼 수 있는 곳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잡한 여운을 정리해야 했다.


아아... 솔직히 기대했는데. 마지막에 소망이가 광기에 휩쌓인 대중들과 나치의 또 다른 이름인

투자청의 추대로 파멸자로 등극해서, 더 없이 해맑은 얼굴로 '그럼 다른 나라를 좀 혼내줄까요?'

라는 대사를 순진무구하게 내뱉으면서 끝나는 결말을.


그래서 내 안에 기준이기는 하지만, 전반부 한정으로 1984와 동물농장에 가까웠던

블랙코미디의 명작을 잠시나마 맛본 것에 입맛을 다시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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