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드림
지난 번에 학교가 집이 되었다를 보고 나서 예전에 보다 말았던 영어덜트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작인 루시드 드림을 골라잡아 보았다.
몽환적이면서도 암울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오늘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작품의 배경은 어른들이 잠들어버린 세상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전염병처럼 어른들이
하나둘 잠들어 버리고 깨어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남겨진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와 보호자를 지키고 살아남는 것에 내던져진다.
주인공 강희는 그래도 상황이 좀 좋다. 항상 자신과 마찰을 벌이고 우울증에 빠져있던 엄마는
돌보기 편하게 자기 방 침대에서 잠들어버렸고, 마침 도와줄 쌍둥이 남매 강석이도 있었으니깐.
하지만 강희의 친구들은 상황이 만만치 않다. 한번 잠들어버린 사람은 어찌된 일인지 옮길수도 없어서
길거리에 잠든 부모의 곁에서 텐트를 치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잠든 부모에게는 정부가 지급하는 수액을 맞혀야 생명이 유지되는데... 그 공급도 나날이 어려워진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문명이 붕괴하는 수준으로 떨어져 식량을 구하지 못해 가게를 털어 연명하고,
그렇게 얻은 식량마저도 서로 약탈하려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강희는 그 지옥같은 세상에서 강석이와 다른 친구들과 연대하여 필사적으로 생을 연명하며
엄마를 지키려 하지만, 종종 그 삶의 투쟁에 허무함을 느낀다.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행복한 꿈을 꾸는 듯이 잠든 엄마를 보며 화가 나고,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선 아빠의 존재에 대해 원망이 든다.
그리고 그 험한 삶을 어째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지 순수한 분노가 쌓여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큰 사고가 터진다.
잠든 부모를 지키며 노숙하던 절친 윤서가 수액을 일부러 파괴하러 다니는 약탈자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내몰린 윤서를 강희는 돕지만, 윤서는 극단까지 내몰리다가 잠들어 버린다.
마치 어른들처럼. 그런데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충격적인 얘기를 꺼낸다.
어쩌면 자신이 잠든 사람들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꿈의 세계에서 못박힌 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어른들이 깨어나자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악의적으로 보는 존재가
강희의 일행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고, 그런 희망과 무관하게 폭력적으로 나오는 약탈자들의 만행도 이어진다.
과연 강희는 그 암울한 악몽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세상의 끝에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없이 몽환적인, 그래서 역설적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흠...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든 감정은 놀랍게도 두려움이었다.
아마 책을 보신 분이라면 당황하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얘기를 읽고 왜 그런 얼척없는 감상을?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배경이 너무나 두려운 세상이었으니깐.
나름 아포칼립스 장르에 대해서는 해박하다고 생각한다. 전염병, 핵전쟁, 빙하기, 좀비, 수몰 등등...
다양한 형태의 인류 멸망을 다룬 아포칼립스물은 장르는 물론이고, 웹소설과 제대로 된 문학에서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여기 있었다.
그것도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형태의 멸망 시나리오가.
바로 더없이 만족스러운 행복함 속에 인류가 사멸해버리는 코스믹 호러가 떡하니 튀어나왔더랬다.
이 세계는 암울하다. 문명과 사회를 지탱할 어른들이 꿈 속에 붙들려서 남겨진 아이들이
춥고 배고프고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억지로 생을 부여쥐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잠든 어른들은 더없이 행복하다. 삶의 이상향이 그려진 것같은 꿈속에서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 남겨진 자들은 피폐해져가지만 잠든 자들은 거기서 나오지 않으려 하고,
종종 깨어난 자들마저도 다시 그 꿈 속으로 되돌아간다. 남겨진 자들이 자신을 포기하면 거기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이 세계는 놀랍게도 모든 인류가 너무나 행복하게 자멸의 스위치를 누룬 세계다.
남은 아이들이 그들을 필사적으로 만류하고 지키려고 하고 있지만,
결국 버거워진 무게에 놓쳐버리면 한없이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는 현실에 구현된 지옥이다.
여태까지 나는 이렇게 참혹한 멸망의 설계는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매트릭스가 가상 세계의 만족이라는 유사한 개념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저항의 대상이
분명한 존재가 실체하는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여기서는 그마저도 없다.
스스로의 손으로 행복을 택하고 남겨진 이를 나몰라라 하고 안락사를 선택하는 세상이라니.
풋풋한 문체와 담담한 서술 속에 담겨진 그 날카롭고 예리한 킥에 가슴이 베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작품의 표제는 어른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남겨진 아이들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같이 연대하며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도 언급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나이브한 이야기가 아니라, 옥상에서 투신한 부모의 넥타이를 붙들고 발버둥치는 아이가
결국 그것을 놓치고 스스로 부모를 죽인 것에 절규하는 처절하고 참혹한 이야기로 보였다.
그렇기에 그 고통을 짊어지고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225페이지의 시간을 감내한
강희의 이야기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픈 생존기로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언제부터인가 한계를 모르고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의 암울함이 만들어
낼지도 모를 우리 미래의 아름답게 서술된 예언서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작품에서는 그 결말을 봄을 상징하는 희망의 메세지로 매듭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 세상이 끝이 그렇게 아이들의 바람을 담은대로 흐르지 않을 것 같다.
어른들이 잠들었고 현실로 돌아오기를 망설이는 시간 속에서 세상은 서서히 무너지리라.
그리고 잠든 이들을 연명하던 수액을 만드는 이들도 사라질 것이고.
결국 아이들만 남겨진 세상에서 힘겨운 아이들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꿈에 세상에 갈 것이다.
거기서 가장 마지막에 남을 사람이 왠지 윤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윤서가 포기한 세상에 인류 최후의 이브가 되어 인류는 종말하게 될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영어덜트 당선작이라고 하지만 더 없이 무겁고 상상하기 힘든 몽환의 아포칼립스 세상을 그려낸
오늘 작품으로 왠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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