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우아한 거짓말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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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글을 쓰기 전에 상당히 오랜 시간 책을 잡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아무래도 일과 세상의 부침에 휘둘리며 이래저래 핑계가 많았던 탓일 것이다.


근데 그런 공백의 시간 동안에도 눈여겨보지 보지 않던 독서 목록에서 마음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지만 결국 구질구질한 핑계와 함께 읽지 못했던 책을 이번에 보게 되었다.


이제는 인기작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름이 오르내릴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김려령 작가님의 작품 우아한 거짓말이다. 오늘 한번 그 갑갑할 정도로 잘쓴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보자.


작품의 시작은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은 가정의 아침에서 시작된다.

평소와는 다르게 왠일인지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는 중학생 천지의 말에 엄마을 일단 끊는다.


그리고 전세값 협상이 끝나면 사주리라 마음먹고선 출근하고, 천지의 하나뿐인 언니 만지도

아파서 집에서 쉬고 있는 천지에게 자기가 사주라고 하겠다며 약속하고 학교로 나선다.


그리고 그날 천지는 죽었다. 자신이 짠 털실로 만든 끈에 목을 메어 자살한 것이다.


말로 하기 끔찍한 사건에 가족들은 절망한다. 특히 천지의 언니 만지는 평소에 조용하고 착하고

얌전하기만 했던 자신의 동생이 선택한 예상 밖의 죽음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씩 기억을 되집어 가며 천지의 행적과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 시간 천지의 절친이었던 화연은 초조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화연은 스스로 알고 있다. 평소에 학교에서 천지를 괴롭히고 따돌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라고 했던 사실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만 스스로가 가장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천지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무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 추궁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천지와 화연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생각하던 미라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천지의 잘못은 아니지만 천지의 가족으로 인해 벌어진 자신을 둘러싼 불행을 떠올리며

천지를 마냥 편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해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점차 복잡하게 엮여간다. 자신이 뭔가 소홀한 것이 없었는지 고민하는 천지의 엄마.

마찬가지로 놓친 것이 없었는지 고민하던 만지.

자신이 원인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하며 이상 반응을 보이는 화연.

냉소적이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천지와의 관계에 고민하는 미라.


그 4명에게 천지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유서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고, 또 1개의 메시지를 남겼다.

만지는 그 메시지를 추적해가며 천지가 감추고 있던 아픔과 고민.

그리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과연 천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의 진상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받을 사람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히 심연에 물든 우아한 거짓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 대한 추천평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정유정 작가가 말했던,

하룻밤 사이에 세번 읽고 세번 모두 울었다는 말이었다.


읽기 전에는 왜 그랬는지 의문이었다가 읽고 나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기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생소하게 느끼지 않을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도 가슴 시린 한 아이가 서서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저버리고 그 질식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흔히들 소설속의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에 담을 수 없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야기에는 현실과 결부된 다소 딴 나라의 이야기, 딴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주가 된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삶은 존재하고 그 삶이란 극장에서

나는 싫던 좋던 주연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스토리가 지독한 비극이라고 해도,

그 배역을 거절할 수는 없다. 연기를 멈추고 싶다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극단적인 선택 뿐.


그래서 모든 이의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는 우리가 멀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 또한 소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 작품은 그것을 가장 서늘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흔한 고등하교, 낡은 아파트 단지, 상가의 중국집, 여고, 모녀 가정... 소소한 결핍은 있을 지언정

그리 튀지 않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누군가를 침잠하고 연기를 멈추게

만들 비극은 존재하고 그것을 가장 예리한 칼날 같은 문장으로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이 이야기에서 천지라는 한없이 착하고 순진무구한 아이가 화연이라는

못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괴롭힘 당해 죽는 비극을 보는 것만이 아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서로가 악일 수 있고, 그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과한 호흡을 유발하는 고통임을 입증하는 고된 비명을 글로 옮긴 기분이었다.


작품의 형식은 서로의 증언이 엇갈리고, 교차하면서 하나하나 진실에 다가가지만, 때로는 거기 섞인

모순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라쇼몽의 우화를 보는 듯 하면서도,

그 궁극에는 결국 그 모든 것이 단순하지 않은... 이 비극이 피할 수 없는 일인 동시에 모두가 다

서로와 자신을 위한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정유정 작가님은 그런 의미에서 많이 이 작품에 동정적이셨던 것 같다.

나 같은 범인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에 내쉬는 삶의 지나칠 정도로 버거운 무게감과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고통의 무게에 눈물이 아닌 절망 섞인 한숨을 내쉬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깐.


그래서 이 책을 늦게나마 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좀더 이른 시기에...

나이가 들어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가 아닌 아이가 없을 때, 아직 천지와 만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가까운 시점에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아쉬웠다.


그건 마치... 내가 주연인 나라는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내가 모르는 젊은 내 자신이

무대 위에서 절망에 빠진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노년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 공허한 아픔과 인정받기 힘든 통증에 시달리게 만드는 감성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쁜 의미로서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지고, 천지와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한 이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마치 의무인양.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메시지는 결국 전달되었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그렇기에... 결말은 없다. 그냥 계속 이어질 뿐.


오랜만에 먹먹하면서도 동시에 내 영혼에 상처를 내는 기분을 느끼는 서슬퍼런 이야기를 보고

감정의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여전히 내 스스로에게 해석을 내리지 못하면서.


이런 것이 고전의 우아함인가 싶으면서도, 때로는 지나치게 깊은 절망감에 침잠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에

오늘은 감정의 여운을 정리하지 못한 기분으로 잠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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