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에게
지난 번에 연극 '내일은 내일에게'를 보고, 이번에는 반드시 책을 보리라 마음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곧바로 읽을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책도 연극도 후회하지 않을 감동을 주는 경험이었다.
그런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기록하려고 감상을 적어보게 되었다.
종종,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읽는 것이 아닌, 음악을 듣는 것 같거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공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다. 딱 이 작품이 그랬다.
김선영 작가님의 특유의 필력 덕분일까? 나는 왠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연두가 사는 동네의
풍경이 그려진 커다란 컨버스를 보는 기분을 느꼈다.
파란 하늘에 선을 긋는 것 같은 벚나무 가지와
바다 속에 흩날리는 파래같은 수양버드나무와 같은 표현은
대체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는 걸까?
보지 않아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화와 같은 묘사 속에서 담담하면서도 먹먹한
하지만 현실을 배제하지 않은 연두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사실, 연극을 먼저 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정도의 깊이다.
연민을 느끼기에 미안할 정도로 한 소녀에게 닥친 불행의 깊이는 만만치 않고
그것을 우리는 여과없이 받아들이며 감내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작품의 전개는 흔한 기적이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타협하여 대충 좋은게 좋은 훈훈한 결말 따위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 연두는 먹먹하게 이어지는 삶을 그저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렇기에 오히려 이 작품에는 희미한 온기와 희망을 보게 해준다.
마치, 겨울이 지나고 아직 냉기가 남은 대지에 안간힘을 쓰며 굳은 땅을 뚫고 튀어나오는 새싹처럼,
이 담담한 절망을 견뎌내고,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삶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다.
과장된 인간찬가가 아닌, 감수성 예민하고 눈물이 많은 소녀의 약하다지만 실제로 강인한
삶을 관조하는 태도는 어른들조차도 부끄럽게 하며 결국엔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감히 할 말은 아니지만 난 이 작품을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다.
벌써 아이들에게 현실을 감내하라고 하기에는 잘못된 현실에 책임을 가진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차라리 그것을 일상으로 타협한 어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쩌면 어른들보다도 성숙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같은 불행을
어떤 식으로 성숙하게 감내하는지를 들려주고, 거기서 희망과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마지막은 어쩌면 사람들에 따라서는 열린 결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해피엔딩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얌이를 따라가는 네로 주니어의 모습은 왠지 엄마와 보라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농의 배려를 사양하고 떳떳한 어른이 되기 위해 이상을 이어가는 아저씨는
어쩌면 또 다른 연두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담담히 학교를 가는 연두의 모습에서 내일은 내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미소지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행복한 경험이 드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연극을 먼저 본 후에 느낀 유쾌함을 압도하는 먹먹하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도 색달랐고.
아직 아이들에게 권하기는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좀더 고학년이 되면 권해주고 싶다. 그때 마냥 웃으면서 보았던 연극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주고
내가 오늘 느낀 감동을 아이들과 공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연두가 그토록 바라던 부모의 역활을 아이들에게 다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그날을 고대하며 리뷰를 마친다.
#내일은내일에게