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루즈!
연말을 맞이해서 아이들은 집에 두고 오랜만에 뮤지컬 공연을 보고 왔다.
선택한 공연은 바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물랑루즈!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전의 풍미가
가득하고 더없이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를 한번 리뷰해보려고 한다.
미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작곡가 크리스티앙. 그는 예술의 거리 몽마르뜨에 도착해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 같이 당대 최고의 쇼 클럽인 물랑루즈에서 공연할 각본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공연을 간택받기 위해 물랑루즈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샤틴을 만나러 간다.
하필이면 그날 재정난에 빠진 물랑루즈의 투자를 받기 위해 공작도 방문했고,
클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작을 유혹해야 한다는 단장의 말에 샤틴은 자신감을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작이 누군지는 착각하게 되는데, 맞은 편 VIP 석에서 훔쳐보던
크리스티앙을 공작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샤틴의 개인실로 찾아간 크리스티앙.
그를 공작으로 착각한 샤틴은 갇은 교태를 부리며 그를 유혹하려 한다.
하지만 순수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에 샤틴은 오히려 자신이 매료되어 버리고,
그때 들이닥친 공작과 단장 덕분에 상황은 난장판이 된다. 수습을 하기 위해서
크리스티앙이 거기 있던 것은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던 것이라고 둘러대는 샤틴과 크리스티앙.
우여곡절 끝에 공작의 투자는 받았지만, 그 대가로 클럽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이 공작의 소유가 되고
특히 샤틴은 화려한 무희의 삶을 버리고 어울리지 않는 귀족가의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거기다 샤틴은 예전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는 상태.
그런 상황 속에서 샤틴과 크리스티앙은 새로운 공연의 준비를 하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공작의 방해와 샤틴의 병을 모르는 크리스티앙의 응석에 샤틴은 힘겨워한다.
과연 샤틴은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물랑루즈를 살리고 자신의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역대 가장 화려한 클럽으로 아직까지도 명성을 자랑하던 물랑루즈는 생존할 수 있을까?
오래된 고전의 이야기같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인 그 세계의 밤이 불을 밝힌다.
와우. 사실 물랑루즈는 예전에 영화판으로 나왔을 때부터 완전 팬이었다.
솔직히 고전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하는 바즈 루어만의 스타일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스타일리쉬한 느낌일 수 밖에 없었으니깐.
로미오와 쥴리엣에서 서로 권총을 들고 차를 타고 질주하는 베로나 청년들의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그 후로도 바즈 루어만이란 이름은 내 가슴에 보증수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 물랑루즈도 너무 감동하며 보았더랬다. 사실 진부할 정도로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의상과 연출, 그리고 새롭게 어레인지된 음악들이 어울어져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축제의 향연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버렸다.
그리고 그 시절의 여운이 이제 사라질만한... 거의 25년이 흘렀으니깐. 그 시점에 갑자기
올라온 공연 선택지에 나타난 젊은 시절의 낭만은 선택을 주저할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뮤지컬로 어레인지된 이 작품이 단순한 영화의 뮤지컬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혀 몰랐다. 그때 사용했던 음악들을 다른 곡으로 변경해서 재해석했고,
내용도 영화와는 조금 다른 좀더 애절하면서도 가슴아픈 이야기로 변했을 줄이야...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게 된 느낌이어서 그 놀라움은 컸고 감동의 무게도 엄청났다.
25년전 젊은 시절에 느낀 그 격한 설레임이 가슴 속에 다시 한번 일렁이는 것 같았다.
사실 이야기와 서사만 보면 아주 현대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전형적인 아름답지만 천하고 세속적인
히로인과 그를 사랑하는 가난한 예술가, 그리고 부유한 귀족, 그 삼각관계가 그들이 만들어가는
작품 속에서 엇갈리면서 마침내 갈등의 극에서 폭발하듯이 마무리되는 이야기...
기원을 따지고 보면 고대 그리스 연극까지 올라갈지도 모를 가장 전형적인 고전 서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낡았다거나 진부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공간이 주는 매혹적인 색감과 연출, 그리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새롭게 편곡된 음악들이
고전의 서사를 오히려 더 세련되고 고결한 느낌으로 바꾸어주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마저도 눈씨울을 적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연말을 맞이하여 선택한 공연의 감동은 근 몇년 사이에 보았던 그 어떤 공연도 비견하기 힘든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에 남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그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무희들의 섹시한 코스츔과 성인 남녀가 만들어가는 사랑 이야기의 찐한 느낌 때문에
가족들이 사이좋게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오랫동안 가족으로만 여겨온 배우자와 같이
그 시절의 낭만을 떠올리며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길 바란다.
그 슬프고도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질 때 더없이 아름다운 동화가 될 것이고,
언젠가 아이들이 컸을 때 그 이야기를 사랑하며 보러 갈 날이 올테니깐 말이다.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샤틴의 파이어워크를 떠올리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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