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 흡혈마전

1931 흡혈마전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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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래저래 일이 바쁘고 읽은 책들도 예전에 리뷰했던 책의 후속 이야기들이고 해서

블로그를 돌아볼 시간을 내지를 못했더랬다.


그러다 이번 주말에 난 간만의 시간에 여유를 느끼며 읽어본 책이 있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1931 흡혈마전이다.


일제 시대 여학교를 배경으로 흡혈귀 기숙사 사감 선생과 당찬 여학생이 벌이는

그 시대를 질주하는 여성들의 활약상에 오늘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이야기의 시작은 흡혈귀 계월이 일본의 생체실험 시설에서 탈출해서

숲에서 쥐의 피를 빨면서 조선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을 먹으며 시작한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어 배경은 일제시대 서울의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는 여학생 희덕에게 넘어간다.

오랫동안 기숙사 학생들을 괴롭혀온 일본인 사감 선생이 쫓겨나고,

오랜만에 느낀 자유로움에 지각을 한 희덕은 늦은 아침을 먹고 돌아다니다 우연치 않은 만남을 하게 된다.


그건 바로 학교 뒤뜰에서 뚱뚱한 살쾡이를 잡으려다가 놓친,

약간 허당끼가 보이지만 차가운 모습의 새로운 사감선생인 계월이었다.


계월에게 싫은 느낌은 아니지만 뭔가 스산함을 느낀 희덕.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새로운 사감 선생의 등장에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지난번 선생처럼 깐깐하게 학생들을 단속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편지를 검열하거나

소지품을 빼앗지도 않고 방치하는 모던걸 느낌의 계월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계월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던 희덕은 계월의 뒤를 쫓다가 생각치도 못한 것을 보게 된다.

그건 바로 그녀가 다른 선생님의 피를 빠는 모습이었다.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연이어 다른 선생의 피도 빠는 것을 본 희덕은 기겁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난리를 치지만 피해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반응에 희덕은 혼란스러워 한다.


거기다... 가해자인 계월마저도 딱히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희덕을 입단속하고

뭔가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흡혈귀 사감 선생과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시대는 일제시대고 세상은 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희덕은 친구 경애와 어울리다 만난 경애의 오빠인 일균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본에 대항한 독립운동의 열풍에 휘말린다.


그러면서 계월이 어떤 경위로 그런 몸이 되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하나둘 밝혀진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과 연계된 비밀 조직과 흡혈귀들의 수장도 점점 엮여들기 시작하고.


과연 계월과 희덕은 그저 여자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이 상황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네들이 가는 미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다음 문단도 예측이 불가한 톡톡 튀는 스토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일단 책을 읽은 소감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일제시대의 걸스 어드벤처를 본 느낌이었다.


사실 일제시대는 참 기묘한 시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우리나라의 수치로 기록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라고 서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사람은 살았고, 사람이 살았기에 그 안에 소소한 희노애락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암울한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억지로 웃으며 살았던 이야기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주목하고 조명하고자 하지만 묘하게 역사 인식과 맞물려 애를 먹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일까?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은 그런 인식 타파에 좀 기여한 느낌이다.

여전히 시대의 투쟁을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다소 입체적이고 중립적인 인물 군상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어우러지는 과정이 한폭의 비단결처럼 어울어져 멋지게 수놓아졌다.


그리고 오늘 본 이 작품도 그런 범주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비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인식을 공감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이야기.

거대한 시대의 수레바퀴에 짖눌릴지언정 그안에 숨쉬는 개개인의 삶의 비명소리는

배제하지 않고 아로새겨진 이야기. 그래서 이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단... 그 학교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더랬다.

각 지역마다 와서 사투리가 섞인 여학생들의 대화도 그렇고,

핸드폰이 없던 시대에도 저마다 소통하고 어울리고 박진감 넘치는 학교 생활을 이뤄가는 모습이...

보는 내내 웃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핀포인트를 꽂는 계월의 존재도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흡혈귀의 두려운 능력들은 죄다 가지고 있고, 그에 반해 약점은 거의 없는 전능에 가까우면서도...

뭐랄까나... 약간 허당스럽고 만사가 귀찮은 동네 노는 언니같은 느낌의 반전 매력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전라도 시골에서 올라온 낭랑 18세 희덕과 수십년을 살며 세상을 주유했던 계월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억지로 웃기려고 하지 않아도 웃음이 터져나오고,

그 횡보에 감탄을 자아내고 같이 귀결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참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재를 딱 적절하게 배합안 장르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빠져들고 웃음지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이 통통 튀는 스토리였고.


물론... 아쉬움도 조금 있기는 하다. 굳이 그래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과하게 선악의 구도로

배치된 인물간의 대립도 그렇고... 소소한 이야기에서는 빵빵 터져주면서도 진지하고 무거운 부분에서는

되려 지나치게 가벼운 것이 아닌가 싶은 전개도 조금 아쉬움을 느끼기는 했다.


특히나... 마지막 결전에서 그런 전개가 나올 줄이야. 그 도구가 체호프의 총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너무 쉽게 써버리고 말았다는 점이 좋은 작품이기에 더 느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남겼더랬다.


그래도... 영어덜트 공모전 심사평에서 언급하듯이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보기에 아쉬움이 없고,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통렬한 외침도 담겨있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아쉬움은 그냥 개인의 몫으로 남기고 그저 그들의 이야기에 찬사를 보내고,

왠지 그 후에도 이어질 것 같은 좌충우돌의 스토리를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막연히 희망하면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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