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러브 : 트랙)

김치 (러브 : 트랙)

by 차수현
제목 없음.jpg


가끔 살다보면 예상치 못하게 조우하는 작품이 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정한 테마는 창작활동과 연관된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리뷰하는 것이었고,

그 범위를 조금 넓혀서 공연과 영화까지도 포함한다는 나름의 룰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 드라마에 대해서는 어지간해서는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기에는 보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


그리고 나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이 작품을 리뷰하기로 결정했다.

짧은 이야기와 투박한 제목 속에 담긴 묵직한 서사의 깊이에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주인공 영미는 대학생 아들을 둔 중년 부인이다. 그리고 폐암 환자다.

그녀는 재혼한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차려줄 김치 걱정도 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집으로 방문한 아들 민우. 당황스럽지만 귀가한 아들을 반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민우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 갑자기 돈을 좀 요청하기도 하고 뭔가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잠든 민우의 핸드폰으로 온 메세지를 보고 알게 된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민우는 누군가에게 협박당하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영미는 서둘러 돈을 민우에게 주고 일을 정리하고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민우의 반응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그러다 마음에 걸려 방문한 민우의 자취방에서 민우의 친구인 새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새라에게서 민우가 숨기는 비밀의 실체를 알게 된다.


경악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자신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영미.

그런 영미의 태도에 새라도 질려하고 민우는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런 민우를 찾아나선 영미는 예전에 어린 시절, 지금의 남편과 재혼하던 시기에 있었던

남들에게 말할 수 없던 비밀을 민우가 보듬어 주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민우를 찾아내서 민우가 숨긴 비밀, 그것까지도 끌어안아준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해결하고 뒤늦게 달려온 남편에게 말한다. 자신이 숨겼던 비밀을.

너무나 사소하고 뜬금없었지만 숨길 수 밖에 없었던 그것을 밝히고 홀가분함을 느낀다.


일부러 내용에 대한 리뷰는 다소 모호하게 정리하였다.

네타를 하기에는 다소 실례라는 생각이 들고, 30분 밖에 안되는 단막이라서 내용이 궁금한

독자라면 다시 보기를 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뭔가를 쓰는 입장에서 짧은 분량은 대단히 치명적인 제한이다.

당장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쓰는 것만해도 한참을 소비할 수도 있는 창작에서 겨우 주어진 30분 내에

거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은... 상당히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한 러브 트랙 시리즈에서는 짧지만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던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오늘 리뷰할 이 작품 김치는 내용을 3시간으로 늘려도 충분히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의

묵직하고 심도 깊은 서사를 담아서 그걸 30분만에 풀어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이건 대단한 것이다. 30분.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이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도 모자랄텐데...

거기에 깊이와 몰입과 감동까지 빈틈없이 채운다고? 그것도 다급한 톤은 전혀 없이?

그래서 별 생각없이 틀어 보기 시작한 작품에서 차마 눈을 뗄수가 없었다.


거기에 담고 있는 사건의 무게도 결코 심상치 않다. 물론 묘사할 수 없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새라의 대사를 통해 처리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담담하게 뒷통수를 날리는 임팩트가 느껴졌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만든 가치관과 삶의 형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그런 사건을 조우할 때 갈등할 수 밖에 없고, 때로는 비겁하게, 때로는 잔혹하게

그것에 대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창작은 휴머니즘의 발로로 모성애나 가족애등의 킥을 넣게 된다. 그런 보편적인 흐름을

넘어서는 이타적인 마음, 누군가를 이해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집어 넣어

우리는 마침내 구원의 서사와 스스로를 초월하는 자기 극복의 신화에 감동하게 된다.


여기에 그런 모습이 제대로 담겨 있었다. 영미도 어찌보면 평범한 엄마일 것이다.

자식 사랑이 깊고 내 자식 자랑을 아끼지 않겠지만, 그 자식이 가진 치부에 대해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그런 이기적이면서 가식적인 평범한 엄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을 넘어섰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솔직히 작중에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하는 그녀의 폐암도 숨은 한몫을 했다고 본다.


아무튼 그녀는 그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굳건한 세계에 틀어박혀서 그것을 파괴하는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짓을 범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이겨낸 것이다. 그리고 자살한 민우의 친구 가족들과는 달리, 그녀는 아들을 지켜냈다.


그리고 거기에는 민우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모자의 이타적인 마음이 있었다.

민우가 어린 시절 엄마를 끌어안아 주었기에, 영미 역시도 민우를 안아줄 수 있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면 절대 뻔하다고 생각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고난의 여정을 이겨내고 아들의 손을 잡고 돌아온 영미가

마침내 남편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정말 오랜만에

창작에서 반드시 요구된다는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제대로 느껴보는 것 같았다.


정말 명작이다. 이렇게 단막이란 제한에 묻혀서 사람들의 입소문조차도 타지 않는 것이

각본을 쓴 작가님과 제작진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명작을 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게 만드는 여운이 남았다.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영미처럼 내가 만든 내 삶이란 아성을 구축하고

그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생각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사유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나는 오랫동안 고민할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오늘 갑자기 내질러 본 돌발 리뷰를 마친다.






#러브트랙 #김치 #김선영 #김단 #KBS #단막극 #드라마 #옴니버스 #자기극복 #구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루시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