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터널 103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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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매년 케빈과 같이 보내면서 저물어가는 한해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잠시 짬을 내어 오늘 소개할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난번 루시드 드림과 같이 영어덜트 공모 수상작이자,

작품들 중에서 가장 고립된 상황에 절박한 생존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터널 103을 오늘 한번 리뷰해보도록 하자.


시작은 터널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에서 짠맛이 나는 것으로 출발한다.

고립된 검은과부거미섬에 나타난 의문의 괴물 무피귀로 인해 육지로 연결되는 해저터널에

사람들이 고립된지도 50여년,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왔지만 그 끝이 보이게 된 것이다.


유일한 식수원에 바닷물이 유입된 순간, 터널에 고립되어 살아왔던 사람들은

전부 기갈로 죽어가거나 아니면 섬으로 나가 무피귀의 밥이 되는 결말 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터널의 촌장은 대책을 수립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 다형에게 섬 밖으로 나가서

어떻게든 무피귀를 피해 배를 찾고 그래서 내륙으로 가서 지금까지 그들을

고립시키고 있던 해저터널의 반대편 차단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대가는 엄마를 위한 페니실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다형은 일생동안 고립되어 있었고, 겨우 근거리만 무피귀의 눈을 피해

탐색을 할 수 있었던 섬으로 가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출발하고 얼마되지도 않가 추격해오는 무피귀의 손에 죽을 위기를 겪지만,

생각치도 못한 구원의 손길이 나타난다. 그건 바로 터널에 숨은 자신들과 비슷하게 가까운 섬에

숨어살고 있던 무리에 있던 소년 승하. 그의 도움으로 다형은 섬으로 피신한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되어 있지만, 그보단 나은 삶을 영위하는 섬의 사람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썰물때면 위협해오는 무피귀의 공격에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섬의 사람들은 다형에게 잔류를 권하지만, 다형은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임무를 수행하러 섬으로 향하고, 그 여정에 승하도 동행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두 소년 소녀는 섬을 횡단하며 그들이 알지 못했던 과거 사건에 대한 비밀과

남겨진 존재들과 조우하고 서서히 그 실체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 섬을 장악한 무피귀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섬을 빠져나가 탈출할 방법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한치도 눈을 떼기 어려운 크리쳐스릴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 이 작품을 보면서 리뷰를 쓰기 전에 한번 다른 서평들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비슷한 톤의 서평이 많았다.


액션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만점이지만 큰 깊이는 없는 괜찮은 오락소설이라는 반응.

그런데 나는 그게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한번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리뷰를 써보고 싶다.


솔직히 나 역시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창비 공모전 작품으로서

생각보다 주인공들이 체감하는 고뇌와 깊이, 갈등의 군더더기가 없고 그보단 좀더 사건과 액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내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작품이 루시드 드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같은 아포칼립스에 대해 대처하는 인물들의 감성과 반응이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단순히 문학적인 감성이 배제된 사건 위주의

오락소설이냐고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난 절대 부정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주인공들이 걸어가는 여정에서 조우하는 집단들의 묘사가 너무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다형과 승하는 여정 중에 총 5개의 세력과 조우한다.

터널, 섬, 연구소, 등대, 그리고 무피귀.

그리고 거기서 체감하는 세력과 장소의 느낌은 곱씹으면 씹을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터널은 절망적인 공간이다. 연료로 사람들의 배변을 말려 써야 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쥐로 만든 육포가 고급 음식으로 취급되고 식수마저도 절망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가장 최악인 것은 그곳을 장악한 무능한 촌장의 독재이다.


그들은 대안없는 그 독재에 짖눌려져서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저항하지 못한다.

왜? 불행 중 다행으로 그곳만은 무피귀들이 전혀 침범하지 못하는 안전한 곳이니깐.

그래서 그들은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을 받아들이면서.


섬은 그보다는 희망적이다. 물자는 터널에 비할바가 없이 풍족한 편이고,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 역시도 이타적이면서도 헌신적인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곳도 문제는 존재한다.


썰물이 되면 다가와 위협하는 무피귀들과의 전쟁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지만, 그들 역시도 그곳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불안한 안전망에 기대어 모두 다같이 연대해 싸우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연구소에는 반쯤 무피귀가 된 군인들이 억지로 이성을 유지하며 일부 생존자들을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실로 인간 찬가의 한장면이라 할 정도로 숭고하고 희생적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결말은 정해져 있다.


동족이 아닌 무피귀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 위협 속에서 생긴

혼종의 존재는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품게 되는 시한폭탄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역시도 필멸은 예정된 시간을 버텨가고 있을 뿐이다.


등대에는 인간이면서도 무피귀와 다름없는 존재가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곳을 나갈 방법을 알고 있고, 생존하는 방법도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무피귀와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깐.


거짓과 비열함, 그리고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이기심으로 무장된 그에게

그곳은 어쩌면 자신만의 낙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어차피 그 역시도 인간이기에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처참할 수 밖에 없으니깐.


그리고 모든 시간 주인공들을 추격하는 무피귀의 존재는 재앙이다.

그들은 끝없는 식탐과 폭력으로 그들을 위협하고 오수처럼 사람들의 절망에 침식해 들어온다.

그들은 순수한 악이자 동시에 도달해서는 안되는 저 너머의 무언가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 사람 가죽도 없이 그 본능만 남은 존재들은 어쩌면

그냥 인간을 조소하기 위해 신이 만든 인간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든 존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사고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그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예정된 파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여정은 단순한 액션 어드벤처가 아니다.

괴물들에게 위협받는 크리쳐 스릴러도 아니고. 이것은 어쩌면 성장의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죽어가고 파멸해가는 이들 속에서 유일하게 두 아이들만이 고된 여정과 안주하지 않는

결단을 통해 멸망으로 가는 길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귀결이 원점에서 시작됨을 성찰하고 그 길에 문을 열게 된다.


이 여정을 어떻게 감히 오락소설의 일부로 낮잡아 볼 수 있겠는가?

이건 어쩌면 두 아이가 겪는 세상을 이끄는 자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숭고한 로드무비의 한장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거... 과연 검은과부거미섬만의 일일까?

우리 주변에 그들과 같이 서서히 인간의 존엄과 도전을 포기하고 서서히

사람이 아닌 것이 되어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과한 사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는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결말은 났지만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륙으로 올라온 곳에 펼쳐진 황량한 풍경 속에서 또다른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고

더 성숙해지고 강해져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가능하다면 그들의 여정이 좀더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재미도 폭발하는 오늘의 작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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