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
예전에 한때 창비에서 주관하는 영어덜트 공모작들에 심취해서 몰아서 보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여기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이라면 그때 리뷰했던 작품들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보고 싶었는데 묘하게 연이 닿지 않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보는 것을 놓쳐버린 작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할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이다.
불안감이 가득한 청소년들의 일상과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생각치도 못한 기이한 발상으로
예기치 못한 삶과 생활을 영위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의 세계에 오늘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작품의 시작은 주인공 준영의 넌더리나는 일상으로 시작한다.
학교에서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왠지 모르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리는 우리의 주인공.
그래서 준영은 야자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학교에 다시 돌아가 숙박을 때운다.
그러면서 묘사되는 준영의 삶은 애매하고 모호하지만 음울한 불안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의 여파인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물건을 훔쳐가는 책도둑의 도시 괴담이 떠돈다.
그러던 어느날 예기치 못한 준영의 일상의 변화가 생긴다.
그런 자신의 상황을 학생회장 신지혜에게 들킨 것이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신지혜는 그런 준영의 행동을 제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학교에 숨겨진
공간의 열쇠를 넘겨주면서 기거할 것을 부추긴다. 물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건 바로 전교 1등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물건을 훔쳐서 자신에게 가져오라는 것.
당혹스러워 하는 준영. 하지만 당장 어쩔 도리도 없었기에 준영은 열쇠를 받아들고 자재에 쌓여 버려진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삼고 받은 열쇠들을 가지고 잠긴 교실들을 돌아다니며 의뢰를 수행하려 한다.
그러면서 점점 도시괴담은 퍼져가고... 거기에 또 생각치도 못한 반전이 생긴다.
왠지 모르게 학교에 기거하는 존재가 자신 외에 누군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준영은 점점 혼란스러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도 의심스러워진다.
행방이 묘연한 아빠, 멘토 후배로 붙어서 자신을 많이 따르는 소미, 의문스러운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방에 내 집에서 나가라는 메세지를 전한 의문의 존재.
과연 준영이 살게된 학교에서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파편화된 기억 속에 스쳐가는 과거 속에서 준영이 감춘 비밀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미스터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늘은 소감을 정리하기에 앞서 한번 이런 화두를 꺼내보고 싶다.
과연 학교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곳은 청춘의 가장 빛나던 시간을 가득 채운 빛나는 시간의 아카이브이자,
동시에 우리를 옥죄던 지독한 공부와 강요로 점철된 시지포스의 산일 것이다.
그래서 그 공간은 극단적으로 묘사된다. 더없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두근두근한 모험의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암울하고 피폐한 질풍노도의 감수성을 감금한 폐쇄된 감옥으로 등장하곤 한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그걸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 와우...
일단 발상 자체가 너무 신박하다. 모종의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주인공이
일상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를 거기서 더 나아가 집으로 삼는다고?
컵라면을 끓여먹고 씻고 취마활동을 하고 밤에 숨겨진 장소에서 잠을 잔다고?
거기다 그런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아마도... 누구라도 여기까지 들으면 독서가가 아니더라도 기대되는 내용의 궁금함이 자극될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장르소설에 가까운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년의
두근두근 모험 스토리를 기대했더라니깐. 하지만... 이 작품은 묘하게 거기서는 좀 거리가 있다.
일단 그런 익숙한 장르소설에 문법에 맞지 않게, 내용은 시종일관 주인공 시점의 다운된 감성과
제한적인 정보, 그리고 불친절한 시점 변환과 자기 얘기만 하는 인물들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상당한 피폐의 정서도 깔려있고. 단순히 학교에서 요구되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겪는
학업과 진학에 대한 무게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한축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좀더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점과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그 공간이 안식처가 아닌 피난처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이한 사회라는 공간에서 도망친 청소년 난민 캠프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기대했던 모험 미스터리가 배신당했다는 아쉬움, 하지만 나름 청소년의 극현실주의적인 문제 제기에
대한 나름 만족스러움. 그리고 결말에서 풀려가는 이야기에 대한 애매한 부족함.
총체적으로 작가님에게 상당히 놀림당한 듯하고 끌려다닌 것 같은 기분나쁘지 않은 패배감까지...
그래서 이 작품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미묘하기는 하다. 하아... 꼭 그런 전개였어야만 할까? 영어덜트 공모 당선작들이 단순히 무겁기만 한
작품들만은 아니었거늘. 소초모 같은 곳에서 나온 유쾌한 감성도 있었는데... 그에 비해 여긴 너무 무겁다.
그게 너무 기발한 소재와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명확한 것 같다.
굳이 비유하자면, 진짜 제대로 텐션이 보이는 끝내주는 힙합 음악을 서두에 깐 다음에, 중후반부터는 무난한
클래식으로 전환해버렸다는 느낌?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아쉬움 + 만족감을 계산해보면 총체적으로는 남는 장사였다는 기분이다.
잠시 보던 것을 중단했던 영어덜트 시리즈에서 못본 작품들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어린 시절에 기억하는 학교라는 공간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분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서늘하도록 현실적이면서도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학교라는
콘크리트로 감싼 청춘의 테마파크를 오늘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나.
그런 기분으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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